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머니투데이DB
/사진=머니투데이DB
1조3000억원에 달하는 현대중공업 대규모 유상증자 결정에 투심이 돌아서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이 자금조달 최후 카드였던 현대오일뱅크 기업공개(IPO)까지 꺼내들었지만 시장의 충격은 가시지 않는다. 오히려 울고 싶은 조선업계에 부실을 한 번에 털어내는 빅배스(Big Bath) 논란까지 증폭돼 뺨 때리는 격이 됐다.
삼성중공업에 이어 최근 현대중공업마저 유상증자를 발표하면서 지난 2015년의 악몽이 재현될 조짐이다. 3년 전 시작된 대우조선해양 빅배스 논란이 조선업과 주식시장을 뒤흔든다.  

◆'유증+적자' 커밍아웃에 돌아선 투심

유증에 돌아선 현대중공업 투심… 내년엔 반등할까

현대중공업그룹은 지난달 26일 오후 이사회를 통해 1조2875억원의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유상증자로 조달한 자금 중 8690억원은 그룹 내 조선3사(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삼호중공업) 순차입금 해소를 위해 사용하고 나머지 4185억원은 R&D 등을 통한 사업경쟁력 강화에 투입한다는 게 현대중공업의 계획이다.
그룹의 지주사인 현재로보틱스가 현대중공업 유상증자에 참여하고 내년에 현대오일뱅크 IPO에서 나온 현금으로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 지주사 체제를 완성한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현대중공업그룹 발표 직후 다음날 장이 열리자 주가는 줄줄이 미끄러졌다. 당일 현대중공업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28.75% 하락한 9만6900원까지 떨어졌다. 현대중공업과 함께 4분기 적자 전망을 밝힌 현대미포조선 주가도 -16.18% 급락했다. 아울러 삼성중공업(-2.23%)과 대우조선해양(-6.33%)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증권가에선 혹평이 쏟아졌다. 유상증자 규모가 과도한데다 빅배스를 통해 부실을 털어내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증폭됐다.

애널리스트들은 줄줄이 현대중공업 목표주가를 내렸다. 한국투자증권은 현대중공업 목표주가를 22만원에서 16만원으로, 삼성증권은 18만1000원에서 14만4000원으로, 유진투자증권은 20만원에서 16만원으로, 이베스트투자증권은 22만원에서 17만원으로 각각 하향 조정했다.


이경자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삼성중공업이 최근 1조5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진행하겠다고 발표한 데 이어 현대중공업까지 유상증자를 진행하기로 결정하면서 당분간 조선업종 주식을 향한 투자심리 침체는 지속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영수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3분기 말 기준 현대중공업의 별도 순차입금은 1조3000억원"이라며 "계열사 토지와 해외 생산 법인 매각대금이 7600억원 수준이란 점을 감안하면 증자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규모는 과도하다"고 꼬집었다.

최광식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도 "삼성중공업처럼 유상증자해 쌓인 손실을 한꺼번에 털어내려는 빅배스 가능성을 충분히 의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빅배스는 부실자산을 한 회계연도에 모두 반영해 위험요인을 일시에 제거하는 회계처리를 말한다. 2015년 대우조선해양이 수조원의 적자를 빅배스로 처리해 논란이 됐던 게 대표적 사례다.

이 같은 지적에 현대중공업 측은 콘퍼런스콜을 통해 "리스크에 따른 유상증자는 아니고 향후 수주경쟁력 확보를 위한 순차입금을 최소화하려는 취지"라며 "2018년 발주물량이 올해에 비해 40% 이상 증가할 수 있다는 전망을 고려하면 선가 인상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된다"고 해명했다.

◆올해엔 투자자 돌아올까… 반등 조짐


다만 현대중공업그룹 지주회사인 현대로보틱스의 자회사 현대오일뱅크 상장으로 대규모 자금이 유입되면 그룹의 재무구조가 개선되고 지배구조 개편도 마무리된다는 점이 길게 봤을 때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존재한다.

중장기적으로 재무건전성이 강화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돼 지난해 주식 거래 마지막일에는 현대중공업, 현대로보틱스 등 현대중공업그룹 주가가 반등세를 보였다. 당일 현대중공업 주가는 전일보다 3.72%(3600원) 오른 10만500원, 현대로보틱스 주가는 5.69%(2만500원) 오른 38만1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경자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현대중공업의 유상증자 이유가 명쾌하게 납득이 되지는 않지만 규모가 현대중공업 시가총액의 17%로 과중하지 않다는 점, 자금 확충 이유가 유동성 경색보다는 시황 회복을 누리기 위한 재무구조 개선이라는 점을 고려해볼 만하다"고 진단했다.

양지환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현대중공업그룹의 현대오일뱅크 IPO 계획에 주목했다. 양 애널리스트는 "그룹 지주사 현대로보틱스는 현대오일뱅크 지분 91.13%(장부가 기준 2조9547억원)을 보유하고 있다"면서 "현대오일뱅크의 상장을 통해 보유지분가치에 대한 시가평가가 가능하고 이를 통한 현대로보틱스 가치 재평가가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단기적으론 현대로보틱스의 주가도 조정이 예상되나 중장기적 관점에선 매수 기회라 판단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