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규제를 회피하기 위한 ‘주거용 오피스텔’이 주거 대안으로 각광받았지만 최근엔 도시형생활주택과 생활형숙박시설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정부가 주거용 오피스텔에 대해 아파트와 비슷한 수준으로 규제를 강화하며 새로운 형태의 유사주택이 투기시장을 파고든 것이다. /그래픽=김영찬 디자인 기자
아파트 규제를 회피하기 위한 ‘주거용 오피스텔’이 주거 대안으로 각광받았지만 최근엔 도시형생활주택과 생활형숙박시설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정부가 주거용 오피스텔에 대해 아파트와 비슷한 수준으로 규제를 강화하며 새로운 형태의 유사주택이 투기시장을 파고든 것이다. /그래픽=김영찬 디자인 기자
# 서울 청계천과 을지로 주변 일대가 ‘세운재정비촉진지구’(세운지구)로 지정된 지 14년 만인 지난해. ‘세운 푸르지오 헤리시티’와 ‘힐스테이트 세운 센트럴’은 전용면적 24~49㎡의 소형에 대부분 원룸인 도시형생활주택과 아파트의 복합단지로 3.3㎡당 분양가가 비교적 높은 4000만원 안팎임에도 조기 분양에 성공해 화제를 모았다. 면적이 작다 보니 전체 분양가가 중도금 대출 규제를 안 받는 9억원 미만이었고 아파트가 아닌 도시형생활주택의 경우 청약통장 가입의무가 없으면서 세금과 전매 규제도 받지 않은 것이 성공 요인으로 꼽혔다.
한때는 아파트 규제를 회피하기 위한 ‘주거용 오피스텔’이 주거 대안으로 각광받았지만 최근엔 도시형생활주택과 생활형숙박시설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정부가 주거용 오피스텔에 대해 아파트와 비슷한 수준으로 규제를 강화하며 새로운 형태의 유사주택이 투기시장을 파고든 것이다.

도시형생활주택은 300가구 미만 국민주택(전용면적 85㎡) 규모로 다세대주택(빌라)과 같은 형태의 소규모 공동주택단지다. 2009년 주택법 개정에 따라 새로 도입돼 어린이놀이터와 관리사무소 등 부대시설 건축 의무가 없고 주차장 설치기준도 완화해 도심에 우후죽순 공급됐다. 청약통장이 필요 없지만 학교나 업무지구 등 주변 인프라가 갖춰지다 보니 내집마련 실수요자는 물론 월세 수익을 노리는 투자자에게 대안으로 떠올랐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서울의 도시형생활주택을 포함한 다세대주택 사용검사(준공) 실적은 1만9705가구로 아파트(5만544가구)의 40% 가까이 됐다.


정부 규제 강화돼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지난해 청약홈을 통해 분양된 도시형생활주택 1510가구는 총 1만6234명이 청약을 신청해 평균 10.7대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힐스테이트 세운 센트럴 도시형생활주택은 최고 51.3대1에 평균 13.9대1의 청약경쟁률을 각각 기록했다.

도시형생활주택은 당초 아파트를 대신해 무주택 실수요자의 내집마련을 지원하기 위한 정부의 각종 규제 완화로 도입됐지만 분양이나 건설업계에선 규제를 회피하기 위한 용도로 활용된 측면이 있다. 도시형생활주택은 분양가상한제를 적용받지 않는 데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이 무주택자 40%, 1주택 이상 0%로 제한되다 보니 가격이 비교적 싼 도시형생활주택 시장으로 투자자금이 옮겨간 것이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세계적인 저금리 상황이 지속되며 부동산가격이 오르는 상황에 아파트값은 비싸고 신규 분양은 청약제도로 막혀 도시형생활주택으로 투자가 쏠렸다”며 “만약 세운지구에 소형 도시형생활주택이 아닌 아파트만 분양했다면 분양가를 감당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도시형생활주택도 모자라 최근엔 부산이나 강원 등 관광이 발달한 해안가 지역 생활형숙박시설이 아파트 용도로 팔려나가고 있다. 생활형숙박시설은 호텔을 주거용으로 사용한 레지던스가 아파트 규제를 피해 생겨난 형태다. 상업용지에 주거용 오피스텔을 짓던 건설회사가 새로운 규제에 막히자 다시 분양형 호텔을 결합한 생활형숙박시설을 개발해 2013년 건축법 개정으로 도입됐다.

생활형숙박시설 문제는?

정부는 지난해 8월 지방세법을 개정해 주거용 오피스텔을 주택 수에 포함하고 취득세를 중과하기로 했다. 오피스텔 분양권이나 상업용 오피스텔의 취득세는 4%지만 전입신고를 하면 주택으로 분류돼 보유 주택 수와 합산하고 다주택자는 최대 12%의 취득세율이 부과된다.

생활형숙박시설은 여전히 숙박시설로 분류돼 이런 규제를 피할 수 있는 허점이 있다. 최근 분양하는 생활형숙박시설은 ‘아파트와 똑같은 라이프스타일’이라고 홍보해 일반주택과 차별점을 없앴다. 전매제한에서도 자유롭기 때문에 투자 용도로 사서 세입자를 구해 임대하다가 가격이 오르면 시세차익도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주거용 오피스텔과 다르게 주택 수에 포함되지 않아서 다주택자 양도소득세나 종합부동산세 중과세 역시 없다. 실수요자 입장에선 아파트 대비 대출 한도를 높게 받을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유사주택의 가장 큰 문제는 주택시장을 실수요자 중심으로 개편하겠다는 정부의 부동산 규제정책에 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문제도 있다. 일반주택과 같다고 생각해 내집마련 목적으로 생활형숙박시설을 산 실수요자들은 아파트와 내부 설계만 같은 뿐 각종 인프라 부족이나 열악한 생활환경에 노출되고 있다. 해운대 일대와 북항 재개발구역 및 송도해수욕장 일대는 생활형숙박시설이 우후죽순 들어서 각종 규제를 피할 뿐 아니라 부동산 투기와 난개발을 부추긴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사실상 호텔인 생활형숙박시설에 대한 건축허가를 받을 때는 학교 등의 인프라 건설 부담금 의무가 없다. 주차장 기준도 완화돼 주차난 문제에도 노출돼 있다. 생활형숙박시설의 주차장 설치 의무는 아파트의 가구당 1.2대보다 적은 0.5대 수준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생활형숙박시설 인·허가 수는 ▲2018년 1만6214호 ▲2019년 1만2689호 ▲2020년 9월 기준 8848호 등으로 줄었지만 부산의 경우 같은 기간에 525호, 1566호, 2094호 등으로 급증했다. 경기도의 경우 ▲2018년 4921호 ▲2019년 3171호 ▲2020년 2386호 등이 인·허가를 받았다. 강원도에서의 허가 물량은 ▲2018년 3498호 ▲2019년 4928호 ▲2020년 2714호 등이다.

최근 들어 생활형숙박시설이 우후죽순 들어선 강원도 양양군의 경우 지난해 주택 포함 건축허가가 295건을 기록해 2019년 대비 40%가량 늘어났다. 읍·면에서 처리한 건축허가 신고는 2138건이다. 양양·강릉·삼척·고성·속초·동해 6개 시·군의 최근 5년 생활형숙박시설 인·허가 신청은 151건에 달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사진=이미지투데이

# 인천광역시 서구 가정동을 개발한 신도시재생사업 뉴타운 ‘루원시티’는 지난해 10월 숙박시설을 지으려는 기업과 지역 주민 사이에 갈등이 벌어졌다. 기업은 당초 숙박시설을 짓기 위한 용도로 부지를 매입했다가 인천시가 주민의 민원에 따라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자 반발했다.

생활형숙박시설이 건설되는 땅은 대부분 상업용지로 지정돼 현행법상 주거시설을 지을 수 없다. 하지만 ‘호텔’로 허가를 받기 때문에 사실상 건축이 가능함은 물론 건물 간 간격이나 주차장 면적 등의 규제도 피할 수 있다. 생활환경이 나빠지고 학교 부족과 주차난 등도 우려된다.
인천시 건축위원회 심의에서 루원시티 내 생활형숙박시설 신축 안건이 보류된 건 주민 청원이 발단이 됐다. 청원인 A씨는 “생활형숙박시설의 난개발로 계획인구를 초과하고 학교용지 확보와 부담금 의무가 없어 과밀학급 문제를 유발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생활형숙박시설이 도심 내 아파트를 대체하는 주거 수단으로 변형되며 학령인구를 유발한다는 게 인천시의 판단이다. 생활형숙박시설을 짓기 위해 토지를 사들였던 건설업체와 시행사들은 사업을 중단하거나 용도변경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상업시설을 주택으로 용도변경하려면 주차장 등의 시설을 갖춰야 해 건축비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인천시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로부터 생활형숙박시설 부지를 사들인 기업 중 한 곳인 대우건설 관계자는 “법과 규정을 다 지켜 부지 매입 계약을 했고 용도변경 시엔 사업성이 떨어지는 리스크를 떠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부 기업은 끝내 합의에 실패할 경우 법적 소송까지 예고했다.

생활형숙박시설에 못 산다

정부는 생활형숙박시설 난개발로 인해 발생하는 각종 문제를 막기 위해 주거를 금지하는 법안을 마련했다. 오는 4월 이런 내용으로 ‘건축법 시행령·시행규칙’ 등 개정안이 시행된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생활형숙박시설은 숙박업 신고가 필요한 시설로 명시해야 하고 주택 용도로 사용이 금지된다.

국토교통부는 건설회사가 생활형숙박시설 분양 공고를 낼 때 ‘주택 사용 불가·숙박업 신고 필요’ 문구를 명시하도록 했다. 주택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광고하는 경우 허위·과장 광고로 사업자를 고발 조치할 수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생활형숙박시설을 광고하면서 주거상품으로 홍보하는 것은 불법”이라며 “앞으로 분양광고에 ‘주택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내용을 명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1월 GS건설 자회사인 자이S&D가 강원 속초에서 분양한 생활형숙박시설 ‘속초자이엘라’는 공중위생관리법에 따라 실내 취사와 세탁이 가능하고 아파트 같은 생활을 영위할 수 있지만 주택법이 아닌 건축법이 적용돼 전매제한 규제가 없다고 홍보됐다.

실수요자 피해 없나

업무지구가 몰린 서울 여의도에도 호텔을 리모델링해 생활형숙박시설로 분양하는 유비스타시티 등이 생겨났다. 인구 감소에도 1~2인가구 분화와 수도권 집중현상으로 주택 공급난이 심화돼 생활형숙박시설과 같은 대체 주거 수단을 찾는 실수요자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수 있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실거주를 목적으로 생활형숙박시설을 분양받은 사람들이다. 용도상 숙박시설임을 인지하고 분양받았다고 해도 불법 여부가 모호했고 국토부는 추후 이행강제금마저 부과한다는 방침이다.

실질적인 단속이 이뤄지기 힘들다는 지적도 있다. 소유주가 실제로 거주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선 방문 조사나 공과금 내역 등을 일일이 확인하는 방법밖에 없는데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국토부가 밝힌 개정령 안에 생활형숙박시설의 실거주 여부 판단 등에 대한 기준이 없어 명확한 지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생활형숙박시설을 주거용 오피스텔이나 주택으로 용도를 변경하는 방법은 있다. 물론 건축허가 기준과 부지 용도가 달라서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입법예고 기간 동안 의견 수렴을 거치는 만큼 건설업계가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은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 당시 “생활형숙박시설 전입신고를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전입신고를 금지하면 행정 불편이나 임대 문제가 발생하므로 실질적인 해법이 될 수 있지만 이번 개정안은 김 전 장관의 답변보다 후퇴한 내용이어서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동산 개발업계 관계자는 “부산 해운대·강원·인천 송도 등에서 생활형숙박시설을 짓기 위해 땅을 산 사업자가 많아서 앞으로 피해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 분양’ 홍보하는 건설업계

서울시도 나서서 생활형숙박시설의 건축 비율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규제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이후 분양업계는 오히려 ‘마지막 분양’이라는 희소성을 부각해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서울시 도시건축공동위원회는 ‘생활형숙박시설 관리기준 일괄 재정비를 위한 지구단위계획 결정 변경안’을 수정 가결해 오피스텔과 같이 주거용 시설로 분류하고 용적률(대지면적 대비 연면적 비율)을 제한하기로 했다.

그동안 건축법상 ‘비주택’으로 분류돼 인허가 시 층수 제한 규제를 받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상업지역이나 준주거지역 건축물의 비주거용 비율을 용적률의 10% 이상 두게 했다. 전체 건물 중에 생활형숙박시설 비중은 최대 90%로 제한된다.
이런 상황에 분양업계는 공급이 줄어들 예정이어서 희소성이 있다는 논리로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분양대행사 관계자는 “서울의 주택공급이 부족한 상황이어서 일단 분양받은 후 용도변경을 계획하는 투자자가 많을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