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 계몽주의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천년의상상 출판사가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을 이끈 무정부주의자이자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유작 '해적 계몽주의'를 펴냈다.

5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그레이버는 유작에서 동부 아프리카의 섬 마다가스카르 일대에서 활약한 해적들을 인류학적으로 접근했다. 그레이버는 해적들과 마다가스카르 원주민 여성들이 인간해방이라는 계몽주의적 이상을 잘 구현했다고 주장했다.


흉폭한 이미지와 다르게 해적들은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 통치의 발전을 선도했다. 해적단이 온갖 종류의 사람들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한 배에 영국인, 스웨덴인, 도망친 아프리카 노예, 카리브해의 크레올인, 아메리카 선주민, 아랍인 등이 함께 있었다.

해적 선장들은 무시무시하고 권위적인 악당으로서의 명성을 얻기 위해 노력했지만, 자신들의 배 위에서는 다수결로 선출되었을 뿐 아니라 마찬가지 방식으로 언제든 해임될 수 있었다.

또한 선장과 항해장(항해장은 회합의 사회를 보았다)을 제외하면 해적선에는 아무런 서열도 없었고, 그 권력 또한 부분적이고, 일시적이고 쉽게 철회될 수 있었다.


당시 마다가스카르의 베치미사라카 영토의 해안 도시들은 '여성들의 도시'라고 불릴 정도였다. 도시에는 바딤바자하(‘외국인들의 아내들’)와 자주 부재중인 그들의 남편들, 그리고 여러 친족과 하인들이 살았다.

바딤바자하는 해적이 불법적으로 획득한 막대한 부를 안전하고 편안한 생을 보장받을 수 있는 방식으로 처분하는 역할을 맡았다. 또한 항구 도시의 건설, 성적 관습의 변혁, 결국은 해적과 낳은 아이들을 새로운 귀족으로 신분 상승시키는 것, 이런 것들을 도맡았다.

책은 바다의 무법자라고 불린 해적들과 검은 피부 여성들이 함께 만든 인간해방 사회를 긍정적으로 들여다봤다.

△ 해적 계몽주의/ 데이비드 그레이버 씀/ 고병권·한디디 옮김/ 천년의상상/ 1만9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