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영업부서에서 일하던 A씨. 회사 상사인 팀장이 타 회사로 스카우트되면서 A씨도 함께 이직했다. 그가 회사를 옮길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월급통장 옮기기. 월급통장에 따라 자연스레 주거래은행이 바뀌는데 공과금 수납부터 휴대폰요금 자동이체까지 일일이 변경해야 해 번거롭기 짝이 없었다.

누구나 한번쯤은 주거래은행을 옮기면서 자동이체 변경이란 귀찮은 일을 해봤을 것이다. 통신사에 연락해 휴대폰요금 자동이체 은행을 바꾸고 카드회사에 연락해 카드결제통장을 바꿔야 한다. 이외에도 집 관리비나 공과금, 자녀교육비 관련 자동이체도 손수 변경해야 하며 주식계좌와 연계된 은행계좌도 신경 써야 한다.


사실 주거래은행 변경은 이사하거나 휴대폰을 바꾸는 번거로움과 맞먹는다. 이사를 하면 동사무소에서 주민등록증을 갱신해야 하고 각종 카드명세서를 포함해 집으로 배달되던 신문, 잡지, 우유 등의 업체에 연락해 주소를 변경해야 한다. 게다가 인터넷쇼핑이나 홈쇼핑 시에도 이미 입력된 주소를 변경해야 하는 귀찮음이 따라온다.

이사보다 더 빈번히 일어나는 휴대폰기기 변경이나 번호변경의 번거로움은 많이 익숙할 테다. 주소록과 사진첩을 옮기는 서비스는 휴대폰대리점에서 대신해준다 하더라도 번호가 바뀌었음을 알리는 메시지를 지인에게 일일이 보내야 한다. 주소변경과 마찬가지로 주요서비스에서 휴대폰번호가 변경됐음을 알려야 하고 기기변경까지 했을 땐 자주 사용하던 애플리케이션을 다시 다운받아야 한다. 휴대폰번호의 입력으로 자동 연동되던 각종 포인트도 직접 변경해야 한다.

모두 고객 편의를 위해 만든 서비스지만 이를 변경하려면 번거롭다. 따라서 더 나은 대안이 필요한데 최근엔 이사했을 경우 자동화 서비스가 구축돼 클릭 몇번만 하면 주소변경이 가능하고 휴대폰 변경도 애플리케이션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와 함께 주거래은행 변경의 번거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계좌이동제가 도입됐다. 금융결제원은 오는 10월 계좌이동제 서비스의 본격 시행을 앞두고 지난 7월1일 ‘페이인포’ 사이트를 오픈했다. 계좌이동제란 주거래은행을 변경할 경우 그 계좌에 연결된 입출금 이체정보를 동시에 변경할 수 있는 서비스다. 여러 금융회사에 등록된 자신의 자동이체 등록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으며 변경, 해지도 가능한 전 금융회사의 통합서비스다.

[시시콜콜] 은행권 판도 바꿀 ‘강력 무기’

◆은행권, 치열한 고객 쟁탈전 예고

계좌이동제가 시행되면 현재 고객이 일일이 계좌번호 변경을 신청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어져 주거래은행을 다른 은행으로 갈아타는 경우가 늘어날 전망이다. 손쉽게 주거래계좌를 바꿀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은행권의 치열한 고객 쟁탈전이 예고된다.
계좌이동서비스는 페이인포 사이트의 7월 출범과 함께 단계별로 추진될 예정이다. 현재 페이인포 사이트에서는 자동납부서비스를 조회하고 해지할 수 있다. 이후 오는 10월 본격적으로 서비스가 시행되면 자동납부의 계좌변경과 함께 고객 동의자료 열람도 가능해진다.

내년 2월에는 서비스의 범위가 더욱 확대돼 자동송금 조회·해지·변경을 할 수 있다. 내년 6월에는 은행·보험·카드사 등을 포함한 전체 요금청구기관에 대한 ‘자동납부’ 변경도 할 수 있게 된다.

제대로 정착된다면 편리한 계좌이동제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금융위원회는 지난 2013년 11월 ‘금융업 경쟁력 강화방안’의 하나로 계좌이동제 도입을 선언했다. 고객이 간편하게 주거래계좌를 갈아탈 수 있도록 해 서비스 품질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동안 귀찮아서 주거래 계좌를 바꾸지 않았던 고객이 클릭 몇번으로 이탈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된 만큼 각 은행은 계좌이동제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올 3월 말 자산기준으로 1위 은행은 국민은행(282조)이며 우리은행(279조원)과 신한은행(261조원)이 뒤를 이었다. 그런데 빠르면 오는 9월쯤 통합 하나·외환은행이 출범할 예정이어서 은행권의 1위 다툼이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통합 하나·외환은행의 예상 자산은 290조원으로 자산기준 은행권 1위에 오를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계좌이동제가 실시되면 한번 더 은행 간 서열이 뒤바뀔 수 있다. 계좌이동제 시행으로 고객이탈 행렬이 일어난다면 어느 은행이든 순위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보통예금을 포함한 결제성예금시장이 200조원 이상으로 예상되는 만큼 파급력이 클 전망이다. 결제성예금은 수시로 입출금이 가능하지만 은행의 안정적인 자금을 확보하는 원천 중 하나다. 하나금융이 밝힌 평균 결제성예금은 카드결제계좌의 경우 50만원, 급여계좌가 200만원가량이다. 계좌이동제에 따라 결제성예금의 향방이 바뀌면 은행에 큰 위기가 올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페이인포를 통한 단계별 서비스는 이제야 첫걸음을 내디뎠다. 실제로 어느 정도 성과를 낼 것인지 장담하기 힘들다. 자동이체통합관리시스템인 페이인포를 통해 해지된 자동이체 건수는 초기 10일 동안 약 1만4000여건이었다. 은행별로는 시장점유율이 가장 높은 국민은행이 3920건으로 가장 많았고 우리은행 2696건, 신한은행 2539건 순이었다. 물론 아직은 자동이체조회와 해지만 가능하고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자동이체 계약변경이 가능한 만큼 추이는 더 지켜봐야 한다.

지난 2013년 신계좌이동제를 도입한 영국의 경우 은행 간에 희비가 엇갈렸다. 바클레이스(Barclays)나 로이즈(Lloyds) 등 대형은행들은 계좌이동제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응해 많은 계좌유출이 일어났지만 산탄데르(Santander)나 할리팩스(Halifax) 등 중소형 은행은 고강도 인센티브를 제공해 많은 계좌를 확보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얼마나 많은 고객이 은행계좌를 변경하게 될까.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서울시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절반 이상이 주거래계좌 변경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국내 은행들도 영국은행의 사례를 보며 신규고객 확보와 기존고객 이탈방지를 위한 대응책을 준비 중이다.

◆인터넷전문은행에 좋은 기회

이번 계좌이동제를 반기는 곳은 따로 있다. 바로 올해 안에 인허가과정을 끝내고 내년부터 본격영업을 준비 중인 인터넷전문은행이다. 기존의 모든 은행업무를 할 수 있는 데다 보험은 물론 카드영업까지 허가를 받게 될 인터넷전문은행에 계좌이동제는 매우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인터넷전문은행은 계좌개설에 반드시 필요한 실명인증을 비대면 실명확인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금리도 유리하다. 뿐만 아니다. 복잡하고 귀찮을 수밖에 없는 각종 결제계좌변경도 원스톱으로 가능하다. 이 같은 편리한 서비스를 갖춘 은행을 마다할 소비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인터넷전문은행에 기존 은행이나 소위 재벌그룹의 참여는 쉽지 않아 보인다. 따라서 인터넷은행에 적극적인 참여의사를 보이는 미래에셋이나 키움증권 등에 꾸준한 관심을 가질 만하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9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