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에너지솔루션 미시간 홀랜드 공장에서 직원이 배터리 생산 공정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LG에너지솔루션

국내 배터리업계가 북미 시장을 발판 삼아 에너지저장장치(ESS)용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운다. 미국의 ESS 성장세가 가팔라지는 가운데 중국산 ESS용 배터리에 대해 관세 조치가 시행되면서다. 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 미국에서 ESS용 LFP 배터리 대규모 양산을 시작했고 SK온과 삼성SDI도 내년 본격 생산을 목표로 생산라인 구축 및 제품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산 ESS 배터리는 최근 진행된 미중 관세 협상의 결과로 40.9%의 관세를 적용받는다. 관세 협상 타결 전의 관세율인 155.9%보다는 크게 완화됐으나 여전히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또 관세가 인하된 데에는 90일간의 유예 조치 영향이 컸던 만큼 향후 미중 관계에 따라 재인상될 가능성도 있다. 현지 거점을 둔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가 무관세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첨단제조 생산세액공제(AMPC) 등 혜택을 받는 만큼 중국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예전 같지 못할 거란 전망이다.


그동안 중국 배터리 업체는 저가형 LFP 배터리를 앞세워 ESS 시장을 독점해왔다. 지난해 ESS 배터리를 출하한 세계 10위권 기업 중 6곳이 중국 회사다. 미국 내 80% 이상의 ESS용 배터리도 중국산인 것으로 파악된다. LFP 배터리는 수명이 길고 단가가 저렴해 고정된 위치에서 안정적인 출력을 내야 하는 ESS에 적합하단 평가다. ESS 시장에서의 공고한 입지는 배터리 시장 전반으로도 이어져 왔다. 시장조사 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전기차·ESS용 배터리 시장 점유율 1위는 38%를 차지한 중국의 CATL이다. 2위 역시 15%를 점유한 중국의 BYD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대중 견제와 함께 현지 ESS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점도 호재다. 글로벌 ESS 시장 규모는 2023년 기준 약 185GWh에서 2035년에는 약 1232GWh까지 성장할 것으로 관측된다. 국내 ESS용 리튬이온 배터리의 대미 수출액도 2022년 9억7000만달러(약 1조3273억원)에서 지난해 21억9000만달러(약 2조9970억원)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기차용 배터리 수출액이 14억2000만달러(약 1조9432억원)에서 4억5000만달러(약 6158억원)로 감소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신재생에너지 확산,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급증 등의 영향으로 전력 수요가 늘어난 게 영향을 미쳤다.

국내 배터리 3사도 변화하는 업계 흐름에 발맞춰 시장 공략을 본격화한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미시간 홀랜드 공장에서 ESS용 LFP 배터리 대규모 양산에 돌입했다. 글로벌 주요 배터리 업체 중 미국 내에서 ESS용 LFP 배터리를 본격 양산한 곳은 LG에너지솔루션이 유일하다. 생산 제품은 롱셀 기반 ESS 전용 파우치형 LFP 배터리로 테라젠·델타 등 주요 고객사에 공급될 예정이다. 본래 미국 애리조나에 신규 공장을 건설해 내년부터 양산할 계획이었으나 EV용 배터리 생산 공장을 ESS 생산라인으로 빠르게 전환해 양산 시기를 앞당겼다.


SK온은 ESS 사업본부를 사장 직속으로 격상시킨 후 제품 개발부터 수주까지 전 단계를 아우르는 체계를 마련했다. 내년에는 미국 현지 양산을 목표로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조지아주에서 운영하는 전기차용 배터리 공장의 유휴 설비를 ESS용 LFP 배터리 생산라인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지난해 IHI테라선솔루션스과 업무협약(MOU)를 체결하고 ESS용 배터리를 공급하기로 하면서 이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삼성SDI도 내년쯤 ESS용 LFP 배터리를 생산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제품 개발과 함께 전기차 배터리 일부 생산 능력을 전환해 전체 ESS 생산 비중을 20% 이상 확대할 계획이다. 현재 미국 최대 전력사 넥스트에라에너지에 ESS용 NCA 배터리를 납품 중인 만큼 향후 시장 영향력을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황경인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국내 배터리업계가 북미 시장을 기반으로 ESS용 LFP 배터리 시장을 공략하는 건 필요한 방향"이라며 "계속되는 미중 갈등으로 중국의 미국 진출이 사실상 어려운 상황인 만큼 지금이 국내 기업이 (북미 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정책적 환경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점점 위축돼가는 현지 전기차 시장과 달리 ESS 시장은 전력 수요가 늘면서 상승세를 보인다"며 "국내 배터리 기업들이 현지에 생산 기지를 두고 있기 때문에 (ESS용 LPF 배터리) 시장 공략은 전략적인 선택"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