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8회 토니상 시상식에서 '어쩌면 해피엔딩'으로 뮤지컬 각본상을 받은 윌 애런슨(왼쪽)과 박천휴. ⓒ 로이터=뉴스1 ⓒ News1 정수영 기자

(서울=뉴스1) 정수영 기자
"오늘은 우리나라 공연계의 축제 같은 날입니다."
한국 토종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Maybe Happy Ending)'이 제78회 토니상 시상식에서 6관왕에 오른 9일. 수화기 너머로 전해지는 김유철 라이브러리컴퍼니 본부장의 목소리는 상기돼 있었다.

김유철 본부장과 이 뮤지컬의 창작자 박천휴·윌 애런슨의 인연은 1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김 본부장은 우란문화재단의 프로듀서였다. 우란문화재단은 최태원 SK 회장의 모친 고(故) 우란(友蘭) 박계희 워커힐미술관 설립자의 뜻을 이어받아 2014년 설립된 비영리재단이다. 인재 육성과 작품 개발을 핵심 사업으로 삼으며 실험적인 공연과 전시 콘텐츠를 선보여 왔다.


'윌휴' 콤비로 불리는 박천휴 작가와 윌 애런슨 작곡가는 2014년 '어쩌면 해피엔딩' 스토리를 구상했고, 이 작품은 우란문화재단의 창작 지원 사업을 통해 본격적인 개발 작업이 이뤄졌다. 이 작업을 이끌었던 사람이 바로 김유철 본부장이다. 즉 우란문화재단은 '어쩌면 해피엔딩'의 산파 역할을 했고, 김 본부장은 그 과정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현수정 공연평론가가 "'어쩌면 해피엔딩'의 이번 토니상 수상에서 우란문화재단의 지원이 중요했다"고 평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후 '어쩌면 해피엔딩'은 우란문화재단 내부 리딩(낭독) 공연과 트라이아웃(시범) 공연을 거쳐 2016년 12월 대학로 소극장에서 초연을 선보였다.

김유철 본부장은 이와 관련해 "당시 국내에는 작품 개발부터 리딩 공연, 무대화로 이어지는 체계적인 시스템이 없었다, 우란문화재단에서 처음 시도했던 것"이라며 "재단은 박천휴 작가와 윌 애런슨 작곡가에게 창작 환경을 제공하고, 창작 개발금 등 재정적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어쩌면 해피엔딩'의 2016년 10월 뉴욕 리딩 공연 때 김유철 본부장(왼쪽) 모습.(사진=김유철 제공)

'어쩌면 해피엔딩'에서 어떤 가능성을 봤던 걸까.

"일차적으로는 창작자들에 대한 믿음이 있었죠. 박천휴 작가의 전작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의 가사에 담긴 정서적 깊이가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어쩌면 해피엔딩'이 가진 이야기 자체가 한국이나 미국, 인종이나 지역을 초월해 누구에게나 전해질 수 있는 진실한 감정을 담고 있다고 느꼈어요. '감정의 힘'을 믿었죠."

제78회 토니상 6관왕에 오른 힘에 대한 질문에는 "두 창작자의 힘이 가장 컸다고 생각한다"며 "지금은 정말 다양한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지만, 이 작품은 사람과의 이별, 존재에 대한 질문, 마음의 상처와 회복 같은 보편적인 감정을 관객들에게 진심으로 전달한 것 같다"고 했다.

이어 "특히 정서적인 위로나 감정적 울림이 필요한 시기에 이 작품이 그런 역할을 해준 게 아닐까 생각한다"며 "'어쩌면 해피엔딩'은 일반적인 브로드웨이 뮤지컬처럼 '쇼'를 보여주는 스타일이 아니라, 관계와 감정을 섬세하게 풀어낸 작품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편 '어쩌면 해피엔딩'은 제78회 토니상 시상식에서 작품상·각본상·연출상 등 총 6개 부문에서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K-뮤지컬의 새 역사를 썼다. 현재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관객의 뜨거운 반응을 얻으며 순항 중이며, 국내 10주년 기념 공연은 오는 10월 30일부터 2026년 1월 25까지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펼쳐질 예정이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브로드웨이 공연 장면(NHN링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