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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쇼프 난센 사진(출처: The Press Photographic Agency, 노르웨이 국립도서관, 흑백사진(1926년 이전),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30년 5월 13일, 프리드쇼프 난센이 사망했다. 그는 노르웨이의 과학자, 탐험가, 외교관, 인도주의자로서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특히 북극 탐험과 난민 구호 활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1861년 10월 10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출생한 난센은 크리스티아니아(현재의 오슬로) 대학에서 동물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베르겐의 자연 박물관에서 일했다. 그는 1888년 세계 최초로 그린란드를 횡단하고, 1893~1896년 여러 차례 북극 탐험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이러한 탐험들은 북극 지리와 해양 환경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했다.
난센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발생한 난민 문제 해결에 앞장섰으며, 국제연맹의 초대 난민고등판무관으로 임명되어 활동했다. 그는 난민들에게 식량과 의료 지원을 제공하는 등 난민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1922년에 '난센 여권'을 도입했다. 이는 국제연맹이 국적이 없는 난민들을 위해 발행했던 최초의 국제적인 신분증이다. 1942년에는 52개국 정부가 난센 여권을 승인해 국적 없는 수십만 명의 난민에게 이주를 지원했다. 1922년 그는 난센 여권을 도입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난센은 동물학, 해양생물학, 해양학, 지질학 분야에서도 많은 연구를 수행했다. 특히 해양 생물의 진화와 이동에 대한 연구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동시에 노르웨이의 외교관으로 활동하며 스웨덴과의 평화적 분리, 노르웨이의 독립 인정 등에도 기여했다. 또한 난민 구호 활동 외에도 유럽의 기근 구호, 국제 평화 운동 등 다양한 인도주의 활동에 참여했다.
난센은 노르웨이의 국민적 영웅이자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20세기 최고의 인물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탐험 정신, 인간애, 평화주의는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