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이 된 조종사가 모든 책임을 떠안게 됐다. 조종사 외 다른 이들과 기관들은 사고 책임에서 자유로워졌다. 지난해 12월29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원인이 '조종사 과실'로만 결론지어졌다. 무안공항 안전 관리·운영 주체인 국토교통부·한국공항공사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게 됐다.

국토부 산하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는 최근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조류 충돌로 엔진이 타격을 받은 뒤 조종사가 화재 발생 엔진이 아닌 다른 엔진을 잘못 꺼 발생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사조위는 한국 주관으로 미국, 프랑스 사고 조사 당국 등과 합동조사단을 구성해 조사했고, 엔진 제작사 프랑스 샤프란과 지난 5월12일~6월4일까지 조사 및 논의를 거쳐 이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고 했다.

사조위의 발표에 대한민국조종사노동조합연맹과 참사 유족은 반발했다. 조종사노조연맹은 성명서를 통해 제주항공 참사 원인을 인적 과실로만 부각하며 브리핑을 시도한 사조위의 악의적 행태를 규탄했다.

김유진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도 "사고 원인 조사 과정과 어떤 사항들이 증거가 될 수 있는지 명확한 사실을 공개해야 한다"며 "사조위가 유가족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청회를 개최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조종사노조연맹과 유족의 반발을 산 사조위의 발표가 사고 원인을 고인에게 떠넘겼다는 비난의 목소리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당초 사고 원인으로 지목됐던 콘크리트 둔덕형 방위각(로컬라이저)에 대한 내용은 언급조차 없었다.

2020년 5월 무안공항 로컬라이저 개량 사업 당시 안전 관리 책임자였던 손창완 전 공사 사장이 참사 이후 극단적 선택을 하며 국토부와 공사의 책임론이 제기됐지만 자신들의 과오는 덮고, 아무 말 할 수 없는 고인에게 떠넘긴 채 뒷짐을 졌다는 시각이 많다. 사조위 발표는 사고 참사 유족뿐 아니라 승객을 살리기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했던 조종사의 유족에게도 상처를 입혔다.

이재명 대통령은 무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를 비롯한 사회적 참사 유가족을 지난 7월16일 청와대 영빈관으로 초청해 "정부가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고개 숙였다. 이 대통령은 "국가의 부재로 인해 억울한 국민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사조위는 나흘 뒤 유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발표를 자행했다.

사조위 발표대로 조종사의 대처가 사고의 원인일 수도 있지만 절대적일 순 없다. 참사의 주요 요인으로 지목됐던 '로컬라이저'라는 매개체가 있는 한 국토부와 한국공항공사가 관련 사고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로컬라이저가 없었다면 그토록 많은 승객들이 허무하게 생을 마감하지 않았을 것이란 사실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지난 4일 국회 본회의에선 '공항시설법' 개정안이 재석 236인 중 찬성 235인, 기권 1인으로 통과됐다. 해당법 개정안은 무안공항 로컬라이저 논란에서 비롯된 것이다. 개정안은 활주로 주변에 설치하는 항행안전시설 등의 물체는 항공기에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부러지기 쉬운 재질 및 최소 중량·높이로 설치하도록 하는 고시 규정을 법률로 상향했다.

국회에서 법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국토부와 공사는 사과 한 마디 없이 여전히 조용하다. 무안공항의 안전 관리·운영 주체인 두 기관은 고개를 숙이고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에 앞장서야 하지만 그런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사고 당시 승객의 안전을 위해 비상착륙을 시도하며 몸부림 쳤을 조종사와 승무원, 목숨을 잃은 승객들을 위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국토부와 공사가 답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