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비행장 사곶, 장군들 모인 '두무진'
심청 효심 서린 '마지막 작품'


인천 옹진군 백령도 두무진포구가 선명한 가을빛을 뽐내고 있다. 방파제 너머 북한의 황해도가 보인다. /사진=박정웅 기자
인천 옹진군 백령도 두무진포구가 선명한 가을빛을 뽐내고 있다. 방파제 너머 북한의 황해도가 보인다. /사진=박정웅 기자
따오기가 흰 날개를 펼치고 공중을 나는 모습의 섬이 있다. 서해 최북단의 섬, 인천 옹진군 백령도가 그곳이다. 우리나라에서 열다섯번째로 큰 섬인 백령도는 대청도와 소청도, 대연평도와 소연평도 등 서해5도의 맏형 격이다.
백령도는 인천에서 북서쪽으로 약 190㎞ 떨어져 있다. 북한과 가까운 위치에 있다. 바다 건너 10㎞ 거리에는 북한의 황해도(용연군·옹진군)다. 때문에 뭍과 연결되는 유일한 뱃길(인천연안여객터미널-용기포항)은 약 220㎞를 돈다.

◆두 바퀴로 만나는 백령도의 속살


백령도 사곶해변과 낙조. /사진=박정웅 기자
백령도 사곶해변과 낙조. /사진=박정웅 기자
고속페리로 4시간가량을 달려야 만날 수 있는 서해의 끝섬 백령도. 이런 뱃길도 겨울로 접어들면 바람과 파도가 거센 탓에 자주 끊긴다. 북풍이 거세지기 전,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서북 끝섬을 자전거로 돌아봤다.
이른 오전, 인천(연안여객터미널)을 나선 고속페리는 점심 전후에 백령도(용기포항)에 도착한다. 하루 세번 고속페리가 백령도를 오간다. 이 중 차도선을 겸한 페리는 자전거 화물운송료(편도 기준, 대당 1만원)를 받지 않는다. 여행 전 선사에 확인하는 게 좋다.

백령도 으뜸 절경인 두무진의 기암. /사진=박정웅 기자
백령도 으뜸 절경인 두무진의 기암. /사진=박정웅 기자
백령도는 바다와 들에서 나는 것이 풍족해 자급자족이 가능한 섬이다. 특히 쌀은 섬 주민이 먹고도 남아 뭍으로 내보낸다. 담수호 주위의 평야와 같은 너른 들판이 이를 입증한다.
백령도가 큰 섬임은 자전거로 돌아보면 안다. 용기포항을 기점으로 백령로와 백령남로 등을 이용해 섬을 한바퀴 돌면 4시간가량 걸린다. 코스는 전체 약 50㎞인데 라이딩 시간은 넉넉히 잡는 게 좋다. 섬의 지형 상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지고 명소를 드나들어야 해서다.

고봉포구의 사자바위. /사진=박정웅 기자
고봉포구의 사자바위. /사진=박정웅 기자
백령도의 주요 명소는 백령대청지질공원(명승 제8호)의 핵심인 두무진과 천연비행장 사곶해변(천연기념물 제391호)이다. 이외에 끝섬전망대, 심청각, 사자바위(고봉포구), 천안함위령탑, 중화동교회, 콩돌해변(천연기념물 제392호) 등이 있다. 코스는 용기포항에서 내려 반시계 방향으로 잡으면 된다.
◆사곶해변이 한눈에, 끝섬전망대의 조망


끝섬전망대서 본 용기포항과 사곶해변. 오른쪽으론 담수호가 보인다. /사진=박정웅 기자
끝섬전망대서 본 용기포항과 사곶해변. 오른쪽으론 담수호가 보인다. /사진=박정웅 기자
백령도 여행은 패키지가 대부분이다. 단체여행객들이 잘 들르지 않은 곳 중 하나가 용기포항 오른쪽 용기원산의 끝섬전망대다. 패키지가 이곳을 건너뛴 이유는 뭘까. 전망대 오르는 길이 가파르고 굴곡져 대형버스엔 적합하지 않은 점도 있다. 또 페리와 식사시간 등 전체 여행일정을 고려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끝섬전망대를 오르지 않고서는 백령도 여행을 얘기할 수 없을 것이다. 발 아래 용기포항을 시작으로 사곶해변 전망이 드넓게 펼쳐진다. 사곶해변의 드넓음은 해변에서 보다는 이곳에서 보는 게 제멋이다.

화동염전과 석양. /사진=박정웅 기자
화동염전과 석양. /사진=박정웅 기자
또한 사곶해변의 오른쪽 담수호까지 한눈에 잡히니 백령도 여행의 대표사진은 여행 초반에 이곳에서 ‘따놓은 당상’이다. 더구나 북녘 황해도 땅도 손에 잡힌다.
전망대에서 만난 군 관계자로 보이는 이는 백령도의 유일한 360도 파노라마뷰를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백령도의 대부분의 산 정상부는 출입제한 구역인데 반해 용기원산은 그렇지 않다는 것. 또 용기원산은 두번째 높은 산이어서 사곶해변, 담수호, 황해도 등 백령도의 동서남북을 조망하는 유일한 포인트라는 것이다.

◆젊은 해병의 섬, 유명 프랜차이즈도 입점

백령도에 핀 고들빼기꽃. /사진=박정웅 기자
백령도에 핀 고들빼기꽃. /사진=박정웅 기자
백령도는 해병의 섬이다. 백령도에 주둔한 해병여단은 서해 최북단을 사수한다.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이 해병과 그의 가족은 섬의 원주민수보다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주민의 말에 따르면 먼섬 치고 많은 이가 백령도와 인연을 맺고 있다. 젊은 군인과 군 가족, 면회객이 많아 섬 기운은 활기차다.
이 같은 분위기는 면소재지(진촌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유명 브랜드의 햄버거와 커피 프랜차이즈가 눈에 띈다. 군침 도는 햄버거에 향긋한 아메리카노라니…. 섬에서는 매우 낯선 풍경이다. 덕분에 면소재지에는 깔끔한 편의시설이 있다. 또 까나리(볶음, 액젓), 전복, 돌미역, 해삼, 꽃게, 흑염소 등 섬 특산물을 내놓는 음식점도 수두룩하다.

심청각. 심청상 뒤로 북한 황해도를 바라보는 탐방객들. /사진=박정웅 기자
심청각. 심청상 뒤로 북한 황해도를 바라보는 탐방객들. /사진=박정웅 기자
진촌리 인근에는 효녀 심청을 잇댄 심청각이 있다. 백령초교 뒤편으로 오르면 황해도 서해를 배경으로 심청각과 심청상이 반긴다. 심청이 몸을 던진 인당수가 이곳 바다 어느 쯤이라 한다. 전설에서 사실을 캐내는 헛수고를 할 까닭이 있겠는가. 심청의 스토리텔링을 담은 연꽃이 연꽃마을로 환생한 곳도 눈여겨보자.
심청각을 내려와 백령초교 왼쪽 소로로 북서쪽 방향을 잡으면 고봉포구다. 이곳엔 바다를 향해 포효하는 듯한 사자바위를 만날 수 있다. 포구를 나와 서쪽 관창길로 자전거를 돌리면 어릿골해안과 사항포구가 이어진다. 합세한 두무진로를 올라타면 백령도의 절경인 두무진에 다다른다.

◆백령도 으뜸 절경, 기암 펼쳐진 ‘두무진’

두무진의 기암. /사진=박정웅 기자
두무진의 기암. /사진=박정웅 기자
두무진 포구에서 두무진까지 데크길이 이어진다. 자전거는 포구의 데크길 초입에 세워두면 된다. 기암 사이로 이어지는 데크길이 인상적이다. 두무진으로 향하는 오솔길에는 산국, 고들빼기, 씀바귀 등 가을 야생화가 지천이다. 올망졸망한 노란 꽃들에 시선이 멈춘다.
오솔길을 10여분 오르면 백령도의 으뜸 절경에 탄성이 절로 쏟아진다. 백령도 북서쪽의 아찔한 벼랑 끝에 서면 오금이 저린다. 두무진은 높이 50여m 내외의 규암절벽으로, 백령대청지질공원을 대표한다.

바다에 솟은 두무진 형제바위. /사진=박정웅 기자
바다에 솟은 두무진 형제바위. /사진=박정웅 기자
두무진 이름은 장군들이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하는 것 같다고 해서 붙여졌다. 장군은 기암을 가리킨다. 이 중 선대암은 광해군이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비슷한 모양의 한쌍의 바위는 형제바위다.
형제바위가 있는 해식애 쪽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면 두무진의 진면목을 절감할 수 있다. 카메라 앵글에 담을 수 없는 거대한 직벽을 마주한다. 또한 몽돌 사이에서 부서지는 파도 소리에 오랜 시간 발이 묶인다.

◆백사장 라이딩, 천연비행장 사곶해변

천안함위령탑과 추념하는 탐방객들. /사진=박정웅 기자
천안함위령탑과 추념하는 탐방객들. /사진=박정웅 기자
백령도의 북서쪽 끄트머리인 두무진, 포구서 나와 남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천안함위령탑이 있다. 2010년 천안함 승조원 46명의 젊은 용사들의 넋을 기린 곳이다. 백령남로로 길을 다시 남쪽으로 잡으면 중화동교회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두번째 세워진 장로교회(1896년)이며 최초의 기독교 복음전례지(1898년)로 알려졌다.
중화동교회는 언덕 위의 본당과 아래의 기독교역사관으로 구성된다. 본당으로 오르는 계단 오른편에는 수명을 다한 무궁화나무가 앙상하게 서 있다. 천연기념물 제521호인 연화리 무궁화로 교회 역사만큼이나 백령도를 오랫동안 지켜왔다. 순수 재래종 중 가장 크고 오래된 가치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하지만 태풍과 노령으로 고사해 기념물 해제를 앞두고 있다.

콩돌해변. /사진=박정웅 기자
콩돌해변. /사진=박정웅 기자
백령도에는 드넓은 담수호가 있다. 담수호 주위에는 뭍의 평야 뺨치는 논들이 펼쳐진다. 백령도의 쌀은 이곳에서 나는 것만으로 차고 넘친다는 얘기다. 담수호 인근에는 화동염전, 콩돌해변, 사곶해변이 있다. 콩돌해변은 작은 둥근 돌들로 이뤄진 독특한 해안 절경을 뽐낸다. 형형색색의 돌들은 파도가 밀려올 때 스르륵 스르륵 맑은 소리를 낸다.
사곶해변은 자타공인 백령도의 명물이다. 비행기가 뜨고 내릴 정도로 가는 모래가 단단해 한국전쟁 당시 비행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탈리아의 나폴리해변과 더불어 세상에서 단 두곳밖에 없는 천연비행장이다. 사곶해변과 멀지 않은 곳에 냉면 맛집이 있다. 이곳서 용기포항까지는 자전거로 10분정도면 된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15호(2019년 10월22~27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