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인사에서 승진한 주요 식품 기업의 오너 3세들이 신사업을 맡아 그룹의 미래 먹거리를 발굴한다. (왼쪽부터) 담서원 오리온 부사장, 전병우 삼양식품 전무, 신상열 농심 부사장. /사진=각 사

주요 식품 기업의 오너 3세들이 연말 인사에서 승진과 동시에 미래 먹거리 발굴을 진두지휘하는 보직을 맡았다. 성장이 정체되고 있다는 본업의 한계를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돌파하고, 독자적인 경영 능력을 입증함으로써 경영권 승계의 정당성을 확보하겠다는 의도로 분석된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오리온, 농심, 삼양식품 등 주요 식품 기업들은 최근 정기 임원인사를 통해 오너 3세를 승진시키고 신사업 담당 부문장으로 발탁했다.


오리온은 지난 22일 담서원 전무를 부사장으로 승진시키는 내용의 정기 임원인사를 발표했다. 담 부사장은 승진 이후 그룹의 중장기 경영전략 수립 등 미래사업을 총괄하는 전략경영본부를 이끌게 된다. 그는 담철곤 오리온 회장과 이화경 부회장의 장남이다.

업계에서는 담 부사장의 승진을 계기로 오리온이 식품 사업을 넘어 바이오 등 신성장동력을 본격적으로 키워나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오리온은 지난해 3월 리가켐바이오의 지분 25.73%를 인수하며 바이오사업에 진출했다. 지분 인수를 주도한 담 부사장은 리가켐바이오 사내이사로 선임돼 주요 경영 판단에 참여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삼양식품과 농심도 오너 3세를 바이오 등 신사업에 배치해 미래 먹거리 발굴 속도를 높이고 있다. 지난달 승진한 전병우 삼양식품 전무는 헬스케어BU(비즈니스 유닛)장으로서 신사업을 이끌고 있다. 전 전무는 2023년 10월 상무로 승진한 이후 바이오, 헬스케어 등에서 신사업 포트폴리오 확장 집중해 왔다. 최근 승진한 신상열 농심 부사장은 미래사업실장을 맡아 대체식품과 식품 기술, 신성장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중장기 성과' 필요한 신사업… 본업 한계 넘고 승계 시험대

이처럼 식품 기업들이 본업과 거리가 먼 분야에서 후계자들을 내세우는 것은 업계 전반에 부는 '바이오 확장'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주요 식품 기업들은 일찌감치 바이오를 장기적 성장 영역으로 점찍고 사업을 키워나가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올해 인사를 통해 바이오사업부문장이었던 윤석환 부사장을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하면서 바이오 부문 강화에 나섰다. 대상은 최근 독일 의약용 아미노산 전문기업 '아미노 유한회사'를 인수하며 글로벌 의약 바이오 시장에 진출했다.

식품업계가 체질 개선에 역량을 집중하는 이유는 본업이 가진 구조로 인한 성장 한계 때문이다. 내수 부진과 원가 부담으로 가격 인상 외에는 수익성을 개선할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헬스케어 등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영역 넓히며 중장기적인 성장을 이뤄나가려는 전략이다. 바이오는 기존의 식품 연구 과정에서 쌓아둔 노하우를 활용할 수 있고, 고령화 등으로 수요도 확대되고 있어 성장 잠재력이 큰 분야로 평가된다.
후계자들이 맡은 분야가 단기간 성과보다 긴 호흡의 연구개발을 통해 중장기적인 기업가치를 증대시키는 분야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성과가 가시화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후계자들의 전략 판단과 실행력을 평가하기에 적합한 영역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는 자연스럽게 경영권 승계 명분 확보로 이어진다. 선대가 일궈낸 식품 사업을 그대로 물려받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분야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내 "오너 일가라서 승진했다"는 비판을 불식시키고 승계의 근거를 확보해 지배구조를 탄탄히 굳히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업계 관계자는 "식품가 3세들이 본업의 안정성을 뒤로하고 고위험 전장에 직접 뛰어든 상황"이라며 "향후 도출될 실질적인 결과물이 경영권 승계 로드맵의 향방을 가르는 핵심 지표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