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하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억지로 술을 마신다는 뜻. <맹자> ‘이루’ 상편에 나오는 한구절이다. 일본이 자랑한다는 석학 모로하시 데쓰지(諸橋轍次)는 이렇게 풀이한 바 있다. 그대로 옮긴다.
술주정꾼을 싫어하면서도 남에게 술을 무리하게 먹이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어질지 못한 것은 내 몸을 망친다. 내 몸이 망쳐지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어질지 못한 것을 좋아하는 것은 술주정꾼을 싫어하면서도 술을 강제로 마시게 하는 것과 똑같은 모순이다.
월급쟁이 중에는 자기의 몸이 망가지는 것을 알면서도 속칭 ‘술상무’ 노릇을 하려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이유는 뻔하다. 먹고 살기 위해서다. 하지만 술상무도 아무나 하진 못한다. 술을 잘 마셔야 하기 때문이다. 인정을 받으려면 말이다. 한국처럼 중국도 술상무가 있다. ‘대음(代飮)’이 그것이다. 대음이란 말 그대로다. ‘대신 술 마셔주는 사람’을 말한다.
어쨌든 술상무도, 대음도 마찬가지다. 내가 보기엔 그것도 ‘재주(術)’에 해당한다. 재주는 세상에서 하찮은 게 하나 없다. 다만 꾸준히 연습하지 않으면 내 재주가 열리고 성장하지 못한다. 안 팔린다. 그렇다. 연습은 잘 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잘 하는 게 중요하다. 그렇지 못하면 상대에게 인정을 못 받는다. 꽝이다. 어디 그뿐인가. 남이 심지어 나를 우습게 대한다. 하찮게 여긴다.
생각해보자. 술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는, 연습이 없이는 술상무도 비즈니스세계에서 보석처럼 빛나고 값어치가 오래갈 수 없을 것이다. 비싸게 팔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 법이다. 급기야 싸구려가 될 뿐이다. 그렇다. 문제는 이것이다. ‘강제로 내가 하려는 것’에서 길이 막힌다.
반면 해결의 기회는 ‘좋아서 내가 하려는 것’에서 길이 뚫린다. 이것이 사실 하수와 고수의 간발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재주는 하등 신분에서 오는 차이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사마천의 <史記>에는 재주와 관련된 재미난 일화가 나온다. 다음은 일화를 간추린 내용이다.
전국시대 제(齊)나라의 왕족인 맹상군(孟嘗君) 전문(全文)은 화려한 명성으로 인해 주변에 갖가지 재주 있는 식객이 많았다. 당시 전국의 통일에 야심을 품고 있었던 진(秦)나라의 소왕(昭王)은 맹상군을 자신의 재상으로 임명하고자 진나라로 초빙을 한다. 소왕의 부름 때문에 맹상군은 많은 식객들과 함께 진나라로 들어가게 됐다. 그리고 진상품으로 당시 최고의 보물이었던 여우의 겨드랑이 털로만 만든 갖옷인 호백구를 소지했다고 한다.
소왕을 알현하고 호백구를 진상하고 조정을 내려오자, 맹상군은 진나라 조정에서 타국의 귀족을 재상에 앉힐 수 없다는 반대여론에 부딪혔다. 이 때문에 여론은 맹상군을 살려 보낼 수 없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 소문을 접하고 위기를 모면할 방도를 찾다가 당시 진나라 소왕의 총애를 받던 애첩 행희(幸姬)에게 접근해 무사 귀환을 부탁한다. 하지만 행희는 조건으로 맹상군이 가져온 호백구를 요구한다. 맹상군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이 때 함께 온 식객 가운데 좀도둑질 하던 식객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나서서 왕실 창고에 있는 호백구를 가져오겠다고 했다. 그러고는 밤에 개 흉내를 내어 진나라 왕실 창고로 들어가 이미 바쳤던 호백구를 훔쳐서 행희에게 주니, 행희의 간청으로 맹상군 일행은 무사히 석방이 됏다고 한다.
그런데 위기는 또 기다리고 있었다. 일행이 왕궁을 빠져 나와 야반도주로 달려 진나라 국경 지역인 함곡관(函谷關)에 이르게 됐다. 당시 진나라 법에는 첫 닭이 울어야 함곡관의 문을 열어주게 돼 있어 아직 새벽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나라를 벗어날 수 없었다. 곧 진나라의 추격대가 닥칠 것 같았다. 이 때 마침 식객 가운데 성대모사를 잘하는 자가 나서 닭 울음소리를 흉내냈다. 그랬더니 주변의 닭들이 따라 울어 함곡관 관리가 문을 열었고, 맹상군 일행은 제나라로 무사귀환 할 수 있었다. (출처: <史記>, ‘맹상군열전’中)
![]() |
이른바 ‘계명구도(鷄鳴狗盜)’와 관련된 옛이야기다. 여기서 ‘좀도둑질 하던 식객’이 ‘개 흉내’를 내는 것이나 ‘닭 울음소리를 내는 식객’의 재주가 보통 수준이 아닌 것을 우리는 잘 알 수 있다. 게다가 당시에 남들이 하찮게 여겼던 재주를 당사자는 평상시에 홀대에도 불구하고 부지런히 갈고닦는 연습으로 재주를 키웠으리라, 상상이 되고도 남음이다. 베스트셀러 <아웃라이어>의 저자인 말콤 글래드웰 식으로 풀어서 말하자면 식객은 ‘1만시간의 법칙’을 이미 행동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참고로 1만시간의 법칙이란 자기 분야에서 ‘성공의 기회’를 잡기 위해서 매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3시간씩 연습한다고 가정했을 때, 무려 10년 세월을 기본 연습시간으로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식객은 오늘날 표현으로 아웃라이어(보통사람의 범위를 뛰어넘는 전문가를 말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고수高手’다)가 되는 셈이다.
재주가 비단 개 흉내이든, 닭 울음소리이든 당사자 자신이 그것을 좋아하지 않거나 관심을 가지고 사랑하는 분야가 아니라면 재주의 ‘가능성’은 씨앗도 땅에 뿌리지 못하고, 나무로 자라서 꽃으로도 피지 못하며, 아울러 열매도 맺지 못하는 법이다. 다만 ‘쓸 데가 없다’는 식으로 자기 분야의 재주를 아웃라이어 단계로 연습하지 않는 것에는 스스로 다짐하고 주의해야만 할 것이다.
고전평론가 고미숙는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사계절刊)에서 다음과 같이 이미 언급한 바 있다. 옮기자면 이렇다.
꺽정이가 한시대를 주름잡을 수 있었던 것은 엄청난 수련과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냥 타고난 힘과 재주만으로는 결코 무언가를 이룰 수 없다. 반드시 그 힘과 재주를 갈고 닦는 수행이 수반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어떤 예외가 없다.
하, 예리하고 빼어난 통찰력이다. 타고난 것만 가지고는 일류가 될 수 없다. 연습벌레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수행’은 다른 말로 하자면 ‘연습’이다. 극진 가라테 창시자 최배달 선생(崔永宜, 1922~1994)이 그래서 그랬던가. ‘단련(鍛鍊)’이란 “천일의 연습이 ‘단’이고, 만일의 연습이 ‘연’이다”라고….
그렇다. 아웃라이어가 됐든, 아니면 달인이 됐든 간에 “이것저것 대충 해선 안 되고 관문 하나를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는 고미숙의 지론은 맞는 얘기다. 따라서 ‘대충’하면 재주도 그렇고 비즈니스도 그렇고 술술 풀릴 수 없다. 이왕 취하는 것, 억지로 마시지 말자. 기분 좋아지는 사람과 만나든지, 아니면 상대를 기분 좋게 만들던지 해야지만 ‘관문’ 하나를 통과하게 되는 게 아니던가. 이왕 내친 김에 술상무가 아니라 술전무, 술사장, 술회장까지 가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