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실련 강당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 매입임대주택 실태 분석 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신축매입을 중단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장동규 기자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매입임대주택 사업이 최근 5년간 21조원을 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신축 임대주택을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매입해 혈세를 낭비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면서 제도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실련 강당에서 LH 매입임대주택 실태 분석 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민간 토지·건축비의 거품이 반영돼 예산이 불어나고, 주변 시세까지 올리는 문제가 확인됐다"며 제도 전면의 재검토를 촉구했다.


경실련 조사에 따르면 LH가 지난 5년간 임대주택 매입에 사용한 금액은 약 21조2000억원(9만5854가구)에 달했다. 신축 매입이 17조8000억원(8만1135가구)으로 전체의 83%를 차지했다. 기존 주택 매입은 3조4000억원(1만4719가구)으로 조사됐다.

매입임대주택은 수도권 집중 현상이 두드러졌다. ▲서울 5조2000억원(1만6004가구) ▲경기 8조8000억원(4만4600가구) ▲인천 2조1000억원(1만2354가구)이 투입돼 수도권 비중이 76.1%에 달했다.

정부는 기존 매입임대의 노후화로 주거 품질이 낮다는 한계를 보완하고, 공공 건설보다 인허가 절차가 빨라서 공급 속도를 높일 수 있는 점을 내세워 신축약정매입임대(신축매입임대)를 도입했다.


이에 민간이 토지를 매입해 다세대주택(빌라)·오피스텔·도시형생활주택 등을 짓고, 준공 시 LH가 다시 매입하는 방식을 활용해왔다. 9·7 부동산 대책에서 수도권을 중심으로 신축매입임대 14만가구를 공급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LH 고가 매입, 주변 시세 자극… "빈집 활용 외면"

사진은 17일 서울 시내 한 부동산에 붙어있는 월세 안내문. /사진=뉴스1

그러나 경실련은 이 같은 구조가 민간의 토지·건축비 거품을 매입가에 반영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택수 경실련 부동산국책사업팀 부장은 "민간이 토지를 비싸게 사 건축비를 얹어 LH에 넘기면 혈세 부담만 늘어난다"며 "이 과정에서 기존 세입자들이 강제 퇴거당하고 지역 시세를 올리는 부작용이 발생한다"고 비판했다.

신축 매입 단가가 공공 건축 대비 높다는 점도 문제로 지목됐다. 정택수 부장은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 분양 원가는 3.3㎡(평)당 1880만원으로 25평 기준 4억7000만원이지만, LH 약정매입 다세대주택은 7억8000만원에 달했다"며 "다세대 두 채 매입 비용으로 강남 공공 아파트 세 채를 공급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사례도 공개됐다. LH는 서울 강동구에서 전용 27㎡ 오피스텔을 약 3억원에 사들였지만, 3분 거리의 준공 연도가 비슷한 29㎡ 오피스텔 실거래가는 2억5000만원이었다.

전문가들도 우려를 나타냈다. 장석호 공인중개사는 "LH가 주변 시세보다 비싸게 사들이면 거래 내역이 실거래가에 반영돼 인근 주택가격을 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조정흔 경실련 토지주택위원장은 매입임대사업이 전세사기 문제와도 연결돼 있다고 주장했다. 조 위원장은 "빈집이 넘쳐나는데도 정부는 민간 신축을 비싸게 매입해 가격을 높게 형성시키는 악순환을 만들고 있다"며 "전세사기 피해가 확산되는 원인 중 하나는 잘못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경실련은 매입임대주택 제도개선 방안으로 ▲제도 전면 재검토 ▲LH의 신축약정매입 방식 전면 중단 및 공공 직접 공급 전환 ▲매입임대 관련 정보 공개 등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