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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장지훈 기자 = "All(전부)부터 None(0명)까지 사람 숫자를 표현하는 단어들을 익혔으니까 온라인 수업방 설문조사로 배운 걸 활용해 볼까?"
서울 중구 창덕여중 3학년1반 영어수업 시간. 선생님의 말에 학생들은 교과서가 아닌, 태블릿PC '서피스 프로'를 능숙하게 펼쳐 에듀테크 플랫폼 'MS팀즈'에 접속했다.
온라인 수업방에는 '우리반 학생들의 취향'을 알아보는 설문조사가 개설돼 있었다. 학생들에게 요리·숙제·K팝 등 주제를 주고 좋아하는 것을 고르게 했다.
"숙제를 좋아하는 사람이 2명이나 있는데? None이 아니라 Some(약간)이었어", "Some of us are into homework(우리 중 일부는 숙제를 좋아한다)라니, 이건 아니지!"
김준구 교사와 아일랜드 출신의 미셸 헤네시 교사가 '2인 1조'로 진행한 이날 수업은 디지털 기술로 흥미를 더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자 교실은 웃음바다가 됐다.
서울 중구의 창덕여중은 2015년 '서울 1호 미래학교'로 선정된 대한민국 스마트교육의 전초 기지다.
지난해 8월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방문해 시험수업에 참여하면서 정부가 한국판 뉴딜의 10대 대표 과제 가운데 하나로 추진하는 '그린스마트미래학교'의 모범으로 꼽아 화제가 됐다.
1945년 개교해 8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지만 2016년 리모델링 이후 학교 어디서든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융복합 교육이 이뤄지는 혁신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미래학교의 속살을 들여다보기 위해 매년 이곳을 찾는 교육계 관계자만 1000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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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학교가 친환경학교로…'테크센터'와 '온돌방' 공존하는 '맞춤형 공간'
창덕여중의 수업은 최윤우 테크매니저가 말끔하게 정비를 완료한 스마트기기를 교실에 '배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테크매니저는 '학교의 심장'으로 불리는 '테크센터'에 상주하면서 서피스 프로 200대, 아이패드 프로 70대, 노트북 20대 등 290여대의 스마트기기의 유지·보수를 담당한다. 또한 각 수업에 맞는 최적의 스마트기기와 프로그램 등을 결정하는 역할도 한다.
최 테크매니저는 "스마트기기를 지급만 하고 관리해 주지 않으면 머지않아 사용할 수 없게 되는 일이 다반사"라며 "최적의 상태로 수업에 쓰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국판뉴딜 10대 과제 중 하나인 '그린스마트 미래학교'는 학교의 낡은 공간을 친환경 그린 공간으로 재탄생시키고, 교육환경을 디지털로 전환해 수업방식을 바꾸고 나아가 학교를 지역공동체의 거점으로 전환시키는 복합적 교육혁신 프로젝트다.
지난달 3일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종합추진계획 발표을 발표하며 정부가 추진하는 미래교육은 "학생 모두에게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며 학교에서 행복하게 성장하길 바라는 대한민국의 꿈을 향해 나가는 원대한 사업"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정부는 낡고 불편한 학교 공간을 안전하고 쾌적한 '친환경 그린학교'로 탈바꿈하기 위해 총사업비 18조5000억원을 투입해 40년 이상 오래된 1400여개 학교를 2025년까지 개축하거나 리모델링할 계획이다.
학교정비에는 친환경 고효율 자재를 활용하고, 지열·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해 '제로에너지'를 실천하며 이를 환경교육 교재로 활용한다. 교내텃밭이나 실내 정원, 연못 등은 생태교육 현장이 된다.
기존의 '교실' 개념도 획기적으로 바뀐다. 수강 인원, 수업 상황에 따라 교실은 합쳐지거나 나뉘며 유연하게 변신하고, 휴식·소통 공간을 마련해 인성과 정서발달 기회도 제공한다.
일례로 창덕여중은 최첨단 장비로 중무장하는 데 치우치지 않고 아날로그적인 교육 공간을 곳곳에 배치했다. 층별로 널찍한 '마루'를 만들어 신발을 벗고 올라가 휴식을 취하거나 독서할 수 있는 '사랑방'을 만들었다.
4층에는 바닥에 열선이 깔린 '온돌방'이 있어 삼삼오오 둘러앉은 채로 수업이 진행되기도 하고 체육수업이나 동아리 활동이 이뤄지기도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1박2일 캠핑 장소로도 사랑받았다.
김영화 창덕여중 교장은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조화를 이룬 '디지로그' 공간 덕분에 편안하면서도 효율적인 교육 활동이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며 "아이들이 서로 몸을 부대끼며 소통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학교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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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입식 교육' 대신 '탐구·토론 교육'으로…"과학자 꿈 찾았어요"
창덕여중 학생들은 학교의 장점으로 '체험·토론 위주 수업'과 '과정 중심 평가'를 꼽는다. 평가도 '순간의 선택'이 '결과를 좌우'하는 지필고사는 지양하고, 국어·수학·영어 등 주요과목도 수행평가로 과정을 평가한다. 수업에는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매 순간 학습의 의미를 발견하라는 취지다.
이러한 방식은 학교 전체 공간에 무선 인터넷 설치와 디지털 기기가 지원되는 '스마트스쿨' 및 '디지털 학교'라는 배경이 있었기에 가능해졌다. 교과서 중심의 '주입식 교육'이 아닌,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탐구와 토론 교육'이 환경이 마련된 것이다.
각종 실험을 직접 설계하는 수업을 받으며 과학자의 꿈을 갖게 된 3학년 송서영 양은 "우리 학교는 교과서만 읽고 끝이 나는 수업이 없다"며 "기술 과목을 예로 들면 각자 '오픈 포트폴리오'를 작성한 다음 한 학기 동안 저마다의 방식으로 수업을 확장해 나가기 때문에 수업의 주인공이 된 느낌"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내년까지 전국 모든 초·중·고 교실에 무선 인터넷을 구축할 예정이다. 노후한 PC와 노트북 20만대를 교체하고 1200개 학교에 교육용 태블릿 PC 24만대를 지원한다. 이를 통해 학교 내 모든 공간 및 집에서도 온라인 원격수업이 가능해진다.
공간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뿐 아니라 수업방식도 바뀐다. 가상현실(VR)·혼합현실(MR) 기기 등 첨단 학습 기자재를 활용해 학습자원이 확대되는 것은 물론, 다양한 교육 콘텐츠와 빅데이터를 활용한 맞춤형 학습이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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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학교는 '한국판뉴딜' 인재 양성의 산실…기술과 공동체 가치 함께 구현”
학교 교육은 교실을 넘어 사회에서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는 발걸음이다. 그린스마트 미래학교의 목표 중 하나는 '학교의 지역사회 거점역할 강화'다.
스마트교실 구축은 그린스마트미래학교의 핵심축을 담당하지만, 디지털 기술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민주시민으로서의 인성교육을 자칫하면 놓칠 수 있어 기술과 인성교육의 조화는 정부와 교육계에 남겨진 과제다.
윤수란 창덕여중 미래연구부장은 "최첨단 테크놀러지가 구현된다고 저절로 교육이 혁신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디지털 기술은 효과적인 교육을 위한 수단일 뿐 기술을 활용해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창덕여중 교사들은 매년 'ART 프로젝트' 보고서를 펴낸다. ART는 행동하고(Action) 연구하는(Research) 교사들(Teacher)을 의미한다. 효과적인 교수·학습법, 지역사회와 학교를 연계한 교육법 등 다양한 주제를 두고 매년 심층적인 연구 결과를 내놓는다. 공부하지 않는 교사는 좋은 교육을 제공할 수 없다는 공감대에서 시작된 일이다.
윤 교사는 "그린스마트미래학교를 만드는 사업도 교육의 본질을 밑바탕에 두고 기술을 어떻게 입힐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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