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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유전자를 편집해 난치병을 치료하는 시대가 왔다. 지난달 영국에 이어 미국에서 이른바 유전자 가위로 불리는 '크리스퍼 캐스나인'(CRISPR-Cas9) 기술이 적용된 카스게비(미국 제품명 엑사셀)가 상용화되면서다.
크리스퍼 캐스나인 기술은 2012년 개발됐으나 상용화까지 11년이 걸렸다. 유전정보에 대해 변형을 일으켜 또 다른 질병을 유발시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윤리적인 문제도 한몫했다. 하지만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카스게비의 쓰임새를 넓히면서 유전자 치료 시장이 본격적인 개화기를 맞았다는 평가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FDA는 지난 16일(현지시각) 카스게비를 12세 이상의 베타 지중해 빈혈(TDT) 환자에게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지난달 8일 중증 겸상 적혈구 빈혈(SCD) 환자에 대한 치료제로 품목 허가한지 40여일 만에 추가 적응증을 승인했다.
카스게비는 나선 구조의 DNA에서 이중 가닥을 절단하고 표적 유전자 기능을 상실시켜 SCD와 TDT를 치료한다. 미국 버텍스파마슈티컬스와 노벨 화학상 수상자 샤르팡티에 교수가 설립한 스위스 크리스퍼테라퓨틱스가 개발했다.
니콜 베르둔 FDA 치료제품 사무국 박사는 "이번 승인은 쇠약성 질환인 베타 지중해빈혈 환자를 위한 추가 치료 옵션을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단계"라며 "FDA는 크리스퍼 캐스나인 기술을 통해 최첨단 의료 기술을 활용하는 안전하고 효과적인 치료를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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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가위 기술 뭐길래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에 따르면 크리스퍼 캐스나인은 인간을 포함해 다양한 동식물의 유전자의 변형을 유도해 형질의 변화를 꾀할 수 있는 기술이다. 가령 사람의 눈 색깔을 바꾸거나 질병에 대한 저항성을 갖게 할 수 있다.최근 크리스퍼 캐스나인 기술은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 현재 1세대 기술은 DNA 이중 가닥을 모두 절단하는 방식이다. 2세대부터는 DNA 염기쌍 하나를 다른 염기로 치환하거나 단일 가닥만 잘라내 유정 정보를 주입하는 방식이 주를 이룬다.
2세대의 등장과 함께 난치질환 치료제로서 개발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프로스트앤드설리번에 따르면 크리스퍼 캐스나인을 활용한 치료제는 ▲망막색소변성증 ▲B세포 림프종 ▲유전성혈관부종 ▲B세포 림프종 ▲다발성 골수종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다만 크리스퍼 캐스나인이 본격적으로 상용화되기까진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가장 큰 문제는 가격이다. 카스게비는 TDT 환자의 1회 치료 비용으로 220만달러(29억5372만원)에 이른다.
유전자편집 기술이 발전하면 치료가 아닌 '욕망'에 매몰될 수 있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유전자 편집을 통해 근육을 키우거나 학습능력·기억력을 향상시키는데 활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2018년 7개 국가에서 모인 18명의 과학자들이 모여 유전자변형을 자발적으로 금지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