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주·동빈의 ‘왕자의 난’으로 나라 전체가 재계 5위 롯데그룹을 주시하고 있다. 당사자인 롯데로서도 창사 이래 재계와 국민의 시선을 이렇게까지 받은 적은 없었을 터. 경영권 쟁탈전이 한창인 지금, 롯데를 바라보는 재해석의 시각이 있다. 롯데의 기업정체성에 대한 뜨거운 관심이 그것.

지난 1948년 설립 이래 줄곧 롯데그룹을 경영해온 신격호 총괄회장의 ‘황제경영’에 대한 실체가 드러났다. 여기에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롯데 계열사간 지분구조, 그리고 오너가의 친일행적 의혹과 롯데의 일본기업설도 논란을 한껏 달구고 있다.


/사진=머니투데이 홍봉진 기자
/사진=머니투데이 홍봉진 기자

◆복잡한 지배구조… 80개 계열사, 출자고리만 416개
이번 ‘왕자의 반란’ 사태가 야기한 가장 큰 논란은 바로 롯데그룹의 지배구조다. 다른 대기업 집단에 비해 유독 순환출자 구조가 복잡한 롯데는 총수 일가가 극히 적은 지분을 갖고도 한일 계열사 전체를 지배하는 구조를 갖췄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롯데그룹의 80여개 국내 계열사는 총 416개의 순환출자 고리로 연결돼 있다. 지난 2013년말 9만533개에 달하던 것이 지난해 417개로 대폭 줄었지만 올해는 단 1개를 없애는데 그쳤다. 롯데그룹의 순환출자 고리 수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대기업집단) 전체(459개)의 90.6%를 차지할 정도. 재계 1, 2위인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이 각각 10개, 6개인 것에 비해 큰 차이를 보인다.

형제간, 그리고 부자간 경영권 분쟁의 불씨도 순환출자 구조에서 비롯됐다. 그도 그럴 것이 신 총괄회장은 전체 롯데계열사의 0.05%의 지분만 갖고 있고 자녀 등 친인척의 지분을 모두 합쳐도 2.41%에 불과하지만 롯데 전체 계열사를 지배한다. 지난달 27일 그가 일본 롯데홀딩스 본사에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비롯한 6명의 이사를 손가락으로 해임을 지시한, 이른바 ‘손가락 경영’이 가능했던 것도 순환출자를 통한 복잡한 지배구조 장치 때문이다.

결국 신 회장이 형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 아버지 신 총괄회장과의 ‘왕좌’ 뺏기에 나선 것은 복잡하게 얽힌 계열사의 지분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계산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흔들리는 롯데] 족벌경영 폐해…

◆베일 싸인 일본 계열사… '손가락 경영' 지탱


롯데의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한국에 비해 일본쪽 계열사의 지배구조가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는 것. 상장사가 많고 공시의무가 있는 한국 계열사에 비해 일본의 롯데 계열사는 비상장사여서 지배구조를 알기 어렵다.
국내의 경우 80여개가 넘는 롯데그룹 계열사 최상위에는 호텔롯데가 있다. 이 회사는 국내외 롯데 계열사 42곳의 지분을 보유했다. 롯데쇼핑 8.83%를 비롯해 롯데제과 3.21%, 롯데칠성음료 5.92%, 롯데케미칼 12.68%, 롯데물산 31.13%, 롯데건설 43.07%, 롯데상사 34.64%의 지분을 갖고 있다.


이로써 호텔롯데는 한국 롯데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한다. 다만 호텔롯데는 신 총괄회장을 비롯한 총수일가의 지분이 단 1%도 없다. 최상위 계열사를 동일인(재벌 총수)이 지배하는 다른 재벌기업과 구조가 사뭇 다르다.

사실상 호텔롯데를 지배하는 회사는 일본 롯데홀딩스다. 이 회사는 다시 광윤사, 그리고 이 광윤사를 신격호와 동주·동빈 3부자를 비롯한 총수일가가 지배한다. 즉, '광윤사→롯데홀딩스→호텔롯데→한국 롯데 계열사'의 출자고리가 현재 롯데그룹의 지배구조다.

하지만 일본의 광윤사, 롯데홀딩스의 소유구조와 총수 일가의 주주구성 비율 등은 알려진 바가 별로 없다. 여기에 호텔롯데의 주요 주주에 이름을 올려 놓은 소위 L투자회사(L1∼12)의 실체도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이 같은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가 논란이 되자 한국정부는 롯데사태에 적극 개입하고 나섰다. 공정위는 지난달 31일 롯데에 전체 해외계열사의 주주현황과 주식보유현황, 임원현황 등 자료를 이달 20일까지 제출하라고 요청했고 금감원도 롯데에 일본 롯데홀딩스, 일본 L제2투자회사가 최대주주로 있는 계열사에 대표자와 재무 현황 등의 정보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일본서 한국지배… '롯데=일본기업'?

"롯데는 한국기업이에요. 전체 매출의 95%가 한국에서 나옵니다."  아버지 신 총괄회장의 동영상, 녹취파일 공개 등 신 전 부회장의 반격으로 수세에 몰린 신 회장이 지난 3일 뒤늦게 귀국하며 취재진 앞에서 발언한 내용이다.

'왕자의 난'이 벌어지는 사이 롯데그룹을 당황하게 만든 또 하나 논란거리는 '롯데=일본기업'이라는 정체성 문제였다. 앞서 언급했듯 롯데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하는 호텔롯데의 주주 대부분이 일본 롯데홀딩스를 비롯한 일본 기업이라는 점이 이번 논란의 중심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등에 따르면 호텔롯데의 최대주주는 19.07%의 지분을 갖고 있는 일본 롯데홀딩스다. 여기에 롯데홀딩스를 포함해 L투자회사, 광윤사, 패미리 등 일본 회사들이 주식 대부분인 99.28%를 갖고 있다.

일본기업이 100%에 가까운 지분을 소유하다 보니 호텔롯데의 배당금 대부분이 일본으로 넘어간 것에 부정여론이 들끓는다.

실제 호텔롯데의 배당금 현황을 보면 지난해 이 회사는 주당 500원, 총 255억원을 일본주주들에 배당했다. 부산롯데호텔에 대한 배당금은 불과 1억원 안팎이다. 주당 배당금 규모가 점차 늘고 있는 점도 논란거리. 2007년까지 주당 220원씩 배당하던 것이 ▲2008년에는 250원 ▲2009년 300원 ▲2010년 400원 ▲2011년 480원 ▲2012년 500원으로 계속 증가했다. 특히 2009년과 2010년, 2011년에는 순이익이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 호텔롯데는 일본주주들에게 주는 배당금을 오히려 늘렸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9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