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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로 나섰던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대선 출마 의사를 밝힌지 9일 만에 여정을 마무리했다.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선거 관리 책임까지 방기했다는 비판을 받으며 대선 후보로 나섰으나 당원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출마 초기 국민의힘 당원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음에도 정치적 무리수를 반복한 끝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는 평가다.
한 전 총리는 11일 오전 9시30분 서울 여의도 캠프 사무실 기자회견에서 "부족한 제게 한평생 국가를 위해 일할 기회를 주신 데 감사드린다"며 "김 후보와 지지자분들이 이번 대선에서 승리하시기를 기원한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돕겠다"고 말했다.
한 전 총리는 김문수 후보와 단일화 줄다리기를 벌이던 중 막판까지 진행한 협상이 결렬되자 기습적으로 새벽 입당 후 당과 함께 강제 단일화에 나섰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지난 10일 오전 10시부터 밤 9시까지 ARS 형식으로 한덕수 후보로의 후보 변경에 찬성 여부를 묻는 당원 투표를 진행했지만 과반 동의를 얻지 못해 부결돼 김문수 후보 체제가 확고해졌다.
한 전 총리는 지난 2일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국무총리직을 내던지고 대선 판에 뛰어들었다. 국민의힘 최종 대선 후보가 결정되기 하루 전이었다.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은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나경원 의원, 안철수 의원, 양향자 전 의원을 비롯해 유정복 인천시장, 이철우 경북도지사, 한동훈 전 대표, 홍준표 전 대구시장까지 나서면서 8강 체제로 시작했다. 이어 한 차례 컷오프를 거쳐 김문수, 한동훈, 홍준표, 안철수 등 4강으로 압축된 뒤 김문수 후보와 한동훈 후보의 2파전까지 진행된 상태였다.
치열한 대선 경선이 끝날 때쯤 출마를 선언하자 '꽃가마·부전승' 등 비판 목소리가 커졌다. 한 전 총리는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트럼프 정부의 통상 압박을 대응하기 위해서 출마가 지연됐다고 했으나 대선 선거 관리의 책임을 저버리고 출마한 마당에 명분이 약하다는 시각이 많았다.
김문수 후보는 지난 3일 오후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56.53%를 득표해 43.47%에 그친 한동훈 후보를 누르고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로 확정된 뒤 한 전 총리와 단일화 협상에 나섰다.
한 전 총리는 입당도 머뭇거렸다. 대선 출마 이후 김 후보와 단일화를 마칠 때까지 국민의힘 입당을 시도하지 않았다. 모든 조건을 내려놓고 김 후보와 단일화에 임하겠다고 했지만 여론조사 방식을 두고 양보 없는 줄다리기를 벌이면서 정치적 진정성에도 의문이 있었다.
경선 과정에서 한 전 총리와의 단일화를 강조한 김 후보였지만 당 지도부의 압박이 이어지면서 갈등이 심화됐다. 별다른 행보 없이 지지부진한 한 전 총리를 대신해 당 지도부가 직접 나섰다. 당심이 유리하다는 판단 아래 지난 9일 밤 단일화 실무협상이 결렬되자마자 10일 새벽 바로 '강제 단일화' 작업에 돌입했다.
기형적인 단일화 '역풍'… 윤석열 정권 부채 안고 대선 출마했지만 '명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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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전 총리에 대한 당원들의 지지가 높았고 11일 이전 단일화에 대한 여론이 있었지만 당 지도부가 무리하게 후보 교체에 돌입하면서 결국 역풍을 맞게 됐다. 한덕수와 김문수 중 대선 후보로 경쟁력을 판가름하는 것이 아니라 이례적인 후보 교체에 대한 찬성 여부를 묻는 여론조사로 변질된 탓이다.
절차적 정당성도 지키지 못했다는 비판이 컸다. 오전 1시 김문수 후보 선출을 전격 취소하고 곧이어 새로운 대선 후보 등록 신청을 받았는데 접수 시간은 오전 3시부터 4시까지 한 시간에 불과했고 이마저도 국회본청 현장접수였다.
접수 서류도 이력서·자기소개서·당적확인서·가족관계등록부·주민등록등초본·병적증명서·재산보유현황서·체납증명현황서·전과기록증명제출서·범죄경력회보서 등 32개에 달했다. 한 전 총리의 초인적인 능력을 풍자하는 내용들이 온라인상에 퍼질 정도였다.
무리한 정치 기행은 곧바로 역풍을 맞았다. 해당 사실이 알려지면서 당내에선 성토의 목소리가 줄을 이었다. 안철수, 한동훈, 나경원 등 대선 경선에 참여했던 의원들은 물론 배현진, 조경태 의원 등 정당 민주주의를 해쳤다며 지도부를 강력 비판했다.
김문수 후보 측은 즉각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 대통령 후보자 선출 취소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하며 국민의힘은 파국으로 치달았다. '부동의 1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경쟁하기에도 벅찬 시간이었지만 당내 권력 다툼에 시간만 허비했다는 지적이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의 입김에 제대로 된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끌려 다니는 모양새였다. 책임은 지지 않은 채 손쉽게 대선 후보가 되려는 모습은 당원들의 외면을 받았다. 불과 1주일 전만 해도 당심의 지지가 견고했지만 우유부단한 행보와 잇따른 정치적 실책은 걷잡을 수 없는 결과를 낳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의지와 당권 수호에 공 들이던 국민의힘 지도부에 의해 내세워졌다는 비판을 받았음에도 한 전 총리는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목전에 뒀으나 24시간 만에 반란은 실패로 돌아갔다.
한 전 총리는 개헌과 경제를 강조했지만 대선 공약은 찾아볼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윤 전 대통령의 탄핵 문제에 대해 책임론이 강하게 일었지만 입장도 모호했다. 그는 지난 6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계엄이 잘못됐다 생각한다"면서도 "한마디로 말하면 윤석열 전 대통령은 그렇게 삿된 분(나쁜 분)은 아니다"라는 알 수 없는 말을 남겼다.
12·3 비상계엄 조치가 잘못이라고 언급하면서도 윤 전 대통령을 옹호하면서 윤석열 정권 국무총리로서의 한계에 갇혔다는 분석이다. 새미래민주당 상임고문인 이낙연 전 총리까지 만나 개헌 연대 보폭을 확장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흔들리는 정국에서 누구와도 손을 잡지 못했다. '한강의 기적'을 계속 이어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정치적 명분 없이 표류하다 결국 자연인으로 돌아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