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12m에 달하는 거대 로봇이 팔을 휘두르자 이를 바라본 이들의 환호성이 쏟아졌다. 덩치가 커서 움직임이 매우 둔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동작은 꽤 빨랐다. 전북 무주군의 의뢰로 경기도 용인 케이엔알시스템(이하 KNR시스템) 공장에서 제작 중인 '로보트 태권V(브이)' 얘기다. 상·하체를 포함한 34개 유압 관절로 제어되며 상체 4.8m·하체 7.2m 규모에 무게는 약 20톤(t)에 달한다. 팔을 뻗고 허리를 틀며 옆차기까지 구현하는 이 로봇은 실제 태권도 품새를 수행할 수 있는 '동작형 로봇'이다. 50여년 전 소년들의 가슴을 웅장하게 만든 만화 속 영웅이 국내 기술로 되살아난 것이다.
KNR시스템은 2000년 설립 이후 '최고의 로봇 기술로 세상에 기여한다'는 신념 아래 연구개발을 이어온 로봇 전문기업이다. 초창기에는 제품 신뢰성 평가 장비를 국산화하며 산업 현장의 기술 자립을 도왔고 고가의 외산 장비 의존 구조를 바꿨다. 이후 구조설계와 제어기술을 기반으로 유압로봇 분야로 사업을 확장해 현재는 국내 유압로봇 기술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자리 잡았으며 작년 3월 코스닥 상장에 성공했다.
태권브이 프로젝트는 KNR시스템의 기술력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핵심 부품인 유압 액추에이터와 서보밸브의 70% 이상을 자체 제작했고, 전체 부품의 80% 이상을 국산화했다. 고강성 프레임과 고출력 유압 시스템을 적용해 기존 전기모터로는 구현이 불가능한 고하중·고정밀 제어를 유압으로 실현했다.
김명한 KNR시스템 대표는 지난 23일 용인 본사 공장에서 머니S와 만나 '태권브이 프로젝트'는 회사의 모든 역량을 집대성한 결정체라고 평했다. 특히 "로봇이 수행하는 고하중·고위험 영역에서 유압은 여전히 핵심"이라며 "전동만으로는 힘이 부족하기 때문에 유압이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많다"고 강조했다. 이어 "해외 주요 기업들이 유압 방식을 포기하는 사례가 있지만 우리는 버리지 않는다"고도 했다. 전동의 정밀함에 유압의 힘을 더한 하이브리드 구동이 KNR의 차별성이기 때문이다.
태권브이 로봇에는 AI 기반 '모션 리타게팅'(Motion Retargeting) 기술이 적용됐다. 실제 태권도 국가대표 선수의 품새 동작을 모션캡처로 기록한 뒤 이를 로봇 관절 각도로 변환해 그대로 재현한다. '디지털 트윈' 시뮬레이션을 통해 모든 동작의 충돌과 하중을 사전 검증해 구조적 안정성을 확보했다.
"사람과 함께 일하는 로봇"… 김명한 대표가 말하는 KNR시스템의 방향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혁신적인 로봇 기술로 산업의 미래를 선도하는 것'이 KNR의 목표다. 김 대표는 "로봇은 사람의 일을 대신하거나 위험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그게 우리가 기술을 만드는 이유"라고 말했다.
기술에 대해서는 "기계가 사람을 닮아야지 반대로 되면 안 된다"며 "AI는 인간의 판단을 보조하는 도구일 뿐이며, 기술은 결국 사람이 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KNR시스템의 방향을 "우리가 만드는 건 결국 사람과 함께 일하는 로봇"이라고 요약했다.
KNR시스템은 현재 산업용 로봇과 방산로봇, 하이브리드 유압 액추에이터 등 고하중 로봇 기술을 중심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휴머노이드 개발에도 착수, 산업·조선·재난구조 등 고위험 환경에서 사람을 대신할 로봇 플랫폼 구축을 추진 중이다.
김 대표는 "우리는 기술기업에서 제조기업으로 전환하는 단계에 있다"며 "지난 25년 동안 개발만 해왔지만, 이제는 시장이 요구하는 제품을 만들고 양산체계를 완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KNR시스템의 비전은 명확하다. '모든 험지(險地)에서 KNR의 로봇이 인간을 보호한다.' 김 대표는 "태권브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우리가 추구하는 기술 철학의 출발점"이라며 "산업과 사람을 함께 지키는 로봇을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