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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이하 카프재단)과 카프병원 정상화와 알코올 치료공공성 확보를 위한 시민대책위원회 회원들이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계동 보건복지부 앞에서 ‘카프 정상화와 재단의 통합적 기능 유지 보장 및 공공기관 전환과 알코올 폐해 정책수립 촉구’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뉴스1 이광호 기자) |
알코올중독자 치료 카프병원 운영 중단, 무슨 사연?
"방만경영해 지원 중단"… 병원노조 "술장사 방편 삼아"
"방만경영해 지원 중단"… 병원노조 "술장사 방편 삼아"
하이트진로, 오비맥주, 롯데주류 등 23개 업체가 결성한 한국주류산업협회는 당초 매년 50억원씩 출연금을 내 병원 재단을 운영하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주류협회 측은 지난 3년간 150억원에 달하는 출연금을 지원하지 않았고 병원은 결국 경영난으로 운영이 중단된 상태다.
정철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 분회장은 "매년 수천억원씩의 흑자를 올리는 주류업계가 알코올중독자를 치료하는 병원에 50억원을 내지 못하겠다는 것 자체가 병원을 살리는 데에 의지가 없는 것"이라며 "주류협회는 약속했던 금액을 출연하고 병원운영에서 손을 떼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주류협회 관계자는 "재단의 운영에 대해 노조가 지속적으로 반대해 경영 자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며 "재단 운영에서 손을 떼라면서도 출연금을 내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 병원 노조 "약속대로 출연금 이행해야"
카프병원은 치료를 원하는 알코올중독자가 자발적으로 입소해 치료를 받게 했다. 보호자가 강제로 입소시키는 방식을 탈피한 운영 시스템을 갖춘 것. 환자의 의지가 있는 만큼 재활률도 높았다는 게 병원 측 설명이다. 특히 카프병원은 예방부터 치료·재활·연구까지 통합적으로 진행하는 국내 유일의 병원이었다.
병원노조 측에 따르면 주류에 대해 건강증진기금을 부과하는 대신, 국세청 주도로 주류소비자보호사업을 추진하기로 당국과 주류업계가 약속했다. 이에 보건복지부에 매년 50억원을 출연하기로 주류협회가 각서하고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를 설립했다는 것이다. 이후 2004년 재단사옥을 준공하고 카프병원이 문을 열게 된다.
하지만 이후 주류협회와 병원 직원 간의 갈등은 끊이지 않았다. 재단이 병원을 연지 1년 만에 주류협회가 출연금 지급을 중단하고, 알코올중독자 재활 사업을 포기하겠다고 한 것. 이후 병원노조가 설립돼 2007년 주류산업협회와 주류제조사대표를 상대로 매년 50억원을 출연하겠다고 재약속을 받는다.
그러나 한동안 잠잠하던 병원은 2010년 다시 들썩인다. 주류협회가 다시 출연금을 중단하고 재단건물 매각과 병원사업을 포기하도록 강요했기 때문이다.
주류협회가 강조하는 '건전한 주류문화' 역시 적당히 마시는 문화를 만들며 술장사를 하는 방편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정 분회장은 "병원이 소외됐던 알코올중독자를 사회로 재활시키는 동안 주류업자는 물론 보건복지부는 팔짱만 끼고 있었다"며 "지금까지 한 일이 없다"고 성토했다.
그는 "지난 10년간 병원을 운영해온 노하우가 있고 수많은 알코올중독자가 병원의 도움을 받아 새 삶을 찾았다"며 병원을 폐쇄하는 대신 대안을 내놨다. 주류업계 대신 국가에서 병원사업을 맡아달라는 것이 병원노조 측의 요구다.
하지만 보건복지부 역시 병원을 공공의료기관으로 떠안는 게 어렵다는 입장이다. 카프재단을 운영할 수 있는 예산이 배정돼 있지 않고 민간재단을 공공기관으로 전환하기 위해 필요한 여러 가지 법적인 개정절차를 밟는 것이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 주류업계 "방만 경영 문제있다"
그렇다면 주류협회는 왜 출연금 지원을 중단했을까. 주류협회 측은 재단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것이 자발적인 사회공헌이지 강제적인 의무는 아니었다고 말한다.
서정록 주류협회 이사는 "술을 파는 주류업계가 알코올중독자를 치료하는 병원을 설립한 것부터가 병 주고 약 준다는 비판이 높았다"며 "치료 사업보다는 예방에 중점을 두는 게 옳겠다고 결정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서 이사는 "병원이 설립된 후 노조의 방해가 심해 한시도 제대로 된 경영을 할 수 없었다"고 항변했다. 그는 "주류협회 입장에서는 어렵게 사업을 해서 돈을 줘봤자 운영과 경영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며 "사회공헌 사업이 이렇게 어려워서야 어느 누가 지원금을 계속 주겠느냐"고 반문했다.
주류협회가 카프병원에서 손을 떼고, 재단은 병원을 팔아 상업성이 있는 건물을 사서 더 이윤을 남기는 게 옳다는 입장이다.
주류협회는 병원 측의 방만한 운영을 지적하기도 했다. 의료진과 행정직원 등의 월급이 5년간 타 병원의 1.5배에 달했다는 것.
이에 대해 서 이사는 "다른 병원보다 좋은 대우를 해줬지만 병원 노조는 이사회를 열 수 없게 방해해 경영적자를 일으켰다"며 "현재의 상황으로는 주류협회가 손을 떼는 대신 다른 업체가 병원을 맡아주길 바라고 있다"고 설명했다.
◆ 양측 갈등에 알코올중독환자 어디로
현재 알코올중독자는 약 600만명. 이들을 치료할 병원이 부족한 가운데 초기 의욕적으로 운영되던 병원마저 사라질 위기에 놓이자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국내에서 알코올중독 치료와 재활·예방 인프라는 취약한 편이다. 민간 의료기관은 6곳에 불과하고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의료기관은 아예 없는 실정이다. 보건복지부의 의지도 부족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알코올중독이 정신질환으로 분류되는 만큼 치료와 재활시설을 향한 사회적인 반감이 높은 탓도 있다.
카프병원 사태 이후 환자들은 현재 치료를 중단하거나 고비용이 들어가는 다른 병원으로 어쩔 수 없이 이전해 치료받고 있다. 하지만 가족은 물론 본인의 생계를 책임질 수 없는 알코올중독자가 치료비가 높은 다른 병원으로 옮겨가는 것이 여간 부담이 아니다.
병원의 한 관계자는 "알코올중독 환자는 단순히 약을 먹고 주사를 맞는다고 치료되지 않는다"며 "재발률이 높기 때문에 사회에 안착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돕는 게 중요한데 현재 병원이 문을 닫아 환자들이 재발하지 않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9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