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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법안은 노동자의 쟁의권을 폭넓게 보장한다는 취지지만 산업계와 외국인 투자기업들은 경영 불확실성 심화를 우려하며 보완 입법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노사 균형을 맞추기 위한 보완 입법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현장의 혼란은 불가피하다는 경고도 나온다.
노란봉투법은 지난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의원 186명 중 찬성 183표, 반대 3표로 가결됐다. 국민의힘은 전날부터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로 저지에 나섰지만 24시간 만에 종료 동의안이 통과되면서 표결에 부쳐졌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민노총 등 이른바 귀족노조의 대변자임을 스스로 입증한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노란봉투법은 지난 정부에서 대통령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두 차례 무산됐으나 현 정부와 여당이 핵심 노동 공약으로 내세우며 입법을 밀어붙였다. 이번 개정안은 ▲사용자 범위 확대 ▲비근로자의 노조 가입 허용 ▲노동쟁의 대상 확대 ▲손해배상 책임 제한 등을 담았다.
우선 노조의 교섭 대상을 '사업주'에서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로 넓혀 하청 노조가 원청 기업에 교섭을 요구할 수 있게 했다. 또 구조조정·정리해고 등 경영상 판단이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면 파업이 가능하고 파업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도 제한된다. 민주노총은 "법이 시행되는 순간 현장에서 그 힘이 살아 움직일 것"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산업계는 초비상이다. 법안이 파업 남용을 조장해 노사관계를 악화시키고 생산성과 투자환경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자체 플랫폼 '소플'에서 국민 12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식조사 결과 응답자의 76.4%가 "노란봉투법 통과 시 노사갈등이 심화될 것"이라고 답했다.
외국인 투자기업의 이탈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은 경영권 안정을 핵심 투자 조건으로 꼽는데 이번 개정안이 이를 훼손해 한국 시장의 투자 매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주한유럽상공회의소(ECCK)는 "교섭 상대 노조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교섭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형사처벌 위험에 직면한다면 한국 시장에서 철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법은 공표 후 6개월 뒤인 내년 3월부터 시행될 전망이다. 학계와 산업계에선 그 사이 보완 입법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현장의 혼란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 6단체는 "사용자 범위와 노동쟁의 개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으며, 파업 노동자를 대체할 수 있는 대체근로 허용 등 사용자의 방어권도 입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법은 원청 책임을 넓혔지만 어디까지가 사용자 책임인지 불분명하다. 이에 불필요한 소송과 산업 현장의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준희 광운대 법학부 교수는 "지나치게 추상적이어서 노사 관계에 대한 사법부 개입 가능성만 확대하는 결과를 부를 것"이라고 우려했다.
사용자의 방어권 보장을 위해 균형을 맞추기 위한 보완 입법 필요성도 제기된다. 대부분의 선진국(미국·영국·일본 등)은 대체근로 허용이나 필수공익사업의 파업 제한 장치를 운영해 노사 균형을 맞추고 있다. 미국은 1938년 대법원 판례로 확립된 맥케이 독트린(Mackay Doctrine)에 따라 고용주가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를 해고할 수는 없지만 대체인력 투입을 허용한다. 임금·근로조건 개선을 목적으로 한 경제적 파업 시에도 기업은 사업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단을 보장받는 셈이다.
반면 한국의 노란봉투법은 파업권만 확대하고 대체근로는 여전히 금지돼 있어 경영상 타격을 고스란히 기업이 떠안아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노동법 전문가는 "한국의 노란봉투법은 쟁의권 확대라는 한쪽만 반영했을 뿐, 대체근로 금지와 같은 규제는 그대로 두고 있어 노사 균형이 무너졌다"며 "결국 파업 장기화 시 기업은 생산 중단과 막대한 손실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밖에도 파업과 분쟁이 장기화될 경우 피해는 결국 노동시장에서 가장 취약한 하청·비정규직·중소 협력사에 집중된다. 이를 막기 위해 선제적으로 노사 간 조정·중재 기구를 활성화하고 신속하게 분쟁을 조정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권오성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하청 노조의 교섭 요구는 원청의 사용자성을 확인받기 위해 계속해서 법원의 쟁송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며 "아무런 지침도 마련하지 않은 상태로 노동조합법을 개정하는 것은 국회가 자신이 부담해야 할 노동 정책에 대한 결정을 사법부에 떠넘기는 꼴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