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일본의 신생 인공지능(AI) 기업 하나가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일본 대표 소버린 AI 기업으로 꼽히는 사카나 AI가 대규모 시리즈B 투자를 유치한 것이다. 투자 규모는 약 200억엔(약 1860억원). 금액보다 더 눈길을 끈 것은 투자자 명단이었다. 여러 글로벌 금융사와 벤처캐피털 중 일본 최대 금융그룹인 미쓰비시 UFJ 금융그룹(MUFG)이 다시 이름을 올렸다.

MUFG는 2023년 사카나 AI의 시리즈A 투자에도 참여했다. 당시 계열 금융사들과 함께 약 300억엔 규모의 투자를 단행하며 일본 기업 중 최대 수준의 AI 스타트업 투자를 기록했다. 현재는 사카나, 주요 금융사와 금융 특화 AI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단순한 재무적투자자(FI)가 아니라 금융 AI 시장을 선점하고 AI주권을 확보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사카나 AI는 2023년 설립 이후 불과 1년 만에 기업가치가 뛰며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 반열에 올랐다. 일본 전통 미술인 우키요에(浮世絵) 화풍을 구현하는 생성형 AI 모델로 글로벌 시장의 주목을 받았고 '일본판 오픈AI'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생산적 금융의 성과와 결과를 보여줘야 합니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 21일 주재한 금융업권 생산적금융 협의체 회의에서 한 말이다. 회의는 금융지주, 은행, 증권, 보험사 담당 임원들이 한자리에 모인 자리였다. 부동산으로 쏠린 자금을 혁신 산업으로 돌리겠다는 생산적금융 취지를 이제는 말이 아닌 성과로 증명하라는 메시지다.

정부의 재촉에 은행권과 금융지주들은 분주하다. 주요 금융그룹들은 회장 직속 생산적금융 전담 조직을 신설하고 AI·플랫폼·스타트업 투자 전담 인력을 전면 배치했다. 신년사에서도 'AX(AI 전환)'와 생산적금융이 핵심 키워드로 반복 등장한다. 양종희 KB금융 회장은 "생산적금융을 통해 경제의 성장동력을 뒷받침 하겠다"며 혁신 스타트업 지원 의지를 분명히 했다.


하지만 아직 한국 금융권의 생산적금융은 총론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다. 대출 중심 지원을 넘어 어떤 분야에 어떻게 자본을 투입해 산업 경쟁력을 키울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청사진은 여전히 부족하다. 이 지점에서 일본 금융권의 소버린 AI 투자와 금융권 공동 솔루션 개발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소버린 AI는 특정 국가나 경제권이 자국의 언어·문화·데이터·규제 환경에 맞춰 독자적으로 구축·통제하는 AI 체계를 뜻한다. 데이터가 곧 경쟁력의 핵심인 미래 AI는 독자적인 데이터와 알고리즘 등을 확보하는 게 식량이나 안보 주권보다 중요한 국가적 과제가 될수 있다. 자금을 공급하고 금융 인프라를 책임지는 금융권은 미국과 중국 중심의 글로벌 AI 무한경쟁 시대의 최전선에 있다.

일본 대형 금융사들은 이런 현실을 무겁게 받아 들였다. AI를 단순한 비용 절감이나 업무 효율화 수단으로 보지 않는다. 금융을 국가 핵심 인프라의 하나로 인식하고 해외 AI모델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데이터 주권과 시스템 안정성 측면에서 리스크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다. 금융은 공공성이 강한 산업인 만큼 AI 역시 공공적인 관점에서 관리돼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된 배경이다.

이 논리는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대형 금융그룹은 민간 기업이지만 공적 자금 투입과 금융 안정이라는 사회적 책임을 동시에 지닌 존재다. 토종 금융그룹이 생산적금융 일환으로 소버린 AI에 투자하는 것은 단순한 신사업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에 가깝다.

금융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독자적인 AI 알고리즘을 확보하고 이를 산업 전반으로 확산시키는 역할을 주도적으로 할수 있다면 생산적금융과 국가 경쟁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생산적금융을 외치는 토종 대형 금융그룹이 소버린 AI에 얼마나 베팅 할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송정훈 미래산업부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