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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사당 2023.12.27/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편하게 정치하려는 거죠. 정책 경쟁으로 국민 선택을 받는 것이 아니라 고소·고발로 상대를 '나쁜 놈'으로 만들어 반사이익을 취하려는 것 아닐까요"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정치인들이 서로에 대한 고소·고발을 남발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정치인들이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좋은 정책과 법안 대신 손쉬운 고소·고발로 주목을 받고 이를 발판으로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는 비판인 셈이다.
최근 의대 증원 문제를 놓고 대화 대신 법원의 결정에 모든 것을 맡기는 모양새가 되면서 '일상의 사법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치권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일부에선 정치 사법화가 일상의 사법화를 부추겼다고 지적한다.
◇ 선거철이면 더 심해지는 고소·고발…'몸싸움' 빈자리 채운 법정 공방
지난 4·10 총선 때도 정치권의 고소·고발은 이어졌다. 22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총선 과정에서 1681명의 선거 사범이 적발됐다. 이중 총선 당선인에 대해 고소·고발, 진정이 접수된 사건은 37건으로 모두 28명이 수사 대상이 됐다.
총선을 앞둔 지난 3월 더불어민주당이 권향엽 후보 공천을 둘러싼 고발전이 대표 사례다. 당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권 후보의 공천을 두고 '사천의 끝판왕'이라고 비판하자 민주당은 '허위사실 유포'라며 고발했다. 이에 국민의힘이 '무고' 혐의로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역고발하면서 양당의 대표가 나란히 수사 대상이 됐다.
이처럼 정치권에서 이제 상대방을 고소·고발하는 것은 이제 일상에 가깝다. 잘못이 있다면 수사하고 단죄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정치가 지나치게 '형사 사법화'된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치권의 연이은 법적 다툼은 대화와 협상이 설 자리를 잃게 만들고 있다.
2012년 5월 국회법 개정안(일명 국회선진화법)이 제정된 이후 과거 문제가 됐던 국회 내에서 몸싸움은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싸움은 국회에서 법원으로 전장만 옮겼을 뿐 계속되고 있다. '국회가 싸우지만 말고 타협과 협상으로 일하라'는 선진화법의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 고소·고발에 '의제' 논의 소멸…국회 권위 스스로 낮춰
정치권의 갈등이 계속해 형사 사건으로 이어지는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양극화된 정치 지형을 더욱 악화시켜 정치권에서 대화가 사라지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화가 사라지면서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제들에 대한 논의 또한 소멸하거나 연기된다는 것이다.
채 교수는 고소·고발이 만연한 정치 현상에 대해 "강성 지지층을 자극해 쪽 수로 밀어붙이는 정치, 타락한 정치, 포퓰리즘이며 인기 영합주의적"이라고 비판했다. 또 정치적 양극화의 심화로 인해 이런 갈등이 더 조장되고 있다며 국민들이 갈등을 심화하는 인물들을 선거로 정치권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철우 연세대 로스쿨 교수는 "한국에서는 법을 일종의 분쟁 해결 수단이라기보다는 누구를 벌주기 위한 것으로 생각하는 관념이 강하다"며 "정치에서도 이런 문화가 연장돼 사법을 정치적 공격에 좋은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풍조가 있다"고 짚었다.
이어 "정치의 형사 사법화가 좋은 정책적 논의를 가로막는 악효과가 있다"며 "사회적인 행위에 대해 과도하게 범죄화하는 경향을 줄여나가는 쪽으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권에서 빚어지는 일들을 사사건건 사법기관으로 가져가는 것에 대해 "국회의 권위나 위상을 스스로 낮추는 행위"라며 "사법부에 가서 고소하고 자기편에게 유리하게 판단을 내려달라고 하는 것은 (정치권이) 사법부에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