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AI 기본법이 세계 최초로 시행된 가운데 기준 모호성에 대한 업계 전반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진=챗GPT

세계 최초로 제정된 '인공지능(AI) 발전 및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이하 AI 기본법)'이 본격 시행됐다. 정부는 이번 법을 계기로 AI의 투명성과 신뢰도를 높이고 고위험 인공지능 시스템에 대한 관리체계를 구축하겠다는 복안이다. 업계 전반에서는 법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부재와 과도한 규제가 산업 경쟁력을 해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AI 기본법은 '투명성 강화'와 '고영향 AI 개념 도입'을 골자로 한다. AI 기본법의 핵심 조항 중 하나는 투명성 강화 의무 중 '생성형 AI 결과물의 표시'로 AI 사업자는 고영향 AI나 생성형 인공지능을 이용해 서비스를 제공할 때 해당 서비스가 AI 기반임을 이용자에게 사전에 고지해야 한다.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곳은 AI 기술을 적극 도입 중인 게임업계다. 지난해 스마일게이트의 신작 '카오스 제로 나이트메어'가 AI 제작 일러스트 의혹으로 이용자 반발을 샀던 사례가 있었던 만큼 워터마크 표시 의무화가 심리적 거부감을 증폭시킬 수 있다.

이철우 변호사(한국게임이용자협회 회장)는 "게임 산업이 법 제31조 제3항에서 규정한 예술·창의적 표현물 범주에 포함되기 때문에 게임의 몰입을 저해하지 않는 수준에서 AI 활용 사실을 알리는 방식으로도 충분하다"며 "이용자들이 AI 활용 자체에 보이는 심리적 반감을 완화하는 것이 현실적인 과제"라고 밝혔다.

구체적 기준의 모호성도 지적했다. 성수민 변호사(법무법인 한앤율)는 "AI 기술이 어느 수준까지 반영돼야 고지 의무가 생기는지도 명확하지 않아 창작 환경 위축 우려가 크다"며 게임·영화 등 콘텐츠 산업의 특수성을 감안해 표시 범위와 방식에 대한 세부 가이드라인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통신·게임업계는 법 취지에는 공감하나 '고영향 AI'의 분류 기준이 지나치게 추상적이라고 지적한다. 정부는 고영향 AI에 대해 의료·채용·교통 등 인공지능의 의사결정이 인간의 생명·안전·기본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AI로 정의한 바 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기업 입장에서 사업 불확실성을 완전히 해소하기 어렵다"며 "고영향 AI의 판단 기준이 추상적이라 사업 검토에 시간이 늘고 그만큼 신사업 추진 속도가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시행 초반이라 아직까지 모호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고영향 AI 규정에 대해서는 초거대 AI와 LLM을 운용하는 기업 입장에서 직접적인 부담"이라고 말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K- 팝 등 팬덤 기반 산업은 아티스트의 실존성을 핵심 가치로 두기 때문에 AI 활용에 보수적이고 현재는 실험적 단계에 머물러 있어 법적 규제의 영향권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주요 AI 기업들은 법 시행에 따른 '리스크 줄이기'에 나섰다. NC AI는 내부 거버넌스 체계와 메뉴얼을 정비하고 전담 조직을 신설해 내부 상담 창구를 운영한다. SK텔레콤은 생성형 AI 서비스 '에이닷'에 워터마크 표시와 사전 고지를 적용했으며 KT도 AI 기본법의 취지에 맞춰 AI 체계를 고도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AI 기반 산업 전환의 속도가 빨라지는 가운데 'AI 3대 강국' 진입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규제와 혁신 간 균형이 성패를 가를 전망이다. 문형남 숙명여대 융합국제학부 교수(한국AI교육협회 회장)는 "이번 법 제정은 AI 문명으로 가는 국가 선언"이라며 "입법 취지는 혁신적이지만 산업 진흥과 규제의 균형을 맞춘 정책 설계가 필수"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