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에게 "노력하면 된다"는 말만큼 공허한 말이 없다. 스펙 경쟁을 부추기면서도 정작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신입 채용에서 경력을 요구하는 현실이다. 노력은 부질 없고 기회는 운이 됐다. "노력이 배신하는 사회"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바로 현실이다.
청년(15~29세) 체감실업률이 16%를 넘어섰다. 20대 비정규직 비중은 43%로 사상 최고 수준이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청년 일자리 문제는 '얼마나 많으냐'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버틸 수 있느냐'의 문제로 변질됐다. 한 번 미끄러지면 다시 올라갈 사다리가 없다. 실패는 곧 퇴장이다.
이 문 앞에서 정치권은 침묵했다. 기업은 비용을 이유로 첫 단추를 낄 기회를 외면했다. 정부는 "청년이 스스로 선택하라"는 말로 한 발 물러섰다. 결과는 뻔하다. 좌절은 분노로, 분노는 갈라치기로 번졌다. 정치 양극화와 혐오 확산은 청년의 일탈이 아니라 구조적 방치의 결과다.
해법을 찾아보자. 독일의 '듀얼 시스템'처럼 교육과 채용을 잇는 경로는 이미 여러 차례 검토됐다. 훈련은 직무로 이어지고 성과는 임금으로 연결된다. 반면 우리는 자격증과 인턴을 양산하면서도 채용 기준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이 간극을 방치한 책임은 분명하다. 산업 정책과 고용 정책을 따로 펼쳐온 정부다.
주거 문제는 더 심각하다. 중위가구 기준으로 서울에서 집 한 채를 마련하려면 소득을 한 푼도 쓰지 않고도 10~14년이 걸린다. 월세는 청년 임금의 40%를 잠식한다. 집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다. 미래를 설계할 최소한의 바탕이다. 그 토대를 청년에게서 걷어찬 사회가 희망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동안 정부는 '공급'을 말했다. 그러나 속도도, 체감도 없었다. 역세권 공공임대, 유휴건물 리모델링, 모듈러 주택 같은 대책은 보고서에만 머물렀다. 청년에게 요구한 인내에 비해 정책실행 속도는 늘 더뎠다. 그 사이 결혼과 출산은 꿈이 아닌 몽상이 됐다. 청년에게 월소득 대비 주거비 비중을 20%대로 낮추는 것을 정책 목표로 삼아야 한다. 네덜란드의 코리빙 모델은 참고할 만하다.
가장 큰 문제는 컨트롤타워의 부재다. 청년 정책은 고용부, 국토부, 교육부, 금융위로 흩어져 있다. 책임을 분산하면 결과가 나오지 않는 법이다. 누구도 실패에 책임지지 않는 구조에서 정책이 성공할 리 없다. 청년을 전담하는 조직도 없이 "청년을 살리겠다"는 말만 반복하는 건 공허한 선언에 불과하다. 이제는 통합과 집중의 구조가 필요하다.
청년 정책은 위로가 아니라 예측 가능성이어야 한다. 어느 길로 가도 바닥이 있다는 믿음, 실패해도 다시 설 수 있다는 안전망이 있어야 한다. 지금 청년에게 그런 보장은 없다. 선택은 자유지만 결과는 전적으로 개인 몫이다.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방치다.
청년이 사라지는 나라는 미래를 논할 자격이 없다.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대한민국은 고령사회가 아니라 '후계가 없는 사회'로 접어들게 된다. 청년을 살리는 일은 복지가 아니라 국가 생존 전략이다.
이제 선언이 아니라 책임을 질 시간이다. 첫 단추를 누가 잘못 끼웠는지 인정하고 누가 다시 끼울 것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청년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그 말에 진심이 있다면 국가는 지금 당장 행동으로 증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