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중구 인현동 상가건물 2층 호프집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해당 사진은 화재 진압 후 호프집 모습. /사진=유튜브 채널 '디바제시카' 캡처

1999년 10월30일 저녁 인천 중구 인현동 소재 한 호프집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당시 호프집에는 학교 축제를 마친 인천 지역 고등학생들이 뒤풀이를 즐기던 중이었다. 이들은 급작스러운 화재와 유독가스로 인해 미처 대피하지 못했고 결국 57명의 젊은 생명이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 참사는 단순 화재를 넘어 불법 영업과 청소년 관리 부실, 대한민국 사회의 안전 불감증을 드러낸 대표적 인재로 기록됐다.

충격적인 그날의 상황

사고 당일은 주말인 토요일 저녁 7시쯤이었다. 해당 호프집에는 인천 지역 13개 학교, 120여명의 고등학생들이 학교 축제를 마치고 뒤풀이를 위해 모여 인산인해를 이뤘다. 그러던 중 같은 상가건물 지하 1층 노래방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불은 지하 노래방 아르바이트 학생의 불장난으로 밝혀졌다.

당시 지하 노래방은 인테리어 공사 중이었다. 아르바이트 학생 2명이 인테리어 공사에 쓰이는 시너를 보고 장난삼아 불을 불였다가 우레탄 장식벽에 불이 옮겨붙었다. 불은 유독가스와 함께 순식간에 계단을 타고 올라가 2층과 3층으로 번진 것으로 확인됐다.


이로 인해 불과 유독가스는 호프집 안으로 밀려들었고 결국 실내 전기가 나가며 내부는 암흑천지로 변했다. 불은 화재 신고 13분만에 진화됐다. 그러나 해당 불로 57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80명이 부상을 입었다.

부실한 관리가 만든 예견된 비극

인천 중구 인현동 상가건물 2층 호프집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해당 사진은 화재 진압 후 호프집 조사를 하고 있는 한국전력 관계자 모습. /사진=유튜브 채널 '디바제시카' 캡처

화재 진압 후 전수조사에 착수한 경찰과 소방당국은 "해당 호프집은 불법 증축된 건물로 내부 인테리어 자재는 방염 처리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어 "건물 내 비상구는 없었고 창문 또한 보드로 막혀 있었다"며 "탈출구는 호프집 출입문이 유일했지만 화재 당시 호프집 지배인이 문을 막고 술값을 내고 나가로 해 피해가 더 컸다"고 설명했다.

검경은 업주와 건물주, 관할 구청 관계자를 소환해 준공과 사업허가 경위 등에 대해 수사를 펼쳤고 비리가 있었음을 밝혀냈다. 결국 이들은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구속됐다.

참사 이후 변화와 영향

인현동 호프집 화재 참사는 대한민국 사회에 안전 불감증의 심각성을 일깨운 계기가 됐다. 해당 참사 후 정부는 다중이용업소에 대한 안전기준을 대폭 강화했다. 이어 2004년에는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됐다. 이 법은 비상구 확보, 방염 자재 의무화, 정기 소방점검 등을 규정하고 유사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기반이 됐다.

인천시는 참사 후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에 희생된 학생들을 추모하는 추모비를 세웠다. 이후 매년 10월이 되면 학교와 지역사회는 추모식을 열어 그날의 아픔을 기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