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명동 거리에 K뷰티 로드숍이 즐비한 모습. /사진=뉴스1 DB
서울 중구 명동 거리에 K뷰티 로드숍이 즐비한 모습. /사진=뉴스1 DB

[주말리뷰] 2010년 초반 한류 붐을 타고 K뷰티가 중국시장에서 맹위를 떨쳤다. 천송이(전지현) 립스틱, 송혜교 비비크림 등 한류 스타가 사용한 제품들은 완판행진을 기록했다. 중국인 관광객이 붐비는 명동 일대에서는 재고를 구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대중 수출도 늘면서 2016년 중국 수입 화장품시장에서 한국은 프랑스를 제치고 1위로 뛰어올랐다. 

하지만 최근 중국 내 K뷰티의 위상이 이전만 못하다. 2017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로 한한령(한류제한령)이 시행되면서 K뷰티의 성장세가 정체됐다. 그 사이 일본 화장품 ‘J뷰티’가 빈틈을 파고들었고 중국 화장품 ‘C뷰티’도 자체 브랜드파워를 키웠다. 중국에서 K뷰티가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K뷰티 왕좌 넘보는 J뷰티

중국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화장품시장이다. 2018년 기준 중국 화장품시장 규모는 588억달러(약 70조14억원). 중국의 소득수준이 향상되고 뷰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시장 성장이 예상된다.

이런 대규모 시장에서 K뷰티는 입지를 잃어가고 있다. 한한령의 여파로 K뷰티가 주춤한 사이 J뷰티가 무섭게 치고 올라온 영향이 크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중국 수입 화장품시장 1위를 지키던 한국은 결국 지난해 일본에게 자리를 내줬다.


무역통계업체인 글로벌 트레이드 아틀라스(GTA)에 따르면 일본산 화장품의 대중 수출액은 지난해 1~10월 24억6881만달러(약 2조9300억원)를 기록하며 1위를 차지했다. 한국산 화장품 수출액은 24억3369만달러(약 2조8900억원)로 2위로 떨어졌다.

물론 시장점유율은 아직까지 유사한 수준이다. 하지만 J뷰티가 고속 성장세를 보이고 있어 격차는 급격히 벌어질 거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같은 기간 중국의 J뷰티 제품 수입증가율은 34.8%를 기록한 반면 K뷰티 제품 수입증가율은 14%에 그쳤다.

중국시장에서 J뷰티가 K뷰티를 앞지른 건 프리미엄 제품에 대한 수요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글로벌시장에서 K뷰티는 중저가의 트렌디한 제품, J뷰티는 고가의 고급스러운 제품으로 통한다. 하지만 최근 중국이 중저가 제품을 자체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면서 K뷰티의 인기가 꺾였고 오히려 프리미엄 제품 위주의 J뷰티가 차별성을 갖게 됐다.


특히 중국인들은 장인정신으로 무장한 J뷰티의 기술력을 높게 산다. J뷰티기업 코세의 경우 코세(74년)·알비온(64년)·코스메 데코르테(50년) 등 장수 브랜드를 다수 보유하고 있으며 고기능성 상품으로 라인업이 구성돼 있다. 이는 BB크림, CC크림, 달팽이크림 등 트렌드만을 좇아 유사한 상품을 쏟아내는 K뷰티와 대조적이다.

나아가 J뷰티는 중저가시장으로도 외연을 확장했다. J뷰티 대표기업인 시세이도는 중국시장에서 K뷰티가 주춤한 사이 제품 가격을 20% 낮춰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섰다. 그 결과 2017년과 2018년 연매출이 1조엔을 돌파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 중 중국 비중은 약 20%에 달한다.

안지영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K뷰티가 J뷰티보다 수입액 증가율이 둔화된 가장 큰 이유는 중국시장에서 한국산 브랜드파워 자체가 약화됐기 때문”이라며 “글로벌 브랜드 중심으로 J뷰티의 공격적인 마케팅이 진행되고 있고 중국 로컬 브랜드들의 성장세도 두드러지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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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치 커진 C뷰티, K뷰티 대체할까

C뷰티의 약진도 K뷰티에 위기다. 텐센트가 지난해 5월 발표한 ‘2019 C뷰티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화장품시장에서 C뷰티 시장점유율이 56%로 절반을 넘어섰다. 중국 화장품시장은 그동안 수입에 주력했으나 최근 현지 브랜드들이 경쟁력을 키운 결과다.

C뷰티기업은 K뷰티를 모방하거나 코스맥스, 한국콜마 등 국내 제조자개발생산(ODM) 업체와 협업하는 방식을 통해 K뷰티를 위협하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예컨대 C뷰티기업 상하이샹메이의 자연주의 화장품 브랜드 원리프는 유사한 콘셉트의 K뷰티 브랜드인 이니스프리의 중국 매출을 넘어섰다.

C뷰티는 중국 전통 중의학을 활용한 제품과 자연 친화적인 이미지, 외국산 대비 합리적인 가격을 내세워 중저가 중심의 대중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그 결과 글로벌 뷰티브랜드 중심이던 중국 화장품시장 매출 상위 목록에도 C뷰티가 이름을 올렸다. 상하리바이췌링의 대표 브랜드 바이췌링은 티몰에서 화장품 매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유통채널의 변화도 주효했다. 업계에 따르면 중국 화장품시장에서 온라인채널 매출 비중은 지난해 기준 65%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화장품 소비의 주 연령층이 온라인과 모바일에 익숙한 주우허우(1995년 이후 출생)와 링링허우(2000년대 이후 출생)으로 변화하면서다. 실제로 약 2억5000만명에 달하는 주우허우는 90% 이상이 인터넷을 통해 화장품을 구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맞춰 현지 기업들은 왕홍(중국 인플루언서)과 협업을 통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이와 달리 국내 기업들은 중국 도매상이나 보따리상(따이궁)에 물건을 공급하는 방식을 고수하면서 소비채널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했다.

이민정 대한화장품산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과거 C뷰티는 K뷰티를 모방하는 수준이었으나 최근에는 자체 개발력과 제품 수준이 높아졌다”며 “과거 국내 OEM, ODM업체들이 중국에 진출해 화장품사업을 했으나 최근에는 중국 현지기업이 자체생산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K뷰티가 위상을 되찾기 위해서는 프리미엄 제품 개발과 유통창구 확대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연구원은 “J뷰티처럼 장인정신이 담긴 프리미엄 제품에 대한 연구개발은 물론 시장개척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중국 2~3선 도시뿐 아니라 대만, 홍콩 등 범중화권 국가, 나아가 북미 등으로 시장을 확대해 리스크를 분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33호(2020년 2월25일~3월2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