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일찍 정해서 계속 하다 보니 어느덧 ‘프로’가 되어 있더라구요.”
‘허니블러드’라는 작품은 10월 현재 카카오페이지 웹툰 전체 1위인 순정만화다. 뱀파이어라는 흔한 판타지 소재에 10대 왕따 문제를 대입시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이 작품을 만든 이나래 작가가 그림에 관심을 가진 것은 초등학교 때부터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동네 만화가에게 ‘펜 잡는 법’부터 배우기 시작, 약 15년이 지난 지금은 꽤 유명한 프로 작가가 되었다. 물론, 어려운 환경도 여러 번 거쳤지만. 그는 학생들에게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부천 그의 작업실에서 ‘밤낮이 바뀌어 힘들다’는 그를 만나 만화가로 사는 삶에 대해 들었다.
처음 만화가로 입문한 것은 언제부터인가요?
어릴 때부터 흑백만화를 그리는 게 꿈이어서, 초등학교 6학년 때 출판사에 한 화(30페이지)에 해당하는 작품을 가져갔어요. 그리고 중3 때부터 처음 일을 시작했어요. 당시 한 페이지 삽화를 그리면 월 10만원 정도를 받았어요. 고등학교에 입학해 삽화나 게임 애니메이션 등의 일을 계속 했는데, 고등학교 때 월 30-40만원의 돈을 벌었고 대학 들어가면서 100만원을 채웠던 것 같아요.
이미 작가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특성화고(한국애니메션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갈 필요가 있었나요?
사실, 대학에 들어갈 생각이 없었고 일본에 가서 만화공부(직업적으로)를 더 하고 싶었어요. 스스로 공부하는 것에 자신 있으면 안 가도 된다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어른들은 이 직업에 대해 불안해하시니까. 그래서 대학 입학은 양보했지만 4년제 대학 진학에 대해선 양보를 못했어요. 학교나 부모님은 4년제 대학을 가기를 원했지만 저는 전문대를 빨리 졸업하고 데뷔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결론적으로 좋은 선택을 한 듯해요. 제가 진학한 청강문화산업대학교는 교수님들이 젊은 편이어서 특히 실무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테크닉적으로 배우기도 했지만, 프로로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많이 배우는 계기가 되었어요. 대학을 가는 것에 대해선, 대학을 가면 장점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케이스가 다른 거니까 필수는 아니고 선택이라 생각해요.
본격적인 작품 활동은 어떻게 시작했나요?
대학에서 프로작가와 대학생들이 함께 만든 책이 있었어요. 미국 출판사에서 우연히 그것을 보고 연락이 왔어요. 소설 원작이 있고 그 글을 각색하고 그림을 입혀서 책을 내자는 것이었죠. 그 연락을 받은 후 바로 연재에 들어갔는데, 그때가 21살이었어요. 그 이후로 지금까지 계속 흑백만화를 그렸어요. 허니블러드는 최근에 만든 작품이구요. 그런데, 미국작품을 연재하며 수익적으로 안정적이긴 했는데, 미국정서에 맞추는 게 정신적으로 지치긴 했어요.
일반인들은 보통 어떤 루트로 웹툰 작가가 될 수 있나요?
일반적으로 각 웹툰플랫폼에서 주최하는 공모전, 또는 아마추어 작가 코너에 연재(무보수)하는 걸 통해서 될 수 있어요. 포트폴리오를 준비해 직접 웹툰플랫폼에 연재 문의를 넣거나 웹툰 에이젼시(매니지먼트)의 도움으로도 데뷔할 수 있는 방법도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 허니블러드는 만화진흥원에서 지원사업을 받아 에이젼시 회사의 연재 제의로 시작했어요. 바로 웹툰 작가로 데뷔한 것이 아니라 요즘 친구들에게는 조금 낯선 출판만화업을 꾸준히 해오면서 쌓인 경력과 포트폴리오로 픽업이 되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문하생을 많이 거치는 것으로 아는데 작가님은 어땠나요?
요즘은 도제식 문화가 사라지는 추세여서 잘 모르겠네요. 저 같은 경우는 문하생 생활을 거치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쯤 동네 만화가 선생님께 펜 잡는 법을 배운 적이 있지만. 제대로 된 문하생 생활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꼭 필수는 아니지만 만화를 연재하기 전 준비 운동을 해본다고 생각하고 한번쯤은 경험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현재 2명의 문하생을 가르치고 있어요.
고등학교 3학년이나 졸업 후에 시작해도 늦지 않을까요?
네! 전혀 늦지 않아요. 물론 요즘 드로잉적으로 실력 좋은 어린 친구들이 많아서 고민이 될 수 있다 생각되는데, 만화는 그림뿐 아니라 스토리나 작가적인 소양도 많이 필요한 직업이거든요. 스토리로 그림에 대한 단점을 채우고, 그 외 자신의 장점을 빨리 찾아내서 개성적인 작가가 될 수 있다면 프로 활동하는 데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생각해요.
일러스트레이터와 만화가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기본적으로 일러스트는 드로잉에 주력을 다한 작업이고, 만화는 스토리가 있는 그림의 나열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거 같아요. 예를 들어 일러스트레이터는 3일 동안 주제가 담긴 한 장의 그림을 완성한다면, 만화는 3일 동안 하나의 이야기를 그림들로 만드는 작업이라고 생각하시면 되요.
만화가는 모두 프리랜서로 일을 하나요?
네, 기본적으로는 모두 프리랜서입니다만 경우에 따라 광고회사, 게임회사, 애니메이션회사에 취직해 직원으로 만화 작업을 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또 개인사업자를 내신 작가님 밑에서 직원으로 한 작품 파트를 분담하여 작업하는 경우도 있지만 흔한 편은 아닙니다. 프리랜서를 하면 무엇보다 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데, 계획적으로 쓰지 않으면 금방 망가지기도 해요.
대중들은 그림과 이야기 중 어느 것에 더 관심을 갖는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이야기에 더 관심을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예쁜 그림체, 탄탄한 드로잉력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에게 오래 남는 작품은 이야기로 사람들의 가슴을 움직인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한국은 만화대여문화가 발달되어서 미국이 ‘소장용’인데 반해 한국은 ‘소비용’의 측면이 있거든요. 미국은 6:4로 그림이, 한국은 그 반대에 가깝죠.
하지만 독자들이 그 이야기에 더 공감할 수 있도록 내가 생각하는 장면을 의도만큼 표현하려면 그림을 통한 연출과 드로잉력도 무시 못 하죠.
생업을 만화가로 한다는 것은 인기작가만 가능한 것 아닌가요?
요즘 만화 시장이 예전보다 많이 커진 상태라 웹툰 연재로 기본적인 생업은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회사로 치면 ‘승진’을 하려면 남들보다 많은 재능과 노력으로 인기작가가 돼야겠지요? 이 부분은 어느 직업이든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쉽게들 ‘만화가’라고 하면 연재만 생각하는데, 사실 프로가 되고 나면 웹툰 연재 말고도 글과 그림 모두 가능한 만화가에게는 다양한 일들이 많이 있어요. 예를 들어서 제품 사용 설명서를 이해하기 쉽게 표현한 만화, 관공서 홍보 만화, 어린이 교육만화, 애니메이션&팬시 캐릭터 디자인, 잡지나 신문에 글과 함께 들어가는 삽화, 영화 스토리보드 등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다양한 일이 가능합니다.
일반인들은 네이버 등 포털에서 웹툰을 많이 대하잖아요. 이 곳에 연재하려면 어떤 과정이 필요한가요?
‘네이버 도전만화’라고 아마추어들이 게시할 수 있는 곳이 있어요. 무보수로 연재를 하다가 포털에서 괜찮다 판단을 하면 픽업을 하죠. 그런데, 픽업되는 것이 쉬운 건 아닙니다. 만화가들이 중간에 그만 두기도 하고.
포털에 올라온 만화가들이 전부 돈을 많이 버는 건 아니죠?
포털도 무료플랫폼이 많기 때문에 빈부격차가 좀 심하긴 해요. 절대적으로 인기도에 따라서 버는 거니까. 인기가 많아도 무료플랫폼에 만화를 올리면 돈을 벌기 힘들고, 인기가 오르거나 완결이 되어 유료플랫폼으로 전환하게 되면 월 2천-3천만원을 벌 수도 있어요. 많게는 월 1억을 버는 작가도 있습니다. 그런데, 유료플랫폼으로 많은 작가들이 전환을 못 하는 이유는 유료 시장이 활성화된 지 3년 남짓이고, 이 플랫폼이 만화시장을 살리려고 생긴 것보다 자신의 회사 웹에 만화를 올리는 정도로 그치는 측면이 많아서죠.
허니블러드 작품의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쉽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게 장점이라 생각해요. 사실 다른 작가님들에 비해서 제가 그림이 아주 뛰어나거나 개성이 있지도, 스토리를 엄청 뛰어나게 잘 쓰는 것도 아닙니다만 제가 독자님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독자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연출 연구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읽기 쉬운 만화를 그릴 줄 안다는 것이 제 장점이고 그래서 독자님들이 제 만화를 사랑해주시는 거라 생각하고 있어요. 왕따 문제가 심각한 문제라 자칫 어둡고 다큐화 될 수 있는 소재인데, 조금 접근하기 쉽게 구성한 것이 크다고 봅니다.
앞으로 어떤 만화를 그리고 싶으신지?
솔직히 소박한 편이에요. 그냥 재밌는 만화를 그리고 싶어요. 그리고 외국 독자들도 제 작품을 통해 간접적으로 한국의 문화를 배우고, 호기심을 가질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습니다. 그렇다고 외국인 눈에 맞춰 기획하는 작품이 아니라 한국인들에게도 사랑받고, 외국 사람들에게도 재미와 흥미를 줄 수 있는 작품을 그리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