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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루엠이 경영 투명성과 인사 공정성 논란에 휩싸였다. 전성호 대표의 차남인 전세욱 상무가 회사 경영에 참여하면서 검증되지 않은 자신의 고등학교·대학교 동창 다수를 핵심 사업부 주요 보직에 앉힌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실적 부진이 능력보다는 지인 중심으로 한 인사 때문이란 내부 불만이 나오면서 주목된다.
2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솔루엠의 ESL(전자가격표시기) 실적이 포함된 ICT(정보통신기술) 부문은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이 17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8.6% 줄었다. 지난해 역시 매출(4457억원)이 전년 대비 45.9% 감소했고 영업이익(446억원)도 65.6% 급감한 바 있다. 2년 연속 실적 부진이다.
ESL은 전자잉크 기반 디스플레이 기기로 유통·물류·제조 현장에서 가격과 재고 정보를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할 수 있는 장비다. 글로벌 리테일 기업들이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적극 도입하고 있어 시장 성장성이 높다. 솔루엠은 삼성전기에서 분사한 후 ESL 시장에 빠르게 진입해 지난해 기준 글로벌 점유율 2위까지 올랐지만 최근 ESL 시장에서 프랑스 뷰전과 중국 한쇼가 가파르게 세를 넓히면서 솔루엠의 점유율이 위태로운 상황에 놓였다
솔루엠의 성장 엔진이던 ESL 사업이 부진하자 회사 내부에서는 지난해부터 사업을 총괄하게 된 전세욱 상무의 인사 방침을 문제 삼고 있다. 핵심 보직에 전문성과 경험이 부족한 인사들이 배치되면서 경쟁력이 약화됐다는 지적이다. 전 상무는 전성호 솔루엠 대표의 차남으로 1988년생이다. 그는 경영 참여 2년 만에 핵심 사업부를 이끄는 자리에 올랐지만 그 직후 ESL 실적이 급격히 하락해 오너 2세 리더십을 둘러싼 주주들의 우려가 크다.
뉴비즈(New Biz) 그룹장, 판매총괄 프로, ESL 개발팀 파트장 등이 대표적 지인 인사로 거론된다. 뉴비즈 그룹장과 판매총괄 프로는 전 상무와 대학교 시절 인연을 맺은 인물로 파악된다. 뉴비즈 그룹장은 ESL·ICT 분야 직접 경력은 없는 상태에서 솔루엠에 입사, 지난해 초 그룹장 직책을 맡았다. ESL개발팀 파트장도 고등학교 동창으로 알려졌다.
주주들 사이에서는 '2세 경영'에 대한 비난이 쏟아진다. 충분한 성과로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경영진 자녀가 인사와 같은 핵심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책임경영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전문성과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지인 중심 인사가 반복되면 기업 경쟁력이 약화되고 이는 곧 주주가치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의 '경제 멘토'로 알려진 진보 성향 경제학자 주병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최근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로 내정되면서 솔루엠의 행보가 향후 규제 타깃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주 후보자는 지난 14일 기자들과 만나 "한국 경제에는 여전히 강자의 '갑질'과 혈연·지연·학연이 만연하다"며 "이 같은 관행을 정리하지 않으면 경제 혁신을 이룰 수 없다"고 강조했다. 지난 4월 한 언론 기고에서도 "재벌가 2세·3세 경영의 특권 질서가 혁신적 중소·벤처기업의 기회를 박탈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내부 직원들의 사기 저하와 조직문화 왜곡도 심각한 우려로 꼽힌다. "성과보다 인맥이 우선된다"는 불신이 확산되면서 조직 내 건전한 경쟁과 협업이 무너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직장인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솔루엠 내부 사정을 전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으며 "공정한 기회가 박탈됐다"고 불만이 드러나고 있다. 핵심 인력 이탈도 가시화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솔루엠의 ESL 사업은 회사의 미래 먹거리이자 성장 동력으로 꼽혀왔다"며 "경영진의 인사와 전략적 판단이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면서 시장 신뢰를 잃고 있다. 이번 사안은 단순한 내부 인사 문제가 아니라 지배구조와 책임경영 전반에 대한 문제로 번질 수 있다"고 했다.
회사 관계자는 "솔루엠은 삼성전기에서 분사한 기업으로 전기 출신 인력만으로는 사업에 한계가 있었다"며 "외부의 역량 있는 인재들을 추천받아 조직장과 임원진의 객관적인 인터뷰 절차를 거쳐 채용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2020~2022년 당시 솔루엠 ESL의 매출과 글로벌 위상이 낮았고 국내 인지도 역시 부족한 상황이었다"며 "영업·유통·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 경력을 갖춘 인재들의 영입은 ESL 사업 성장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