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연쇄 살인범인 이춘재의 음성이 공개됐다.
지난 2일 SBS '괴물의 시간' 2부에서는 이춘재의 전 아내 이씨가 지난 시간을 증언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앞서 이춘재는 1994년 처제를 성폭행·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었다. 이 가운데 경찰은 DNA 대조를 통해 그를 화성 연쇄 살인의 진범으로 특정했다.
이춘재는 처제 사건에 대해 "강간한 건 아니다. 강간한 것처럼 제가 사후에 조작한 것"이라며 "제가 그때 자살을 생각하고 있던 시기였다. 알약을 미숫가루에 타놓은 걸 처제가 먹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당시엔 사형 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그것(사형)을 받기 위해서 처음에는 (범행을) 부인했다"고 말했다.
이춘재의 전 아내 이씨는 "가족들도 나를 원망한다. 나보고 '네가 그 사람(이춘재)을 만나서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다'고 한다. 나도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으면 예쁘게 살았을 것 같다. 한 사람 때문에 인생이 망가졌다. 그런 사람을 만난 건 제 잘못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이춘재와 인연에 대해 "나는 건설회사 여직원이었고 그 사람은 하청업체 직원이었다. 그쪽 일은 새벽에 시작하지 않나. (이춘재는) 한 번도 시간을 어긴 적 없이 철저했다"면서 "서류 같은 거 받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그 사람이 먼저 대시했다. 그때 '남자가 참 손이 곱다'는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삐삐 같은 것도 없어 유일한 연락 방법은 집 전화였다. 내가 가서 만나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이 전화해서 '어디로 와라' '언제 만나라' 이런 식이었다. 그거 말곤 나빠 보이는 면이 별로 없었다. 그때가 출소하고 얼마 뒤라는 걸 전혀 몰랐다"면서 "친구가 장기로 빌린 모텔방이 있었는데 한번은 밖이 시끄러웠다. '무슨 소리지'하고 창문을 열었는데 모텔 옆 주택이 있었는데 그 집에서 시체가 실려 나가고 있더라. 그 사람도 제 옆에서 그 장면을 같이 봤다. '너무 무섭다'라고 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그 사건도 이춘재가 한 거라는 말을 경찰에 들었을 때 말문이 턱 막혔다. '나는 왜 안 죽였을까, 나는 왜 살려뒀을까' 생각을 해봤다. 그런데 경찰이 '아이 엄마라서 그런 것 같다'고 하더라"라며 "임신해서 함께 병원에 갔다. 미혼모 시설을 알아보거나 수술하겠다고 했더니 (이춘재가) 안 된다면서 화성 집에 데려갔다. 그 사람이 '아기 가졌어. 결혼할 거야. 내가 직장을 구할 건데 얘가 지낼 데가 없어'라고 했다. 어머니가 탁 주저앉으셨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이춘재는) 일주일도 안 돼서 포크레인 일 한다고 지방 내려갔다. 그때부터 저는 혼자 시부모님과 화성집에서 살게 됐다. 결혼식은 출산 이후로 미뤘다. 무당이 그러라고 했다. 시어머니가 무당을 맹신했다"고 이춘재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더듬었다.
이씨는 혼자 아이를 낳았다며 "지금도 제일 듣기 싫은 게 '야' '너' '니' 이런 말이다. 혼수도 많이 못 해가고 결혼 전에 임신해서 시어머니한테 늘 죄인이었다. 아버님 안 계셨으면 못 견뎠을 거다. 절 '아가'라고 불러주시고 어머니 몰래 우유 사다가 주시곤 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그 사람은 집에 잘 오지도 않았고 어쩌다 올 때도 빈손이었다. 제가 산부인과에 가야 해서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꼭 시어머니 계좌로만 송금했다. 살가웠던 기억 자체가 없다"고 덧붙였다.
이춘재에게는 '루틴'이 있었다. 이씨는 "저는 그거에 맞춰 움직였다. 루틴이 어긋나거나 뜻대로 안 되면 저한테 그냥 화풀이한다. 눈빛이 돌변하는 순간이 있다. 지금도 소름이 끼치는데, 그러면 절대 건들면 안 된다"면서 "지금도 정말 이해가 안 가는 건 문을 잠그는 것이었다. 잠깐 집 앞에 아이 데리고 외출하고 오면 아무리 두드리고 전화해도 절대 문을 안 열어준다. 열쇠공을 불러서 들어간다. '왜 문을 잠그냐'고 이유를 물어도 답이 없었다. 열쇠공이 드릴로 겨우 문을 열었는데 걸쇠가 딱 걸려 있다. 그걸 (이춘재가) 식탁에 가만히 앉아서 가만히 문을 쳐다보고 있다"며 이춘재의 이해할 수 없었던 과거 행동에 대해 털어놨다.
또 "(이춘재가) 이유 없이 저를 때리고 있었는데 아이가 자다 깨서 기저귀 바람으로 나왔다. 아이는 엄마가 맞고 있으니까 아빠를 말리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사람이 쳐서 아기가 떼구루루 굴렀다. 자기 자식을. 그걸 보고 어떤 엄마가 가만히 있나. 대들었다. 그러다 내가 주먹을 정면으로 맞았다. 그 와중에 병 주고 약 주더라. 멍 빨리 없어진다고 그 사람이 약도 사다 줬다"라고도 기억했다.
이춘재는 1986년부터 1994년까지 살인 15건, 강간 및 강간 미수 34건을 저질렀다. 하지만 이춘재는 공소시효 만료로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