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KB금융, 신한금융, 우리금융, 하나금융/사진=각 사
(왼쪽부터) KB금융, 신한금융, 우리금융, 하나금융/사진=각 사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급락에 ELS(주가연계증권)의 대규모 손실 우려가 커지자 은행권이 해당 ELS상품 판매를 중단키로 했다. 내년 상반기 만기가 도래하는 H지수 연계 ELS는 총 8조4100억원으로 절반 이상의 손실이 예상된다.

30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은 이날부터 홍콩H지수가 편입된 ELS 판매를 잠정 중단한다. 하나은행은 다음달 4일부터 홍콩H지수 기초 주가연계펀드(ELF)·주가연계신탁(ELT) 상품 판매를 중단한다.


우리·신한은행은 지난해부터 홍콩H지수 편입 ELS 판매를 중단했으며, NH농협은행은 지난달부터 원금비보장형 ELS를 판매하지 않고 있다.

은행은 ELS를 사모·공모를 통해 펀드(ELF)와 신탁(ELT) 형태로 판매한다. 홍콩H지수 급락으로 홍콩H지수 편입 ELS에서 원금손실이 발생하자 잠정 판매를 중단키로 결정했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홍콩 H지수를 제외한 다른 지수들은 박스권 흐름을 보이고, 소비자의 선택권도 보장하기 위해 홍콩 H지수가 편입된 ELS 상품 판매만 중단했다"고 설명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홍콩H지수가 예상치 못한 하락을 지속해 역사적 저점을 형성해 홍콩H지수 편입 ELT·ELF 판매를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5대 은행에서 판매한 홍콩H지수 연계 ELF·ELT의 내년 상반기 만기 도래 규모는 지난 17일 기준 약 8조41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은행별로 보면 KB국민은행이 4조7726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NH농협은행(1조4833억원), 신한은행(1조3766억원), 하나은행(7526억원), 우리은행(249억원) 순이다.

홍콩H지수, 1만2000→6000 반토막… 금감원, 판매사 전수 조사

홍콩H지수는 지난 2021년 2월 1만2000선을 넘어섰으나 그해 말 8000대까지 떨어진 뒤 현재 6000대에서 횡보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말에는 5000대가 무너지기도 했다. 금융당국도 H지수 ELS를 판매한 은행·증권사를 대상으로 전수조사에 돌입했다. 고위험·고난도 상품 판매 시 금융회사가 판매원칙을 지켰는지 확인한다는 방침이다.

금융소비자보호법에 따르면 6대 판매원칙 중 첫번째는 '적합성', 두번째는 '적정성'이다. 적합성의 핵심은 '권유 여부'다. 소비자의 재산과 금융상품을 사고판 경험에 비춰 은행이 부적합한 금융상품을 권유하는 걸 금지한다는 내용이다.

적정성은 은행의 계약 체결 권유가 없이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상품을 사려고 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만약 소비자가 구매하고 싶은 상품이 있다는 의사를 밝히더라도 소비자의 재산에 비춰 부적정하다면 은행은 소비자에게 이를 고지하고 확인해야 한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 29일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자산운용사 최고경영자(CEO)와의 간담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고위험·고난도 상품이 다른 곳도 아닌 은행 창구에서 고령자들에게 특정 시기에 몰려서 판매됐다는 것은 금융소비자보호법상 '적합성 원칙'이 제대로 지켜졌는지 의구심을 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저조차 잘 안 읽히는 수십 장짜리 설명서에 대해 소비자가 '네, 네'라고 답변했다고 해서 (은행이) 아무런 책임이 없는지 생각해야 한다"며 "권유 자체가 적정했는지 검토가 필요할 것 같다"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