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이던 지난 2023년 3월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주 4.5일제 도입 방안 마련을 위한 긴급 토론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 사진=뉴스1 DB

정부가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인 '주 4.5일 근무제' 도입을 위한 본격적인 검토 작업에 착수하면서 노동시장의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정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긴 근로시간을 단축해 노동자 건강권을 보장하고 삶의 질을 높인다는 구상인데, 차질 없는 공약 이행을 위해선 노동생산성 향상과 임금 보전 방안이 동반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韓 근로시간, 2030년까지 OECD 평균 맞춘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최근 국정기획위원회에 주 4.5일제 도입과 관련한 계획이 포함된 업무보고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이 대통령의 주 4.5일제 공약과 맞닿아있다. 앞서 이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한국의 평균 노동시간을 OECD 평균 이하로 단축하기 위해 주 4.5일 근무제 도입 기업에 대한 지원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한국의 노동시간은 점진적으로 감소해왔다. 한국은 1953년 5월 근로기준법에 1일 8시간 주 6일 근무제(주 48시간)가 제정된 이후 36년이 지난 1989년 주 44시간으로 법정 노동시간이 4시간 단축됐다.

2003년 법정 노동시간은 주 40시간으로 다시 4시간 단축됐고 2004년 7월 명목상 주 5일 근무제가 공식 도입됐다. 이후 '노는 토요일(놀토)' 실시 등 점진적인 확산 노력으로 2012년에 들어서야 현재의 주 5일 근무제가 실질적으로 현장에 정착됐다.


하지만 해외 주요국에 비해 여전히 더 많은 시간을 일하고 있다. 2023년 기준 한국 임금노동자의 연간 근로시간은 1874시간으로, OECD 회원국 평균(1717시간)보다 157시간 길다. 주 40시간 근무 기준으로 환산하면 한국 직장인이 OECD 평균보다 한 달 이상 더 일하는 셈이다.

이 대통령은 이 같은 장시간 일하는 관행을 타파하겠다는 방침이다. 먼저 4.5일제를 도입한 뒤 점진적으로 근로시간을 더 줄여나가 2030년까지 OECD 평균 이하로 일하는 시간을 낮춘다는 구상이다.

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방안으로는 여러 모델이 검토되고 있다. 법정근로시간을 줄이는 게 대표적이다. 안식휴가제를 실시하거나 연차휴가를 확대하는 등 연간노동시간을 단축하는 방법도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방안은 법정근로시간을 줄이는 방안이다. 현재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주당 근로시간은 법정근로 40시간, 연장근로 12시간으로 최대 52시간이다. 법 개정을 통해 법정 근로시간을 40시간에서 36시간으로 4시간 줄이거나 연장근로 시간을 12시간에서 8시간으로 줄이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지난 25일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4.5일제 실행 방식에 대한 질문에 나왔다. 이에 대해 김유진 노동부 노동정책실장은 "현재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협의 중"이라며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 곤란하다"고 언급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지난해 5월1일 오후 서울 광화문네거리에서 열린 민주노총 2024 세계 노동절 대회에서 주4일제 도입 촉구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사진=뉴스1 신웅수 기자

생산성 높이고 임금삭감 없는 방안 논의 필요

노동계와 경영계의 반응은 엇갈린다. 노동계는 노동자들의 건강권과 삶의 질을 위해 조속한 4.5일제 도입이 필요하다며 정부의 정책을 환영하고 있지만, 경영계는 생산성 악화와 임금 부담 등을 우려하며 반대하고 있다.

경영계가 반대 명분으로 삼는 것은 노동생산성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의 절대적 수준은 54.6달러로 OECD 평균(70.6달러)의 77.4%, G7 평균(80.6달러)의 67.8%에 그친다. 특히 미국 대비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57% 수준이며 독일 대비로는 65% 수준에 불과하다. 이미 노동생산성이 낮은 상황에서 근로시간을 줄일 경우 생산성이 더욱 악화할 것이란 게 경영계의 입장이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노동생산성 수치 계산방식이 국내총생산(GDP)을 총근로시간으로 나눈 결과이기 때문에 장시간 근로를 하는 한국의 구조상 생산성 수치가 낮을 수밖에 없다고 맞선다. 결국 근로시간을 줄이면 생산성은 올라갈 것이란 주장이다.

근로시간이 줄어든 만큼의 임금을 어떻게 보전할 것이냐도 관건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방안은 임금 삭감이 없는 근로시간 단축이다. 하지만 경영계는 이 같은 방식이 기업의 비용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반대로 임금을 삭감할 경우 노동계의 거센 저항에 직면하게 된다.

정부는 올해 하반기까지 주 4.5일제 도입을 위한 로드맵을 마련할 방침이다. 해당 로드맵엔 임금 보전 방안도 담길 전망이다. 김민석 노동부 차관은 국회 환노위 전체회의에서 근로 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보전 문제에 대한 질문에 "그런 내용까지 포함해서 검토하고 있다"며 "종합적으로 살피겠다"고 말했다.

정부의 로드맵 수립 과정에서는 노사의 대화가 병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이 제도의 일방 시행보다는 노사 대화를 우선하겠다는 방침을 밝혔기 때문이다.

앞서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경제5단체장과의 간담회에서 "제가 어느 날 갑자기 긴급 재정명령으로 (주 4.5일제를)시행하지 않을까 걱정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렇게 할 수 없고 (노사가)대화하고 준비해야 한다"며 "누가 일방으로 정해서도 안 되고, 충분한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