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공필의 핀아크] '규제된 토큰화'로 펼쳐지는 금융의 미래
■ 디지털 전환의 가속화와 위험 관리본격적인 디지털 전환기를 맞이하여, 전통적으로 규제의 성역으로 여겨졌던 화폐 분야에도 거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기존 레거시(Legacy) 시스템의 불편함과 높은 비용을 줄이고, 더 많은 참여자에게 금융 접근을 허용하는 이러한 변화는 분명 전례 없는 혁신이다.더욱이 최근 AI가 모든 산업에 도입되면서 새롭게 펼쳐지는 영역에서는 '즉시 결제'에 대한 금융 수요가 폭발하고 있다. 이는 확장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보장해야 하므로 역량을 키우기 위한 체제적 변화와 혁신이 필수적이다. 특히 이러한 혁신이 모두에게 지속 가능한 혜택으로 돌아가려면, 잠재적 위험에 대한 대응 능력 또한 반드시 갖춰야 한다.문제는 블록체인과 같은 온체인(On-chain)이라는 새로운 영역에서 발생하는 복잡 다단한 연관과 관련된 위험은 기존의 방식으로는 관리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단편적인 프로세스의 효율성 개선을 넘어서 전체적인 맥락에서 어떤 위험과 연결되는지에 대한 깊은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결국 비전통 주체들이 이끄는 혁신을 수용하면서도 초연결 환경의 신뢰 기반을 다지려면, 스마트 규제와 가이드라인, 그리고 지배구조의 변화까지 아우르는 기존 레거시 체제의 변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스테이블코인의 한계와 '신뢰'의 문제최근 금융 생태계의 혁신으로 주목받는 '스테이블코인'은 기존 금융 시스템의 핵심 기반을 활용하여 지불 및 송금 분야에서 그 쓰임새를 넓히고 있다. 그러나 기존 핵심 담보 자산을 통해 유지되는 가치 고정(Pegging)이 유통 시장에서 종종 이탈하는 현상은, 만약의 사태에 대한 대응 여력의 한계를 반영한다. 활동 영역이 크게 넓어진 세상에서 기존의 안전 자산 풀(Pool)만으로는 시장의 신뢰를 지켜내기가 쉽지 않다. 특히 민간 스테이블코인의 리스크가 기존 금융 시스템과의 접점을 통해 역으로 파급될 경우, 최종적인 관리 주체가 누구이며 그 비용을 누가 부담할지조차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 문제이다.국경 없는 활동 영역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페깅을 유지하는 스테이블코인은 종종 관할 구역별로 분절된 규제 체계의 허점을 파고들기도 한다. 이는 규제가 허술한 곳을 찾아 이익을 취하는 '규제 차익(Regulatory Arbitrage)'을 활용해, '임시 방편적 유동성(Makeshift Liquidity)'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단기 해법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는 비기축 통화국의 경우, 통화 주권은 물론 통화 정책의 유효성까지 저하시킬 우려가 있다.이처럼 범세계적으로 만연한 규제 간극은 글로벌 차원의 금융 불안정성 원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따라서 혁신과 규제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미래 금융의 위험 관리는 단순히 중개인이나 개별 국가를 넘어선 범 시스템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개별적 대응을 넘어, 규제 차익을 줄이고 모든 참여자가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신뢰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그래야만 규제 사각지대에서 만들어진 위험이 역으로 제도권을 위협하는 상황을 차단할 수 있다.■ 규제된 토큰화와 기관용 디지털 화폐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글로벌 가이드라인으로서 국제금융안정기구(FSB)는 '동일 위험 동일 규제(Same risks, same regulation)' 원칙을, 세계경제포럼(WEF)은 '온체인 현금(On-chain cash)'을 해결 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다.도매형 CBDC(wCBDC)와 상업은행 예금을 기반으로 한 '예금 토큰(Deposit Token)'이 대표적이다. 그동안 보수적인 레거시 체제가 환경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했던 부분을 민간 스테이블코인이 메워왔다면, 이제는 보다 견조한 시스템으로 발전하기 위한 제도권의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예를 들어, BIS(국제결제은행)의 mBridge 프로젝트처럼 다국적 CBDC 시범이 글로벌 지불 시스템의 안정성을 높이고 있다.특히 최근 '자산 토큰화(Asset Tokenization)'는 글로벌 금융 시장의 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다. 특정 주체들이 주도하는 발전을 넘어, 모두가 참여하는 생태계 차원의 변화가 필요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미래 금융 생태계를 이끌어갈 주역은 초기 혁신의 가능성을 보여준 비규제 영역의 가상 자산이 아니라, 제도권 안에서 안전하게 통합·관리되는 디지털 자산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에서 전통 금융 기관은 '디지털 자산의 신뢰할 수 있는 관리자(Trusted Safekeepers)'로 진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혁신의 그림자: '결합성'의 양면성과 규제 간극하지만 혁신을 위한 과제는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금융 혁신의 핵심인 토큰화의 '결합성(Composability)'은 그 자체로 양날의 검이다. 마치 레고(LEGO) 블록을 조립하듯 다양한 기능을 결합해 전례 없는 금융 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잠재력은 막대하다. 하지만 이러한 결합성이 무분별하게 활용되면, 자산의 실체를 파악하기 어려운 디파이(DeFi) 프로토콜의 '무한 재포장'을 부추겨 금융 시스템의 불투명성을 오히려 키울 수 있다. 기술 혁신만을 과신하는 태도는 결국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시스템 리스크로 되돌아올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시스템과 규제 체계 자체가 기술 혁신의 중요한 축으로서 역할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레거시와 민간 화폐 수단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며 작동하는 시스템 구조를 설계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이러한 맥락에서 "규제된 토큰화"는 규제 차익을 관리하기 위한 첫 단추이다. 레거시와 혁신 주도 분야가 공동으로 생태계 차원의 위험 관리를 위해 업무를 분담해야 한다. 특히 wCBDC와 예금 토큰이 다층 구조의 차세대 결제 표준으로 자리 잡으려면, 기술 표준과 글로벌 규제 기준 사이의 간극을 메워야 한다. 즉, 혁신을 수용하되 규제 간극을 확대시키지 않으려면, 토큰화에 대한 글로벌 가이드라인이 원칙 합의 수준에서라도 준수되어야 한다.■ 협업적 거버넌스를 위한 규제 간극의 관리결국 균형 잡힌 생태계 조성을 위한 토큰화의 글로벌 표준이 다듬어지려면, 빠르게 진화하는 기술 표준과 파편화된 글로벌 규제 기준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일이 최우선 과제가 된다. 모든 것이 연결된 환경에서 과도한 규제는 혁신을 저해하고, 법규 준수가 생략되는 영역은 금융 시스템 전반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양한 참여자들의 개별 여건에 부합하는 '다층 구조의 거버넌스(Multi-tier governance)'를 설계하고, 민간과 당국이 역할을 나눠 협업하는 '규제된 토큰화'를 통해 조화로운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위험이 파악될 수 있는 혁신을 위해 각자의 여건에 맞는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전체적인 시스템의 안정성을 헤치지 말아야 한다.특히 대내외 충격에 민감한 비기축 통화국의 경우, 기존 외환 관리법 등 법 체계와의 정합성을 면밀히 따져 보며 국경 간 시장 진출에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자체적인 신뢰 기반, 즉 충격 흡수 능력이 제한된 상황에서 페깅 유지에 실패할 경우, 그 여파가 전반적인 시스템 위험으로 역류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변동성을 관리하기 위해 안전 자산 위주의 담보 나 더 강력한 준비 자산 풀(Pool)을 운용해야 하는 의존적 구조는, 실제 유지 비용을 감안하면 스테이블코인의 안정적인 수익 모델이 되기 어렵다. 따라서 새로운 방식으로 운영되는 송금·지불·결제 시장을 선점하려는 노력은 범세계적 규제 가이드라인과 시장 인식에 대한 공감대와 궤를 같이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한국은행의 CBDC 시범 사업처럼 제도권 내에서 디지털 원(KRW) 기반 토큰화를 테스트하며 글로벌 표준에 맞춰 나가는 접근이 바람직하다. 즉, 규제 간극을 관리하면서 누구나 신뢰할 수 있는 인프라와 명확한 규제가 뒷받침되는 '하이브리드 금융 시스템' 안에서 디지털 자산을 활용하는 것만이 금융 혁신의 확장성과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