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시일반'(十匙一飯). 열 사람이 자신의 밥에서 한 숟가락씩만 덜어내 모으면 또 다른 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밥 한그릇이 된다는 얘기다. 한국에서 40년 넘게 사는 동안은 이 말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얼마나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 1년간 뉴욕 특파원으로 지내면서 십시일반의 위대함을 체감할 수 있었다. 미국에는 일상생활은 물론 정치까지도 십시일반 문화가 깊이 뿌리내려 있다.
◆ 대선판도 바꾼 소액 정치후원금
지난 1일(현지시간) 끝난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도 다르지 않다. 미국 대선 판도를 좌우하는 아이오와 코커스 결과도 여기에서 갈렸다.
이번 코커스에서 가장 주목받은 이는 민주당 버니 샌더스 후보다. ‘돌풍’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선전이었다. 후보 등록 당시 지지율은 5%에 불과했지만 40%대의 지지를 받던 힐러리 클린턴 후보와 대등한 성적표를 내놨다. 비록 클린턴 후보가 1위를 차지했지만 득표율 차이는 불과 0.2%포인트에 불과했다.
샌더스 돌풍을 더욱 두드러지게 하는 것은 정치후원금이다. 지난 1월 말까지 공식 집계된 샌더스의 정치후원금은 7억5100만달러다. 힐러리 후보가 모은 16억3500만달러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평가는 달라진다.
샌더스 후보의 지원금은 온라인 기부자들을 통해 모은 것이 전부다. 전통적으로 거액 후원금을 내놓는 월가나 기업에게서 받은 후원금은 제로에 가깝다. 샌더스 후보 측은 77만명의 후원자들로부터 평균 27달러를 받았다고 밝혔다. 지난해 2분기 1900만달러를 시작으로 3분기 2600만달러, 4분기 3300만달러에 이어 1월에만 2000만달러를 모금했다는 설명이다. 선거 캠프에서 밝힌 내용이어서 공식 집계된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지난해 4분기의 경우 클린턴 후보의 모금액(3700만달러)에 불과 400만달러 모자랐다. 클린턴 후보 측이 1월 모금액을 발표하지 않은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후원금이 역전된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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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니 샌더스 후보. /사진=버니 샌더스 후보 홈페이지 캡처 |
◆ '큰일' 해내는 '작은 힘'
지난 1월 말 미 동부지역을 강타했던 폭설 때도 십시일반의 힘은 빛을 발했다. 24시간 동안 이어진 폭설이 끝나자마자 이 지역 주민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자신의 집 앞에 쌓인 눈을 치우기 시작했다.
1m 가까이 쌓인 눈 때문에 차도와 인도가 구분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눈 치우는 기계가 있는 집 앞은 다소 빨리 인도가 모습을 드러냈고 눈삽에 의존하는 집은 다소 오랜 시간이 걸렸다. 기계로 이웃집 앞까지 치워주는 모습도 적지 않았다. 3시간 정도 지나자 큰 길에서부터 800미터 정도 이어지는 동네에는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이 만들어졌다.
일부에서는 이를 ‘소송의 힘’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눈을 치우지 않았다가 누군가 미끄러져 부상이라도 입게 되면 바로 소송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처음에는 이런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졌지만 지금은 다르게 느껴진다. 당연히 치워야 할 눈을 치우지 않아 사고가 났다면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미국 사회의 상식에 가깝다. 소송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눈을 치우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이들에게 소송을 통해 책임을 묻는다는 분석이 더 정확해 보인다.
◆ 한명의 100달러보다 100명의 1달러
지난 연말의 경험도 신선하게 다가왔다. 스타벅스는 물론 대부분 상점에는 기프트카드를 사려는 이들로 북적였다. 처음에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키프트카드로 대신하는 것으로 오해했다. 실제로 가까운 이들에게 기프트카드를 주기도 했다.
물론 진짜 용도는 따로 있었다. 연말을 맞아 자신의 집에 우편물을 배달해주는 집배원과 쓰레기를 수거해 가는 환경미화원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용도였다. 금액은 주로 10~20달러 수준으로 큰 부담이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정확히 집배원 1명이 몇 집에 우편물을 배달하는지, 환경미화원 1명이 담당하는 구역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추운 겨울 살림살이에 보탬이 될 정도는 돼 보인다.
작은 것들이 모여 큰 힘을 발휘하는 사례를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만 해도 그렇다. 기념일이 다가오면 학교 자체에서 기부금 마련 행사를 개최한다. 여름이면 레몬에이드를 만들어 1잔에 1달러씩 판매하는가 하면 쿠키나 아이스크림을 파는 식이다.
처음 1잔에 1달러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10잔 정도는 사야 되는 것은 아닌지, 얼마나 사야 되는 것이지 몰라 적지 않게 당황했다. 기부라고 하면 뭔가 크고 거창한 것이란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어서다.
각 교실에 마련된 학급 문고도 비슷한 방식으로 매년 책이 늘어난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읽으면 좋은 책 리스트를 가정으로 보내주고 학교를 통해 구매할 수 있도록 한다. 대신 출판사는 구매 수량에 따라 학급 문고에 책을 기증하는 방식이다.
학교에서 만난 다른 한국 학부모도 처음에는 비슷한 고민을 했다고 한다. 책을 구매하는 수량에 따라 학급 문고가 늘어난다는 얘기에 도대체 몇권을 사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는 것. 분명 담임선생님이 취합할 테니 성의 표시는 해야겠고 그렇다고 아이들이 영어로 된 책을 제대로 읽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많이 구매하기도 망설여진 탓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미국 학부모들은 1권이나 2권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주문한다. 수량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것 자체에 더 큰 의미를 두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들이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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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선을 한국으로 돌려보자. 한국에서라면 과연 1만원으로 부끄럼 없이 감사의 뜻을 전할 수 있었을까. 100만원을 기부하는 1명을 찾기보다는 1만원을 기부하는 100명을 모으는 것이 더 빠른 길이다. 미국에서 기부가 생활에 뿌리내릴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2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