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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균 프라이머 대표. /사진제공=프라이머 |
‘정부 규제 때문에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초기 스타트업 투자사 프라이머 권도균 대표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는 ‘규제’라는 표현보다는 ‘신산업’이라는 용어를 쓰자고 제안했다. 스타트업 관련 규제를 풀어달라는 말이 대기업과 관련된 규제를 풀어달라는 의미로 잘못 비춰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서울 강남구에 있는 개인 사무실에서 만난 권 대표는 냉철한 투자자 느낌보다는 친근한 이미지가 더 강했다. 1997년 보안솔루션회사 이니텍과 전자결제업체 이니시스를 설립한 벤처 1세대로 창업 5년 만에 두 기업을 코스닥에 상장시킨 인물이다. 그는 이후 이니텍과 이니시스를 매각한 자금으로 2010년 1월 프라이머를 세웠다.
스타트업에 관심이 없는 이들에게는 다소 낯선 기업이지만 업계에서는 ‘프라이머와 권도균 대표를 모르면 간첩’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최근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변혁기에 접어들면서 너도나도 창업에 뛰어들지만 얼마 못가 헤매는 창업가들이 부지기수다. 스타트업계 ‘대선배’로 불리는 권도균 대표를 만나 창업 생태계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역주행하는 ‘대한민국 신산업’ 0점”
그는 대한민국의 벤처 육성 현황을 어떻게 보느냐는 물음에 글로벌 콘텐츠 플랫폼인 ‘유튜브’를 거론하며 낙제점이라고 일갈했다. 현시점에서 신사업을 육성해야 앞으로 50년의 먹거리가 생기는 우리나라의 신산업 육성을 보면 답답한 마음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더 나아가 국내 신산업과 관련된 시장이 자체적인 육성이 아닌 글로벌 흐름에 맞춰 개방될 경우 더 커다란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설명한다. 해외기업들이 쏟아져 들어와 국내 신산업 육성이 사실상 힘들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권 대표는 “100년 대계라는 목표의식이 없는 정부와 정치권을 보면 안타까운 상황”이라며 “지금 신산업 흐름을 못 쫓아가면 30년 뒤에는 한국이 베트남·인도네시아보다 못사는 나라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그는 “유튜브가 국내 시장에 들어오면서 동영상 플랫폼이라는 산업이 뜨고 있는데 문제는 유튜브가 현재 국내 시장을 100% 독점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왔다는 점”이라며 “한국인이 만들고 시청하고 국내기업들이 광고를 하지만 한국 정부는 세금을 한푼도 거둬들이지 못하고 있다”며 씁쓸해 했다.
그는 정부가 지금처럼 국내 신산업 육성에 관심을 두지 않을 경우 미래의 산업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무분별한 투자금 지원 정책만으로는 우리가 직면한 위험을 적절히 처리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권 대표는 “스타트업이 펀딩에만 의존할 수 있게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좀비기업을 유도해 시장에 악영향을 주는 형태 중 하나다. 정부 입장에서 돈으로 지원하는 것은 가장 쉬운 방법이겠지만 결과적인 측면에서는 얻을 게 없다”며 “반대로 좀비기업들이 많이 생겨나면서 산업 생태계를 흙탕물로 만들 가능성이 있다. 돈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는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권 대표는 정부가 지양해야하는 것 중 하나로 ‘구산업의 대변인’ 역할을 꼽았다. 이는 신산업에서 스타트업에게 가점을 달라는 의미가 아니다. 스타트업이 구산업이나 대기업과 경쟁할 때 공정하게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제대로 된 심판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정부의 자금만으로 성장한 스타트업은 허울만 좋은 빈껍데기 회사지만 공정한 경쟁으로 만들어진 스타트업은 글로벌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면서 “정부는 시장에서 누구나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심판 역할에 충실하길 바란다. 이는 돈을 뿌리는 효과보다 육성 방면에서 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상식적인 것도 잘 응용하면 ‘대박’
권 대표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 상식적인 아이템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흔히 창업 아이템은 참신하고 독특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는 이 같은 고정관념을 깨야한다고 주장한다. 상식선에서 벗어난 창의성은 ‘사업을 망치는 방해꾼’이라는 견해도 덧붙였다.
권 대표는 지나친 창의성은 창업가를 엉뚱한 길로 이끌기 때문에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정상적인 사고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창업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이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상식적으로 쓸 수 있는 아이템만 잘 응용해도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의미다.
권도균 대표는 “처음 프라이머를 차린 이유는 사소한 것을 몰라 헤매는 후배 창업가를 돕기 위해서였다”며 “본업으로 이걸(액셀러레이터) 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하다 보니 발이 깊이 빨려 들어가면서 과거 이니텍·이니시스 경영보다 더 열심히 하고 있다”고 웃으며 말한다.
프라이머는 현재까지 총 180여개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패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스타일쉐어, 자유여행 플랫폼 마이리얼트립, 부동산 중개업체 호갱노노, 친환경 생리대를 제조하는 라엘 등이 프라이머가 투자한 대표적인 스타트업이다.
권도균 대표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자신을 일상생활 투자 전문가라고 설명한다. 그는 사업은 고객과 시장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상식선에 맞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일상생활에서의 평범한 아이템들이 창업가의 깊은 품성을 만날 때 더 좋은 비즈니스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보통 투자를 결정하기 앞서 창업가의 품성과 비즈니스 모델을 살핀다. 창업가의 품성을 볼 때는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는 편”이라며 “창업가의 목소리, 표정, 얼굴 등을 보면서 품성을 알아보려고 노력한다. 아무리 좋은 사업계획서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품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13호(2019년 10월8~14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