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피해자모임이 지난달 1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손팻말을 들고 보상을 촉구하는 모습./사진=뉴스1
홍콩 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피해자모임이 지난달 1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손팻말을 들고 보상을 촉구하는 모습./사진=뉴스1

홍콩 H지수(항셍국가기업지수) 주가연계증권(ELS)의 확정 손실액이 이번주 70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금융감독원은 이르면 다음 주 홍콩 ELS 책임분담 기준안을 내놓는다.

금융당국은 홍콩 ELS 자율배상에 나서는 판매사에게 과징금을 감면해 줄 수 있다고 밝혔지만 금융사들은 자율배상에 배임 소지가 있다며 몸을 사리고 있다. 금융사들은 금감원이 발표할 책임분담 기준안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지난 16일부터 홍콩 ELS 주요 판매사 11곳(은행 5곳·증권사 6곳)에 대한 2차 현장 검사를 시작했으며 다음주 중 이를 예정대로 마무리하고 검사 결과를 발표한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달 진행된 1차 검사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근거로 홍콩 ELS 불완전판매 사례를 유형화하고 추가 검증이 필요한 사안에 대해 지난 16일부터 2차 검사를 진행 중이다. 이르면 다음주 책임분담 기준 최종안이 나올 예정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예정대로 다음주까지 2차 검사를 진행하고 늦어도 3월 초에는 검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KB국민·신한·하나·NH농협·SC제일 등 은행 5곳이 올들어 지난 16일까지 홍콩 ELS 만기 도래 원금은 1조2609억원으로 이중 6558억원(52%)이 손실을 기록해 확정손실률이 평균 52%를 기록했다.

홍콩 H지수는 이날 기준 5700대로 2021년(1만2000대)과 비교하면 대폭 떨어졌다. H지수가 현 수준을 유지할 경우 올 상반기 홍콩 ELS 손실액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올 4월 홍콩 ELS 만기 상환금액이 2조5553억원으로 급증하는 만큼 손실규모도 덩달아 커질 수밖에 없다.

올 1~3월 홍콩 ELS 만기 상환 금액은 ▲1월 9172억원 ▲2월 1조6586억원 ▲3월 1조 8170억원이었다. 4월에는 2조5553억원으로 늘어난 뒤 ▲5월 1조 5608억원 ▲6월 1조5118억원이 예정돼 있다.

불완전판매 유형화 "적합성 원칙 위배"… 투자자 책임은 어디까지

금감원은 일부 판매사에서 불완전판매 정황을 포착한 만큼 판매사들의 배상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 4일 오전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노후 보장용 자금 등 가까운 시일 내 필요하다고 명확히 예측되는 돈은 원금손실 위험이 큰 곳에 투자하면 안 된다는 걸 고려해 금융종사자가 적합한 상품을 추천해야 하는데 실제 원금 보장이 가장 중요한 소비자에게 (홍콩 ELS를) 권유한 사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금융소비자보호법상 적합성 원칙에 위배된다. 금소법에 따르면 적합성 원칙은 소비자의 연령, 재산 상황, 거래 목적, 투자 경험 등에 비춰 부적합한 금융상품의 권유를 금지하는 원칙이다.

가장 큰 쟁점은 홍콩 ELS 가입자 손실을 모두 배상하는지 여부다. 현재 홍콩 ELS 가입자들은 100% 수준의 손실 배상을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금감원은 일괄 배상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나타낼 것으로 보인다.

앞서 금감원은 2019년 독일 국채 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때 가입자 3654명에게 모두 손실을 배상했지만 당시 배상 비율은 20%에서 최대 80%까지 적용됐다.

당시 금융당국은 투자자 성향을 조사해 그에 맞는 상품을 권유하는 '적합성 원칙' 위반 시 30%, 은행 내부 통제가 부실했다면 20%, 초고위험 상품 특성을 고려해 다시 5%를 붙이면서 55%라는 기본 배상비율을 정했다. 나머지는개인별 가감 요인을 적용했는데 만 65세 이상, 주부, 은퇴자 등은 5%포인트, 80세 이상은 10%포인트가 가산됐다.

다만 치매를 앓는 80세 노인에게 80% 배상 비율을 적용한 것은 투자자 자기책임 원칙에 따라 20%를 제외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투자자는 선택에 따라 발생하는 이익과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전액 배상은 허용하지 않았고 최소 20%는 고객 책임도 있다고 판단했다.

증권사 창구 가입, 재가입, 고령자 여부 등에 따라 배상 차등 적용될 듯

현재 금감원은 책임분담 기준안의 내용으로 과거 ELS 상품을 투자해본 경험, 고령자 여부 등을 감안해 배상비율을 차등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은행이 아닌 증권사에서 ELS를 가입했을 경우 투자자가 원금 손실 가능성을 상대적으로 인지하고 투자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에서 금감원은 판매사 등에 따라 배상에 차등을 두는 방안도 들여다보고 있다.

아울러 금감원은 금융사에 "자율배상은 제재 감경 사유"라며 적극적인 배상을 주문했지만 은행권은 구체적 제재 근거 없이 금융사가 먼저 자율배상에 나서면 배임 소지가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국내 은행의 외국인 지분율이 60~70%에 이르는 특성상 금융당국의 제재 등 구체적 근거 없이 덜컥 배상에 나서면 향후 외인 주주들이 배임으로 볼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은행들은 과거 펀드 사태와 ELS 손실 문제는 다르다고 보고 있다. 또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사모펀드 사태와 달리 ELS는 공모형이고 상품 자체에 문제 없이 오랜 기간 판매된 상품"이라며 "홍콩 ELS 가입자 90% 가량이 재가입자라는 점에서 과거 이익을 본 경험상 단순 피해자로 보기 어려운 점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