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후' 스틸컷

(서울=뉴스1) 고승아 기자
* 영화의 주요 내용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뛰는 좀비'로 좀비물의 패러다임을 바꾼 전설적인 작품이 돌아온다. 2002년 개봉한 '28일 후'의 후속작 '28년 후'다. '28주 후'(2007)가 후속작으로 나왔지만 원작자인 대니 보일 감독과 알렉스 가랜드 각본가가 이 작품을 정식 속편으로 인정하지 않아, '28년 후'가 '28일 후'의 정통 후속작으로 볼 수 있겠다.

19일 개봉하는 '28년 후'는 28년 전 시작된 바이러스에 세상이 잠식당한 후, 일부 생존자들이 철저히 격리된 채 살아가는 '홀리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소년 스파이크(알피 윌리엄스 분)가 난생처음 섬을 떠나 바이러스에 잠식당한 본토에 발을 들인 후 감염자들과 마주하며 겪는 극강의 공포를 담았다. '28일 후'를 선보인 대니 보일 감독과 알렉스 가랜드 각본가가 다시 의기투합했다.


영화는 공포에 떠는 아이들이 '감염자'에게 무참히 당하고, 이 사이에 탈출한 한 소년의 모습에서 시작된다. 소년은 교회로 달려가 신부인 아빠를 만나지만, 아빠는 '신의 뜻'이라며 자발적으로 감염 당한다. 결국 소년은 아빠에게 받은 십자가만 가지고 홀로 도망친다. 이렇게 분노 바이러스가 영국 전역에 퍼진 뒤 28년이 흐른다. 영국은 섬 전체가 격리당했고, 일부 생존자들은 외딴섬 '홀리 아일랜드'에 모여 자급자족 생활을 이어간다. 본토와 연결 통로는 오로지 썰물 때 드러나는 길이다. 12세인 스파이크는 한 번도 섬 밖을 나가 본 적이 없다. 아픈 엄마 아일라(조디 코머 분)와 함께 사는 스파이크는 아빠 제이미(애런 존슨 분)와 함께 처음으로 사냥을 위해 본토로 향하고, 난생처음 광활한 자연과 함께 충격적인 모습의 감염자들을 직접 마주하게 된다.

'28일 후'에서 보여준 바이러스 감염자, 즉 좀비가 세월의 흐름에 맞게 진화했다는 점이 가장 돋보인다. 기어다니며 생활하는 슬로우 로우, 스테로이드로 진화해 '알파'라는 명칭을 얻은 강력한 감염자가 등장한다. 기존에는 감염자들이 굶어 죽을 수 있다는 설정이었으나 이제는 시체 등을 먹으며 감염자들끼리 나름대로 무리를 형성했다는 것도 특이점이다. 타액이나 혈액으로 쉽게 감염되는 설정은 그대로 이어가기도 한다.

'28년 후' 스틸컷

'28년 후' 스틸컷

'28년 후' 스틸컷

달려오는 좀비의 원조인 만큼, 여전히 공포스럽다. 게다가 진화한 좀비들의 기괴한 비주얼과 더욱 잔혹해진 감염 방식이 공포스러움을 더한다. 여기에 인간이 없는 고요하고 광활한 자연과 좀비의 등장이 어우러지며 계속해서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또한 스파이크와 제이미가 좀비를 사냥하는 모습을 불릿 타임 기법으로 촬영해 더욱 리얼하고 잔혹하게 그려낸다.
영화 초반부 영상도 '28년 후'의 분위기를 잘 살려냈다. 미국 배우 테일러 홈스가 1915년에 낭독한 러디어드 키플링(Rudyard Kipling)의 시 '부츠'(Boots) 음성을 삽입, 불안정한 박자와 절규에 가까워지는 톤이 '28년 후'와 어우러져 집중도를 높인다.


하지만 '28년 후'는 단순히 오락과 액션적인 요소가 강한 좀비물이 아니다. '28일 후'에서도 인간성에 관해 얘기했듯, '28년 후' 역시 좀비를 통해 인류애와 가족, 죽음에 관한 깊이 있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의문의 생존자 켈슨 박사(랄프 파인즈 분)가 '메멘토 모리'(죽을 것임을 기억하라)를 말하는 것도 영화의 메시지와 일맥상통한다.

다만 '28년 후' 3부작의 첫 번째 이야기라 아직은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과정으로 보인다. 특히 강렬한 도입부에 비해 스파이크의 결심이 다소 당황스러워 몰입도를 떨어뜨린다. 엄마를 위해 아직 12세인 주인공이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떠날 수 있는지 쉽게 납득이 어렵다.

사실상 '28주 후'의 서사는 배제된 듯하다. 대니 보일 감독은 "3부작 중 마지막에서 오리지널 영화 '28일 후'와 함께 딱 만나 정리된다"며 "첫 번째, 두 번째 파트에서 잘 세팅하니 세 번째까지 기다려달라"고 밝혔다. 쿠키는 없으나, 영화 말미 다음 파트가 이어질 것을 예고한다. 러닝타임 115분. 청소년관람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