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53년 6월 19일, 뉴욕 주 싱싱 교도소에서 줄리어스 로젠버그와 에셀 로젠버그 부부가 전기의자에서 사형에 처해졌다. 죄목은 소련을 위한 핵 기밀 간첩 행위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은 냉전 시대로 접어들었다. 1949년 소련의 핵실험 성공과 중국의 공산화는 미국 내에서 극심한 공포와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조셉 매카시 상원의원이 주도하는 반공산주의 운동, 즉 '매카시즘'이 맹위를 떨쳤다.
공산주의자로 의심되는 사람들은 직장을 잃거나 사회적으로 매장당했다. 로젠버그 부부 사건은 이러한 매카시즘의 정점에서 발생했다. 줄리어스는 전기공학자였고, 에셀은 주부였다. 그들은 둘 다 공산주의 활동에 참여했던 이력이 있었지만, 간첩 행위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는 부족했다.
로젠버그 부부에 대한 수사는 에델의 오빠인 데이비드 그링글래스의 증언에서 시작됐다. 그는 원자폭탄 개발 계획에 참여했던 기술자로, 자신이 로젠버그 부부에게 핵 기밀 정보를 넘겼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그의 증언은 일관성이 없었고, 후에 자신의 형량을 줄이기 위해 거짓 증언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재판 과정에서 검찰은 로젠버그 부부가 소련에 미국의 핵무기 기밀을 넘겨 소련이 원자탄을 개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1951년, 로젠버그 부부는 유죄 판결을 받고 사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사형은 간첩죄에 대한 이례적인 형벌이었다.
로젠버그 부부에 대한 사형 선고는 국제적으로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프랑스의 장 폴 사르트르, 알베르 카뮈, 영국의 버트런드 러셀 등 전 세계 지식인들과 교황 비오 12세까지 나서서 사형 집행 유예를 호소했다. 그러나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당시 미국 대통령은 "미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필수적"이라는 이유로 사면 요청을 거부했다. 결국 로젠버그 부부는 전기의자에서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