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사진=임한별 기자 |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오늘(29일) 단식투쟁 종료를 선언했다. 단식 8일 만이다.
앞서 그는 지난 20일 문재인 정부를 향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 철회 ▲공수처법 포기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철회를 요구하며 단식에 돌입했다.
이처럼 정치인들이 ‘여권 투쟁 방식’으로 단식을 활용하는 가운데 <머니S>가 역대 정치인들의 단식농성을 짚어봤다.
![]() |
김영삼 전 대통령. /사진=뉴시스 |
김영삼 전 대통령은 신민당 총재였던 지난 1983년 5월18일 ‘국민에게 드리는 글’로 정부에 ‘민주화 5개항’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한 뒤 단식을 시작했다. 그가 주장한 ‘민주화 5개항’은 ▲언론통제의 해제 ▲정치범 석방 ▲해직 인사들의 복직 ▲정치활동규제 해제 ▲대통령 직선제를 통한 개헌 등이다.
김 전 대통령의 단식이 일주일을 넘기자 당시 전두환 정부는 그를 강제로 병원에 이송하는 등 농성을 방해했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은 단식을 이어갔고 결국 가택연금에서 풀려났다.
![]() |
김대중 전 대통령 내외. /사진=뉴시스 |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난 1990년 노태우 정부를 향해 내각제 반대와 지방자치제 실현을 주장하며 13일 동안 단식을 진행했다. 그는 당시 “이 같은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대여협상에 불응하는 것은 물론 현 정권의 종식투쟁을 전개하겠다”고 선언했다. 단식 이후 대통령 직선제와 지방자치제가 시행되면서 김 전 대통령의 단식이 기폭제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 |
전두환씨 내외. /사진=뉴시스 |
전두환씨는 지난 1995년 김영삼 정부에서 통과된 5·18 특별법으로 자신이 구속되자 이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28일 동안 단식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는 단식 중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병원에서 제공한 죽을 먹고 식중독에 걸려 단식을 중단했다.
![]() |
문재인 대통령 새정치민주연합의원이던 시절 단식. /사진=뉴시스 |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던 시절 세월호 유족인 ‘유민아빠’ 김영오씨의 단식을 중단시키기 위해 10일 동안 단식을 진행했다. 문 대통령은 단식농성 기간 ‘세월호 특별법’(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을 국회에 통과시킬 것을 촉구했다. 이 법은 결국 지난 2014년 10월 국회를 통과했다.
![]() |
이재명 경기도지사 성남시장 당시 단식. /사진=뉴시스 |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경기 성남시장 시절 지방재정 개혁안 철회를 외치며 11일 간 단식에 돌입했다. 박근혜 정부는 경기지역 6개 지자체의 1년 예산 중 8000억원 정도를 도내 다른 지자체에 나눠주는 지방재정 개편을 추진한 바 있다. 이 시장은 당시 “어려운 지자체를 돋는 개혁안 같지만 본질은 정부에 고분고분하지 않는 지자체의 목줄을 조이는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며 단식했다.
![]() |
이정현 무소속 의원 단식 당시 모습. /사진=뉴스1 |
지난 2016년 9월 이정현 당시 새누리당 대표는 김재수 농식품부 장관의 해임안 처리에 반발하며 정세균 국회의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에 나섰다. 그는 건강상의 문제로 7일 만에 단식을 중단했는데 단식 도중 당 대표실에 문을 걸어 잠그고 들어가 비공개 단식이라는 조롱을 받기도 했다.
![]() |
조원진 대한애국당 대표. /사진=뉴시스 |
조원진 대한애국당 대표는 지난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불구속수사 촉구와 함께 석방을 요구하며 14일 간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조 대표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정치보복 중단과 손석희 JTBC 사장에 대한 특별검사의 수사를 촉구하며 농성했지만 건강 악화로 결국 단식을 중단했다.
![]() |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 단식 당시 모습. /사진=뉴시스 |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해 ‘드루킹 사건’과 관련해 정부여당 특검도입 수용을 촉구하며 8일 간 단식했다. 그는 단식 기간 중 한 남성에게 오른쪽 턱 부분을 가격당해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다.
![]() |
자유한국당 릴레이 단식. /사진=뉴스1 |
자유한국당은 지난 1월24일 문재인 대통령이 조해주 중앙선거관리위원 후보자의 임명을 강행하자 ‘좌파 독재 저지 및 권력 농단 심판’이라며 릴레이 단식을 시작했다.
하지만 ‘오전 9시~오후 2시30분’, ‘오후 2시30분~저녁 8시’ 3~9명씩 그룹을 지어 교대로 단식농성을 하자 정치권에서는 ‘웰빙 단식’, ‘릴레이 다이어트’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특히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고자 식음을 전폐하는 단식 투쟁의 취지가 무색하다는 지적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