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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거주하며 세금을 내고 살아가지만 정치적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이들이 있다. 바로 '이주민'이다.
이주민은 국경을 넘어 새로운 거주지로 이주해 살아가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주로 노동, 결혼, 해외 동포, 난민, 유학생 등으로 한국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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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기준 국내 체류 외국인은 250만명을 넘어섰다. 다문화 사회로 부르기에 전혀 어색하지 않은 규모다. 이 중 장기 체류자는 약 188만명이다. 이들은 한국에서 생산가능인력으로 경제활동과 납세도 하는 시민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현행법상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에 참여할 수 없다. 영주권(F-5)을 취득하고 3년 이상 거주한 외국인에 한해 지방선거 투표만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유권자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선거 공약에서도 대통령 당선 후 국정과제에도 이민정책은 대체로 포함되지 않는다. 정책이 유권자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비록 투표권은 없지만 이주민도 함께 살아가는 사회의 일원이라면 이들의 마땅한 권리와 삶의 질에 대한 고민이 정책에 포함돼야 한다. 이주민들에게 필요한 정책이 무엇인지 듣기 위해 머니S는 그들이 살아가는 현장을 찾았다.
현장에선 들리는 목소리… 정책에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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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대문구 몽골타운에 자리한 몽골 레스토랑 잘로스는 몽골 현지 음식을 찾는 한국인과 고향의 맛을 그리워하는 몽골인 사이에서 입소문이 난 맛집이다. 이곳의 사장 바얄마씨(Bayarmma·54)는 2006년 가족과 함께 한국에 와 20년째 식당을 운영 중이다. 그는 "반쯤은 한국인"이라고 본인을 표현했다. 하지만 여전히 매년 외국인출입국사무소를 찾아 비자 갱신을 해야 한다.
바얄마씨는 "매번 꼬박꼬박 세금도 내는데, 식당 운영하면서 1년에 한 번씩 비자 갱신하러 가는 건 좀 힘들다"며 "2~3년에 한 번 정도만 해줘도 좋겠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영주권을 얻는 것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영주권 받고 싶어도 통장 잔고가 얼마 있어야 하고 시험도 봐야 하고 가게를 하면 그 조건을 다 맞추기가 사실 어렵다"며 "영주권 받을 때 지금까지 세금을 얼마나 냈는지 봐주고 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어 "한국에서 둘째, 셋째도 낳아서 여기서 학교 다니고 키우고 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익명을 요구한 프랑스인 A씨(32)는 2022년 한국에 들어와 개발자로 일하고 있다. 그 역시 비자 체계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A씨는 "결혼이민이 아닌 이상 비자 신청 조건과 발급이 너무 어렵다"며 "이 때문에 오히려 불법 체류자가 많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자 신청 절차가 완화되면 오히려 외국인들 정보를 데이터화해 정부가 가지고 있어서 이주민 문제 컨트롤이 더 쉬워지고 범죄자 관리도 수월할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민자 또한 세금을 내고 지역 사회를 유지하는 구성원인 만큼 정치권은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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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대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가운데 주요 대선 후보들이 어떤 이주민·다문화 인권 관련 정책을 내놓았는지 직접 분석했다. 기호 5번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를 제외한 세 후보 모두 이민자 권리 확대에 대해 직접적이고 포괄적인 공약은 내놓지 않았다.
지난 20대 대선에서 '이민자 컨트롤타워' 설치, 외국인 아동 보육 지원 등 포괄적 다문화 정책을 약속했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이번 대선에서는 관련 공약을 내놓지 않았다. 10대 공약이나 선관위 제출 공약서에서 이주민·다문화 관련 정책을 명시적으로 찾아볼 수 없다. 다만 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다문화위원회가 주요 다문화 단체들과의 정책 협약으로 이를 대신했다. 지난 20일 사단법인 한마음교육봉사단, 지난 22일 영남권 주요 다문화 단체들과 협약을 맺고 다문화 가정과 이주민의 사회적 통합 촉진에 뜻을 모았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소상공인 지원 정책의 일환으로 외국인 근로자 활용 확대를 제시했다. E-9(고용허가제) 비자를 소지한 서비스업 소상공인 · 자영업자 외국인 근로자의 허용업종 및 직무범위 확대를 약속했다. 그러나 이주민이나 다문화 인권 등 포용적 정책은 없었다. 대선 공약에는 보이지 않지만 국민의힘 역시 정책협약을 체결했다. 국민의힘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여성본부는 지난 27일 중앙당사에서 다문화 및 한부모 가정 아동 지원을 위한 정책 강화를 목표로 사단법인 한마음교육봉사단과 정책협약을 가졌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이주노동자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주장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해외로 생산시설을 이전한 국내 기업이 주요 국가산단(▲울산미포 ▲여수 ▲반월-시화 ▲온산 ▲창원 ▲구미 등)으로 복귀할 경우, 외국인 노동자에게 최대 10년간 최저임금보다 임금을 적게 주는 '차등 임금제'를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A씨는 외국인의 임금 차별에 대해 "한국에서 살아가는 비용은 외국인이나 한국인이나 똑같은데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임금을 낮게 책정하는 건 부당하다"며 "같은 물가, 같은 집세, 같은 식비를 감당해야 하는데 왜 임금만 다르냐"고 반문했다.
다양한 이민자 정책, 빈틈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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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을 앞두고 전문가들에게 현재 이민자 정책의 실태와 개선 방향을 물었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여전히 부족하다"고 답변했다.
지난 28일 이주민센터친구(서울 영등포구)에서 만난 송은정 센터장은 "대선 공약은 단순한 혜택 제시가 아니라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의 방향성을 드러내는 상징적 장치"라고 말했다. 송 센터장은 "실제로 지난 대선에서는 유권자가 아닌 반려동물을 위한 공약도 나왔는데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에 실재하고 경제에 기여하는 이주민을 공약에서 제외하는 것은 차별로 내모는 일"이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유민이 이민자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민자는 이미 한국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인데 투표권이 없고 일부 반이민정서와 특정 국가 혐오 정서 등을 이유로 대선 정책에서 반복적으로 소외돼 왔다"며 "대선 국면에서 이민정책은 오히려 외국인 노동자의 최저임금 제외나 차등 임금 논란 등 반이민 정서를 자극하는 방식으로 활용되곤 한다"고 말했다.
유 연구위원은 계절노동자, 결혼이민자, 이주 배경 학생 등 이민자 관련 정책을 고용노동부, 지방자치단체, 교육부 등 여러 부처에 분산해 운영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그는 "이민정책을 체계화하고, 통합 및 조정할 수 있는 이민전담조직 신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바얄마씨와 A씨가 모두 불편함을 토로한 비자 제도에 대해서도 물었다. 박경태 성공회대 교수는 단순한 인력 도입을 넘어선 패러다임 전환을 제안했다. 그는 "숙련을 갖춘 사람들을 위한 비자 제도 개선, 영주권 또는 장기 체류 자격 취득 요건 완화, 가족 동반 및 정착 지원 강화 등이 필요하다"며 "이미 한국 사회에서 이주민, 특히 이주노동자들은 농업 및 일부 제조업 분야에서 핵심적인 노동력으로 기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주노동자가 없다면 산업 분야의 생산성은 물론 지역 경제 유지에도 심각한 차질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의 양적 수급뿐만 아니라 근로 환경의 개선과 인권 보호도 반드시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