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공공임대 확대 방침을 내놓은 가운데 주거빈곤 해소를 위해 취약계층의 주거품질을 강화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진은 임재만 세종대 교수의 사회로 토론회가 진행되는 모습. /사진=이화랑 기자

이재명 정부가 9·7 공급대책을 통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접 시행 등 공공임대 확대 방침을 내놓은 가운데 주거빈곤 해소를 위한 취약계층의 주거품질 강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수급자 발굴에 강점을 가진 지방공기업 등에 자율권을 보장해 지방정부 중심의 주거권 보장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이재명 정부의 주거빈곤 해소 로드맵 제안' 토론회에서 "정부의 주거복지 정책에선 공공임대주택이 신혼부부와 청년에 치우쳐 있다"며 "이재명 정부는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나 '지옥고'(반지하·옥탑방·고시원) 거주 가구 등 주거복지 최전선 거주민을 우선 고려하는 로드맵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는 주거 면적이나 방의 개수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곳에 사는 가구를 말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와 지옥고 거주 가구를 중복 제외 합산한 주거빈곤 가구는 2020년 기준 176만가구(8.4%)다. 사회적 약자 계층만 보면 ▲노인가구 45만가구 ▲청년가구 34만6000가구 ▲아동가구 27만6000가구로 나타났다.

최 소장은 한국 주거 수준이 전반적으로 향상됐다고 보면서도 지하거주 가구가 증가세로 전환한 데 대해 우려를 표했다. 그는 "전체 가구의 50%에 달하던 주거빈곤 가구가 자연 감소하며 2020년 10% 미만으로 줄었지만 지하 거주 가구는 놀랍게도 증가했다"며 "올해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주거빈곤 추세가 줄어들 수 있을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하 거주 가구는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간 전국 7만1000가구, 서울 4만4000가구가 증가했다. 지옥고는 침수·화재·감전 등 재난 발생 위험이 크다. 2022년 8월 관악구 지하주택 수해 참사로 일가족 3명이 목숨을 잃은 사고가 대표 사례다.


최 소장은 "사고 발생 구간은 15분 만에 물이 천장까지 차는 지형"이라며 "피해자가 장애인이라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이 아니라 누구도 빠져나올 수 없는 구조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미 확보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위험지역 거주민을 빠르게 찾아낼 수 있었는데 정책으로 이어지지 않아 피해가 발생했다"며 "재난이 발생해야 수급자의 존재를 발견하는 것이 현 제도의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국에 지하주택이 수십만채 쌓여있고 3년이 지나도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최 소장은 ▲임대주택 수선유지를 위한 LH 인력 확대 ▲아동가구에 대한 별도 주거비 지원 ▲지방정부의 주거권 보장 기반 강화 등도 제언했다.

"재난 터지면 수급자 발견"… 주거빈곤 대책 3년째 제자리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이재명 정부의 주거빈곤 해소 로드맵 제안' 토론회가 개최됐다. 사진은 변창흠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발표하는 모습. /사진=이화랑 기자

통계청에 따르면 공공·민간임대주택은 2018년 51만4000가구 이후 2023년 15만6000가구로 감소했다. 특히 매입임대주택 공급 실적은 2023년 21%, 2024년 5.7% 등 목표 달성률이 급격히 하락했다. 매입임대주택 예산도 2022년부터 올해까지 3년간 출자와 융자가 각각 3조9000억원, 3조원 감소했다.

변창흠 전 국토교통부 장관 겸 세종대 교수는 "새 정부 들어 두 번의 부동산 정책이 발표됐는데 공공임대 주거복지 방향성에 대해서는 아직 제시된 것이 없다"며 "주거복지는 공급만으로 완성하기 어려우므로 총체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연간 10만가구 이상의 공급 목표와 실적에도 재고 확대에 한계가 있는 상황"이라며 "국토부가 목표를 정해놓고 10%도 달성하지 못한다는 것은 목표가 잘못됐거나 추진이 안 됐거나 둘 중 하나"라고 꼬집었다. 과거 문재인·윤석열 정부는 각각 연간 14만가구, 10만가구의 공공임대 공급 목표를 세웠으나 지난해 공급 실적은 4700가구로 목표치에 훨씬 미달했다.

미국의 주택도시개발부(HUD)는 공공임대주택 재고 110만가구에 연간 한화 11조8000억원을 지원한다. 변 전 장관은 "한국은 공공임대가 170만가구인데도 정부 지원이 거의 없다"며 "개발사업에서 교차 보조 수입으로 버티고 있어 열악한 환경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공공임대주택의 건설 예산을 대폭 확대하고 지자체 자율권을 강화하기 위한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며 "더 나아가 입주민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취업 지원 등을 제공하는 주거복지센터를 구축해야 한다"고 내다봤다.

이에 대해 김도곤 국토부 주거복지지원과장은 "임대주택 공급과 관리의 균형이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본다"며 "침수 구간은 문제 해결에 지역 협조가 절실하다. 주거 품질도 강하게 규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LH가 반지하 매입을 늘려야 한다는 구상으로 추가 지원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이진민 기획재정부 복지경제과장은 "공공임대 예산 확대의 기조는 바람직하다"며 "다양한 주체가 참여해 맞춤형 공급이 가능하도록 지속가능한 지원을 제공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토론회는 아동·장애인 등 사회 약자의 주거빈곤 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 개선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사회는 임재만 세종대학교 교수가 맡고 이영은 토지주택연구원(LHRI) 선임연구위원, 박미선 국토연구원 연구위원,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 오승환 한국해비타트 매니저 등이 토론자로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