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원재료 가격이 급등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인위적으로 가격만 통제할 경우, 슈링크플레이션과 같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로 인한 피해는 결국 소비자와 국가 경제가 보게 된다는 주장이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이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배훈식 기자

인건비, 식자재, 임대료가 모두 오르는 상황에서 가격만 통제하는 것은 자영업자와 식품 기업을 궁지로 내몬다. 정부의 인위적인 가격 억제는 결국 소비자를 기만하는 '슈링크플레이션'(가격을 올리는 대신 제품 용량을 줄여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전문가들은 시장의 기본 원리를 무시한 과도한 개입은 필연적으로 부작용을 낳는다고 경고한다.

지난 14일, 송종화 교촌에프앤비 대표는 국정감사에 출석해 소비자 고지 없이 순살 메뉴 중량을 700g에서 500g으로 줄인 사실에 대해 집중 질타를 받았다. 국감 이후 교촌은 해당 메뉴의 중량을 기존대로 원상 복구한다고 공지했다. 이 사태는 가격 통제 압박이 어떤 부작용을 낳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국정감사에서 촉발된 치킨 가격 논란에 공정위와 대통령실이 가세했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은 국정감사에서 "치킨 중량과 가격은 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라며 관련 제도 개선 검토를 약속했다. 대통령실도 즉각 반응했다. 안귀령 부대변인은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16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일부 치킨업체 문제를 언급하며 근본적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여론이 특정 품목의 가격 인상에 민감하게 반응할수록 기업이 정직한 가격 책정 대신 '꼼수'를 택하는 시장 왜곡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고 지적한다.

한국소비자원은 매년 슈링크플레이션 실태조사를 실시해 가격정보종합포털사이트 참가격에 공개하고 있다. 올해 9개, 지난해 33개 상품을 적발했다. 이들 중에는 주요 식품 대기업도 포함됐다. 만두, 햄, 어묵, 간편식 등 여러 품목에서 내용물을 줄여 사실상 가격 인상 효과를 본 것으로 확인됐다. 과자류의 경우 겉포장은 그대로 둔 채 내용물만 줄이는 방식을 썼다.

베네수엘라의 비극, 가격 통제가 낳은 국가 파탄

베네수엘라 사태는 국가의 가격 통제가 어떤 비극을 낳는지 보여주는 극단적인 사례다. 원자재 가격 상승을 무시한 채 가격이 통제되자, 기업들은 생산 시설을 철수하며 공급망이 붕괴됐다. 결국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화폐가치가 폭락하면서 국가 경제는 파탄에 이르렀다. 카라카스의 사바나 그란데 거리에서 노점상이 낡은 볼리바르 지폐를 펼쳐두고 있다. /사진=로이터

이러한 가격 통제의 악영향이 극단으로 치달았을 때의 대표적 사례가 한때 세계적인 산유국이었던 베네수엘라의 파국이다.


2003년, 우고 차베스 정부는 서민 물가 안정을 명분으로 식료품, 의약품 등 생필품 가격을 법으로 묶었다. 생산 원가 상승을 무시한 이 정책으로 기업들은 생산할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에 놓였다. 마진을 맞출 수 없게 된 기업들은 공장 문을 닫거나 해외로 도피했고 해외 기업들은 베네수엘라에서 철수하면서 생산 기반이 붕괴됐다.

유가 하락으로 정부 보조금마저 끊기자, 한때 남미 최고 부국이던 베네수엘라는 만성적인 물품 부족과 초인플레이션에 시달리며 경제가 완전히 무너졌다. 이는 '가격 통제'가 소비자 보호가 아니라 공급을 위축시키고 경제 전체를 마비시키는 치명적인 부메랑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국내 슈링크플레이션 논란이나 베네수엘라의 파국 사례는 모두 시장의 가격 결정 기능을 인위적으로 억압했을 때의 실패를 보여준다.

한 업계 전문가는 "특정 품목의 가격을 일시적으로 누르는 것보다, 투명한 정보 공개를 유도하고 유통 구조를 개선하며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는 데 정책의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소비자들은 용량 변동에 대한 명확한 고지 의무를 통해 스스로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하며, 기업은 가격 인상이 아닌 품질과 혁신으로 경쟁하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