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섬유 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국내 강소 기업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그래픽=김은옥 기자
탄소섬유 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국내 강소 기업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그래픽=김은옥 기자

▶기사 게재 순서
①철보다 가볍고 튼튼… 성장판 열리는 '꿈의 신소재' 탄소섬유
②日 장악 시장에 태극기… 효성첨단소재 탄소섬유 뚝심
③차량경량화 열쇠는 탄소섬유… 미래 개척하는 기업들


#. 지난 1월2일 도쿄 하네공항에서 JAL 항공기가 착륙 도중 해상보안청 소속 항공기와 충돌해 전소됐다. 당시 비행기 안에는 승객·승무원 등 총 379명이 탑승해 있었는데 90초 만에 전원 탈출에 성공했다. 위기 상황에서 침착하게 매뉴얼대로 움직인 승무원들과 이를 따른 승객들이 만든 기적이지만 '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탄소섬유로 만들어진 기체가 화재 진행 속도를 늦춰 대피 시간을 벌어줬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올해 초 일본에서 발생한 항공기 사고를 계기로 탄소섬유가 주목받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이번 사고가 발생한 JAL 여객기 기종은 '에어버스 A350-900'으로 날개를 포함한 기체 53%가 탄소섬유 복합재로 이뤄져 있다. 철보다 튼튼하고 내열성·내화학성 등의 성능이 뛰어난 탄소섬유 소재를 기체에 적용한 덕분에 대형 참사를 막는 데 도움이 됐다는 분석이다.

탄소섬유, '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이유

국제표준화기구(ISO)에 따르면 탄소섬유는 유기물의 열분해로 제조된 탄소 원소의 질량 함유율이 90% 이상인 섬유를 말한다. 탄소섬유를 구성하는 탄소원자들이 육각 고리결정의 형태로 구성돼 있어 강도가 높고 튼튼하다. 고온의 가열과정에서 산소·수소·질소 등의 분자가 빠져나가기 때문에 산업 현장에서 주재료로 활용되는 강철에 비해 무게는 4분의 1에 불과하면서도 10배의 강도와 7배의 탄성을 갖고 있다.

내열성, 열전도성, 내약품성, 전기전도성도 우수하며 부식 우려도 없다. 건축·토목과 전자·기계, 스포츠·레저 산업은 물론 자동차, 군수, 의학·의료기기, 항공·우주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 가능하기에 '미래 산업의 쌀'이자 '꿈의 신소재'로도 불린다.

탄소섬유는 1960년대 미국에서 최초 개발됐지만 상업생산은 1970년대 일본에서 처음 이뤄졌다. 1980년대까지는 주로 낚시대 등 범용제품에 적용되다가 이후 항공우주 2차 소재 등에 사용됐다. 1990년 중반에는 항공기 1차 소재로 용도가 확대됐고 2000년대 들어서는 정보통신(IT)·전자·조선·건설 등 산업 전반에 걸쳐 탄소섬유가 적용되고 있다.


전 세계적인 환경규제 강화 움직임에 따라 연비향상을 위해 미래 모빌리티, 우주항공은 물론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 분야로도 활용범위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마켓츠앤마켓츠에 따르면 전 세계 탄소섬유 시장 규모는 2022년 약 8조4000억원에서 2032년 약 28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성장성이 담보된 블루오션이지만 현재 전 세계 탄소섬유 시장은 일본·미국·유럽이 우수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소재 및 융복합 산업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다. 특히 일본의 강세가 두드러진다. 탄소섬유는 원재료에 따라 PAN계와 피치계 등으로 나뉘는데 시장의 90%를 차지한 PAN계 탄소섬유 시장의 50% 이상을 일본 도레이, 토호 테낙스, 미쓰비시 케미컬 등 3사가 차지하고 있다. 이어 독일의 SGL그룹과 타이완 포모사, 미국 헥셀 등이 5~10%대의 점유율로 일본을 추격하고 있다.

/그래픽=김은옥 기자
/그래픽=김은옥 기자

후발주자 한국… 대대적인 지원 필요

한국은 선진국에 비해 크게 뒤처져 있다. 탄소섬유 시장은 원료·소재 - 직물·프리프레그 등 중간재 - 복합재 및 응용제품 등으로 이어진다. 국내 원료·소재 시장에는 도레이첨단소재, 효성첨단소재, 태광산업이 진입해 있지만 도레이첨단소재는 일본 도레이의 100% 자회사고 태광산업은 생산시설을 유지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탄소섬유 소재를 생산하는 국내 업체는 사실상 효성첨단소재가 유일하다. 효성의 글로벌 점유율은 2018년 기준 1.6% 수준이었고 현재 공격적인 증설을 통해 생산능력을 확충하고 있지만 아직 한자릿수에 머물고 있다. 중간재 분야에서는 한국카본 등이 활약하고 있지만 레저·생활용품 등 범용섬유 외에 항공·우주 등 고부가가치 제품 시장에서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은 탄소섬유를 우주항공 분야에 적용할 정도로 기술력이 앞서있지만 한국은 아직까지 우산이나 레저용품 등 범용섬유를 생산·적용하는 수준에 그친다"며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일본과의 기술 격차가 벌어져 있기 때문에 이를 좁히는 것이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선두기업을 따라잡으려면 적극적이고 과감한 투자가 필요한데 그나마 총수가 있는 일부 기업이 고군분투하는 게 현실"이라며 "글로벌 탄소섬유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박훈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스포츠·레저용 탄소섬유는 타이완의 높은 경쟁력, 중국의 생산능력 확대로 글로벌 경쟁 심화 및 공급과잉 우려가 높다"며 "항공·우주·국방용 등에 사용되는 초고강도·고탄성 탄소섬유 원천기술 확보를 통해 경쟁국과의 경쟁우위를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2025년까지 총 1850억원을 투자해 고성능 탄소복합재 양산체제를 완성하고 철의 15배 강도를 지닌 초고강도, 13배 강성을 가진 초고탄성 탄소섬유 원천기술을 국내 우주발사체·도심항공모빌리티(UAM) 사업일정에 맞춰 2028년까지 확보하기로 했다. 탄소복합재 및 우주항공·방산 업계로 구성된 협의체도 지난해 출범, 탄소섬유 기술로드맵 이행을 점검하고 규제제도 개선, 기업 투자 인센티브 관련 애로사항을 체계적으로 발굴·관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