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헬리오시티 인근 공인중개사 사무소 모습. /사진=뉴시스 김병문 기자
문재인정부 2기내각 구성이 진행되는 가운데 부동산 규제완화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역대 최고규제로 불리는 부동산대책이 잇따라 시행돼 정권 중반인 3년차 ‘집값 안정’을 이뤘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일각에서는 오히려 실수요자 피해가 확산돼 부작용만 양산했다는 반발이 거세다. 또 신임 국토교통부 장관으로 지명된 최정호 후보자가 주택부문이 아닌 교통‧항공분야 전문가라는 이유로 정부가 부동산규제에 힘을 뺄 것으로 기대하는 시각이 존재한다.
◆최종 피해자는 다주택자 아닌 세입자
부동산 규제완화의 타이밍이 거론되는 이유는 최근 시장에서 나타난 각종 문제 때문이다. 천정부지로 치솟던 서울 아파트값이 4개월여 내리고 ‘로또’로 불리던 서울 아파트 분양시장에서도 청약 미달 현장이 나타났다. 지표만 놓고 보면 당초 정부의 목적이던 집값 안정을 성공적으로 이뤘다고 볼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다양한 부작용이 속출했다.
우선 거래가 얼어붙어 소수의 매매가격이 전체 지표에 반영되는 착시효과가 일어났다. 지난해 12월부터 올 2월까지 3개월간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5700여건으로 전년동기대비 80% 이상 감소했다. 서울 용산 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가격을 많이 낮춘 급매만 겨우 거래되는데 매수 대기자들이 추가적인 가격하락을 기대해 내집 마련도 미루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전세난이다. 전셋값 하락과 전세공급 증가로 집주인이 새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미반환 사고가 급증했기에 다주택자 대출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전세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한 미반환 사고가 지난해 총 372건(792억원)으로 2017년 33건 대비 10배 이상 증가했다. 올 1월에도 57건이 발생해 같은 기간 18건에서 3배 이상 증가했다.
대출규제는 실수요자의 내집 마련도 가로막는다는 지적이다. 무주택자라도 주택담보대출한도(LTV)가 서울 기준 40%까지 줄어든 데다 9억원 이상 아파트의 중도금대출이 금지돼 분양을 받고도 계약을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위기 때 집주인에게 전세금 반환 용도의 주택담보대출을 허용했었는데 지금까지 지침이 오지 않았다”면서 “청약이나 세금규제의 경우 다주택자라도 저가주택 등의 예외적용이 있지만 대출은 아예 막힌 상태”라고 말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정부가 지방 역전세난 등의 분위기를 모니터링하고는 있지만 정책변화를 기대하기가 어렵다”고 보면서도 “현재 상황은 안정보다는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 동결상태라 보유세를 높인 대신 거래세를 낮추거나 생애최초 주택담보대출 LTV와 대출완화 연소득기준 7000만원 등을 높여주는 방법이 무주택 실수요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시했다.
그는 또 “특히 대출규제는 다주택자 집주인이 타깃인데 결과적으로 경제적 약자인 세입자가 피해를 보는 만큼 보증금 반환대출만은 허용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토부장관 후보자 최정호 전차관. /사진=뉴스1 DB
◆규제 ‘유지 VS 완화’ 놓고 미묘한 해석차
이런 상황에 새 내각이 들어서면 부동산규제 기조가 바뀔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최 내정자는 국토부에서 권도엽 전 장관 이후 6년만의 내부 출신 장관 후보다. 국토부는 2013년 국토해양부에서 개편 후 줄곧 외부인사가 장관직을 수행했다.
내부 출신 장관의 경우 상대적으로 독자적인 정책 수행이 가능하다는 점도 있지만 최 내정자는 2010년 고위공직자로 오른 이후 서울지방항공청장, 철도정책관, 항공정책실장, 기획조정실장 등 교통부문만 담당했다. 201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발생한 아시아나항공 착륙 사고를 조사하면서 업무처리 능력을 인정받아 2015년 국토부 제2차관에 올랐다.
이 같은 이유로 그동안 지속돼온 정부의 부동산규제가 힘이 빠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또 지난해 착공 기념식을 가진 남북 철도·도로 연결사업도 교통분야와 가까워 이런 해석에 힘을 싣는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현재 시장상황과 정책 책임자 교체가 맞물려 규제완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이런 기대가 성급하다는 시각도 있다. 김수현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을 중심으로 청와대가 규제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다.
박선호 국토부 제1차관은 올해 업무보고에서 “아직 유동성이 풍부하고 개발사업에 대한 기대감이 있다”면서 “시장을 모니터링하고 앞으로 불안 조짐이 나오면 조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박 차관은 “투기수요가 효과적으로 관리되고 충분한 공급물량이 나와 주택시장 안정은 더 강화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최 내정자는 지명 직후 “부동산 투기규제와 실수요자 중심의 주거복지정책을 이어갈 것”이라면서도 “국민의 주거안정과 삶과 일터를 빠르게 이어주는 교통서비스, 국토 균형발전, 한반도 신경제 실현을 위한 SOC 확충이 가장 역점을 둬야 할 정책”이라고 말했다.
내년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부동산규제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는 부분 역시 정부로서는 부담이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84호(2019년 3월19~25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