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장아름 기자 = 2025년 상반기에는 다수의 영화가 300만의 벽을 넘지 못했다. 누적 관객 수 300만 명(이하 6월 27일 기준)을 돌파한 작품은 상반기 흥행 1위에 오른 '야당'과 2위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 및 3위 '미키 17'까지 단 세 편이다. 팬데믹 기간인 2022년과 엔데믹에 접어든 2023년과 2024년 상반기까지, 1000만 영화를 배출했던 지난 3년의 흥행 흐름과 사뭇 다르다는 점에서 영화계 위기의식은 더욱 팽배해졌다.

◇ 상반기 흥행 1위는 강하늘·유해진·박해준 '야당'
상반기 흥행 1위를 차지한 작품은 337만여 명이 관람해 손익분기점 250만 명을 넘긴 '야당'이다. 지난 4월 중순 개봉한 '야당'은 대한민국 마약 판을 설계하는 브로커 야당, 더 높은 곳에 오르려는 검사, 마약 범죄 소탕에 모든 것을 건 형사가 서로 다른 목적을 갖고 엮이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 범죄 액션 영화다. 청소년관람불가임에도 5월 초 황금연휴까지 장기 흥행을 이어왔다.
'야당'은 '잘 끓인 김치찌개'를 표방하는 마케팅과 이에 공감하는 관객들의 공통된 평가로 흥행에 성공했다. '마약판' '검사' '형사'라는 친숙하고 익숙한 재료를 활용해 만든 예상 가능한 맛의 작품이지만, 만족스러울 만한 요리로 결과물을 낸 셈이다. 또한 마약 범죄 현실과 정치 세력과의 유착, 검경 수사권 대립 문제도 다루며 시의성이 돋보였다는 평가도 받았다.
특히 '야당'이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존재를 소재로 삼으며 한끗 차이의 차별점을 내세운 점도 한몫했다. '야당'은 마약 범죄에서 사용되는 은어로, 수사 기관에 정보를 제공하는 정보원 역할을 하는 사람을 칭한다. 야당에 검사와 형사까지 얽힌 입체적인 서사와 범죄 액션의 장르적 매력으로 더욱 풍성한 재미를 안겼고, 이를 연기한 배우들의 열연까지 시너지를 냈다.

◇ 최고 기대작 봉준호 '미키 17', 1000만 시리즈 단골 마동석도 흥행 부진
올해 최고 기대작은 단연 봉준호 감독의 '미키 17'이었다. 지난 2월 마지막 날 개봉한 '미키 17'은 위험한 일에 투입되는 소모품(익스펜더블)으로, 죽으면 다시 프린트되는 '미키'가 17번째 죽음의 위기를 겪던 중, 그가 죽은 줄 알고 '미키 18'이 프린트되면서 벌어지는 예측불허의 이야기를 그리는 영화다.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2019)으로 영화계 최고 권위로 꼽히는 칸 국제영화제와 아카데미 시상식을 석권한 이후 복귀작으로 주목받은 만큼, 극장가 활력을 불어넣어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3월 초 삼일절 연휴 기간을 겨냥했음에도 최종 스코어 301만여 명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미키 17'의 순제작비는 1700억 원(1억 1800만 달러)로 알려져 있는 바, 국내 매출액은 약 297억 원으로 영화는 큰 손실을 기록했다. SF에 대한 국내 관객들의 선호도가 낮은 데다, 익숙한 정서적 공감대가 형성됐던 '살인의 추억' '괴물' '기생충' 등과 달리 복제 인간과 인간의 존엄성과 같은 철학적인 사유를 요하는 내용으로 호불호가 갈렸다.
특히 '미키 17'과의 경쟁을 피하기 위해 국내 작품들은 최대한 간격을 두고 개봉일을 집았다. 당시 한 관계자는 '미키 17'의 성적과 관련해 "'미키 17'의 실패가 뼈아프다"며 "'미키 17'을 피하려다 많은 한국 영화가 밀려났는데 (흥행에) 실패하니까 극장이 더욱 텅 비어버렸다, '미키 17'의 흥행이 더욱 아쉬운 이유"라고 말했다.
'범죄도시' 시리즈로 세 번의 1000만 흥행을 거뒀던 마동석의 등판도 기대를 모았지만, 5월 황금연휴 흥행을 노렸던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 또한 부진을 겪었다. 지난 4월 말 개봉한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는 악을 숭배하는 집단에 의해 혼란에 빠진 도시, 특별한 능력을 가진 어둠의 해결사 '거룩한 밤' 팀 바우(마동석 분), 샤론(서현 분), 김군(이다윗 분)이 악의 무리를 처단하는 오컬트 액션 영화다.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의 손익분기점은 200만 명이었으나, 최종 77만여 명을 동원했다. 마동석의 액션과 오컬트의 만남으로 기대가 컸으나, 장르의 깊이와 연출이 아쉽고 조악한 CG로 인해 완성도가 낮다는 혹평을 받았다.
◇ 메가 히트작 부재 우려 확산
상반기 박스오피스는 특정 메가 히트작보다는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고르게 순위에 랭크됐다. 상반기 흥행 톱(TOP) 10 순위에 든 작품으로는 '히트맨2'(254만 명), '하얼빈'(215만 명), '승부'(214만 명), '하이파이브'(179만 명), '검은 수녀들'(167만 명) ,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165만 명), '드래곤 길들이기'(137만 명) 등이 있다. '히트맨2'와 '하이파이브'와 같은 코믹 액션물을 비롯해 오컬트 '검은 수녀들', 히어로물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 판타지물 '드래곤 길들이기' 등이 이름을 올려 눈길을 끈다.
메가 히트작의 부재는 본격 여름 시장을 앞둔 영화계에 큰 우려로 작용하고 있다. 오랜 프랜차이즈 역사를 자랑하는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과 거장 봉준호 감독의 '미키 17'까지 대작의 개봉에도 괄목할 만한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는 점은 국내 영화 산업이 더욱 위축되고 있다는 신호로 다가온다. 산업 침체는 투자 명분을 약화하기 때문에 대작 기획의 기회를 더욱 축소한다. 그간 텐트폴 작품들이 영화 산업의 큰 동력이기도 했던 만큼, 더욱 선명해진 영화계 악순환의 고리에서 활로를 모색할 필요성이 더욱 제기됐다. 과연 올여름 시장에서 300만 벽을 넘어 흥행하는 작품들이 나올 수 있을지, 그 작품이 극장가에 활력을 가져다줄지 더욱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