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와 유해 증명서 액자(제공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한국천주교가 한국인 최초의 신부인 성(聖) 김대건 신부(1821~1846)의 유해 및 증명서 등을 공개했다. 이 사료는 유해가 모셔진 유해함과 유해 증명서가 하나의 액자 형태로 함께 보존돼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는 기해·병오박해 순교자 79위의 시복 100주년을 맞아 성 앵베르 주교와 성 모방 신부, 성 샤스탕 신부(이상 기해박해 순교자), 성 김대건 신부(병오박해 순교자)의 유해가 함께 모셔진 유해함과 유해 증명서를 공개했다.


유해 증명서에는 1925년 12월 16일이라는 날짜가 표기돼 있다. 이 증명서는 같은 해 7월 5일에 거행된 시복식 이후 5개월이 지난 시점에 발급된 것이다.

주교회의는 펜으로 작성된 유해 증명서의 중간 부분이 흐릿해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면서도 유해함에 모셔진 유해가 '앵베르 주교,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의 머리카락과 김대건 신부의 발뼈 조각 일부'인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 선교사는 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이며 박해가 한창이던 1836~1837년 조선에 각각 입국한 프랑스인 사제들이다. 이들은 한국인 성직자 양성과 복음 전파를 위해 애쓰던 중 체포돼 1839년 9월 21일 한강 새남터에서 함께 순교했다.


김대건 신부는 1845년 8월 17일 중국 상하이의 진쟈상(金家巷) 성당에서 한국인 최초의 사제로 서품됐다. 김 신부는 외국인 성직자의 입국로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1846년 6월 백령도 해역 순위도에서 체포됐다. 그는 옥중에서도 서한을 통해 신자들을 격려하는 등 헌신적으로 사목했으나 사제 수품 1년여 만인 1846년 9월 16일에 한강 새남터에서 순교했다.

이들 사제 4명은 1925년 7월 5일 비오 11세 교황에 의해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시복됐으며, 이후 1984년 5월 6일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서울 여의도에서 시성됐다.

이번 사료는 '한국천주교사료목록화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확인했다.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는 좀 더 체계적이고 안전한 보존을 위해 2025년 2월 19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 기증했다.

앞으로 주교회의는 1784년부터 1962년까지 생산된 한국 천주교회 관련 사료들을 '한국 천주교 사료 디지털 아카이브'(가칭)를 통해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