해피콜. /사진=머니투데이 김창현 기자
해피콜. /사진=머니투데이 김창현 기자

#. 2002년 한 홈쇼핑 방송. 그동안 한번도 본적 없던 신기한 모양의 제품이 소개됐다. 붕어빵 기계처럼 생긴 양면 프라이팬이었다. 쇼호스트는 생선을 뒤집다 기름이 튀거나 화상을 입는 등 주부들의 불편함을 해소시킬 제품이라고 소개했다. 결과는 대박. 방송 1시간 만에 1만2800개가 팔렸다. 홈쇼핑 방송 1시간 동안 가장 많이 팔린 제품으로 기네스북에도 올랐다. 국내 홈쇼핑에서 내보낸 해피콜 상품 방송은 한 해 500회 이상. 동시에 매출도 껑충 뛰었다. 2001년 45억원에 불과했던 이 회사 매출은 방송 이듬해 450억원을 기록하며 2년여 만에 10배 성장률을 보였다.
주방용품기업 해피콜 얘기다. 양면팬으로 많은 주부의 사랑을 받으면서 재무나 실적 면에서 ‘우수 성적표’를 받아온 해피콜이 최근 업계에서 다른 방향으로 회자되고 있다. 이스트브릿지-골드만삭스 PIA 컨소시엄이 해피콜을 인수한 뒤 유상감자와 배당 등이 늘어나면서 재무구조가 빠르게 악화되고 있어서다. 지난해엔 실적부진 속에서도 영업이익 8배에 달하는 배당잔치를 벌여 논란이 되고 있다.


해피콜, 새카맣게 타는 ‘양면 프라이팬 신화’


◆타버린 양면팬… 악화된 재무구조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해피콜의 영업이익은 17억원으로 전년보다 84% 급감했다. 실적이 악화됐지만 해피콜은 지분 100%를 보유한 최대주주 로카홀딩스를 상대로 지난해 135억원을 배당했다. 지난해 영업이익의 8배 수준이다.

해피콜은 이현삼 전 회장이 1999년 세운 회사다. 이 회장은 남대문시장에서 주방잡화 장사를 하다 우연히 붕어빵 기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위아래로 열고 닫거나 뒤집어서도 쓸 수 있는 양면으로 된 프라이팬을 만들었다. 2001년 양면팬이 출시되면서 현재까지 2000만개 이상 판매 실적을 올렸다.


눌어붙지 않는 다이아몬드 프라이팬도 개발해 2000만개 이상 팔았다. 일반 프라이팬보다 2~3배 비쌌지만 주부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꾸준한 성장을 기록했다. 히트제품이 연속 쏟아지면서 해피콜은 테팔, 휘슬러 등 해외 브랜드가 휩쓸던 프리미엄 주방용품시장의 판도를 바꿨다.

미국, 중국, 대만, 인도네시아 등에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해외시장 개척에 나서기도 했다. 해피콜은 2016년도까지 6년 연속 11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등 현금 흐름이 좋으면서 부채율은 낮은 '알짜기업'으로 통해왔다.

그러던 이 회장은 그해 9월 돌연 경영권을 사모펀드에 넘겼다. 이스트브릿지-골드만삭스 PIA 컨소시엄은 1800억원에 이 회장 및 특수관계인의 해피콜 지분 전부와 경영권을 인수했다. 이 회장은 해외진출을 통해 한단계 성장을 꾀했으나 자금력, 네트워크 등에서 한계에 부딪히며 좀처럼 판로를 넓히지 못하자 경영권 매각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회사를 더 키우려면 경영권을 내주더라도 이스트브릿지가 보유한 글로벌 경영능력을 접목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했다는 후문이다. 이 과정에서 이 회장은 사모펀드가 세운 페이퍼컴퍼니 로카홀딩스에 100억원을 출자해 지분 10%가량을 유지하고 있지만 경영에선 완전히 손을 뗐다.


해외시장 판로 확보에 어려움을 겪던 해피콜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보유한 사모펀드 운용사의 결합. 일각에선 이 결합이 가시적인 성과를 낼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이런 장밋빛 전망은 점점 현실과 멀어지는 분위기다.

사모펀드 품에 안긴 해피콜은 인수 후 계속해서 초라한 성적표를 내고 있다. 2016년 1749억원이던 매출액은 2017년 1433억원으로 18.1% 줄었다. 지난해에도 10% 이상 감소한 1283억원에 그쳤다. 영업이익은 2016년 214억원에서 2017년 106억원으로 반토막나더니 지난해에는 10억원대로 쪼그라들었다.

자본규모가 줄어들면서 부채규모는 확대되고 재무구조는 덩달아 악화됐다. 이같은 재무구조 악화는 ▲인수 전 최대주주의 지분 회수 ▲인수 후 대주주의 투자금 회수 등의 과정에서 나타난 결과다.

로카홀딩스는 해피콜을 인수한 첫해인 2016년부터 중간배당(142억원)과 기말배당(101억원)으로 총 243억원을 챙겼다. 2017년에도 204억원 규모의 중간 배당을 실시하는 등 최근 3년간 총 582억원의 배당 수익을 올렸다.

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해피콜의 영업이익이 기술개발, 해외시장 개척 같은 재투자보다 사모펀드 수익 실현을 위해 우선 충당될 경우 재정 불확실성은 더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영 능력 글쎄… 재매각 가능성도

업계에선 이스트브릿지-골드만삭스 PIA 컨소시엄의 경영 측면에서 검증된 이력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2011년 중동계 자금을 바탕으로 결성된 이스트브릿지파트너스는 주로 배당 등 수익을 목적으로 기업에 ‘재무적 투자’(FI)를 진행해 왔다. 해피콜 인수처럼 경영권 인수 형식의 투자는 아웃도어 의류생산업체인 ‘유니코글로벌’에 이어 두번째에 불과하다.

업계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이스트브릿지파트너스는 투자자에게 약속한 수익률을 보장해야 하는 사모펀드 운용사이기 때문에 몇년 안에 실적을 달성하고 해피콜을 재매각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 해피콜은 매각 당시부터 다국적 주방브랜드 테팔로의 재매각설 등이 꾸준히 돌고 있다. 해피콜 관계자는 “배당금액을 모두 부채 갚는 데 상환하고 있어, 내년쯤이면 850억원의 인수금융 부채를 다 갚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며 “테팔로의 재매각설과 관련해서는 알고 있는 바가 없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88호(2019년 4월16~22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