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소득의 이면에 해당하는 소비에서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명목소비지출은 작년 동기보다 불과 1.0% 증가한 월평균 246만7000원으로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실질소비는 오히려 0.7% 감소했다. 이러한 소비지출 증가율은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1분기 이래 가장 낮은 수치다.
처분가능소득에서 소비지출이 차지하는 비율인 평균소비성향은 역대 최저치를 경신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경제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금융위기 이전보다 높은 위치로 올라섰고 평균 가계소득도 증가했지만 여러 매체에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언급하자 부자계층까지도 지갑을 닫고 있다.
소득은 증가하고 소비는 감소한 덕분에 저축능력은 9년 만에 최고로 올라섰고 계층별 소득격차가 개선됐다는 점은 위안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소득계층별 소비에서 교육비 격차가 심한 것은 한국만의 특징이다.
올해 2월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이 발표한 '한국사회지표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전국 2인 이상 가구에서 월평균 소비지출액 중 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위 20% 계층'의 경우 15.1%로, '하위 20% 계층'의 7.4%보다 두배 이상 많았다. 교육비 지출액 규모는 소득상위 20%가 하위 20%의 6.3배에 달했다. 2003년에 5배 이하였던 격차가 계속 높아진 것이다.
소득이 높지 않으면서도 자녀교육에 적게 투자하면 자녀의 미래가 걱정된다고 보는 가정에서는 소득 대비 교육비 비중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도시 가계의 총지출액 중 교육비 비중은 ▲1982년 7.2% ▲1995년 10.2% ▲2010년 13.3%로 계속 높아졌다. 가정형편상 자녀에게 사교육을 시키기 힘든 가정일지라도 자녀를 학원에 보내고, 소득에 비해 대학등록금 부담이 큰 가정에서도 자녀를 대학에 보내는 비율이 늘어 대학진학률이 세계 최고수준이 됐다.
해외유학비는 가계 지출 증가율의 4배 가까운 속도로 빠르게 증가했다. 명목 기준 가계지출이 1993년부터 2010년까지 4배 늘어났는데, 유학연수비 지급액은 3억달러에서 44억8000만달러로 15배가량 늘어났다(한은 국제수지통계).
자녀를 해외로 유학 보내는 분위기가 확산되다보니 총체적인 교육비 비중이 늘고 있다. 중견배우인 성동일씨도 지난 11월19일 영화 <가문의 귀환-가문의 영광5> 제작보고회에서 배우로 살아가는 고충을 전하면서 "나는 목표하는 재산이 될 때까지는 시키면 할 것이다. 최소한 아이들을 유럽이나 미국은 아니더라도 동남아로 유학을 보낼 정도의 재산은 모아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 |
사진_뉴스1 박지혜 기자
◆에듀푸어, 교육비 비중 높아 가계적자 불가피
근래 들어서는 교육비를 무리하게 늘려서 가정경제가 힘들어지는 '에듀푸어'까지 생겨났다. 초등학생 부모를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는 절반 이상인 56.6%가 스스로를 에듀푸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윤선생영어교실, 2012년 11월20일).
'자녀교육비를 충당하기 위해 빚내본 경험이 있다'고 답한 사람의 비율도 19.8%에 달했다. '에듀푸어'를 주관적 판단이 아니라 '부채가 있고 소득보다 지출이 많은 상태임에도 평균보다 많은 교육비를 지출해 빈곤하게 사는 가구'로 정의한다면 2011년 기준 82만4000가구, 305만명이 에듀푸어인 것으로 추정된다(현대경제연구원, '국내 가구의 교육비 지출 구조 분석').
이는 자녀교육비 지출이 있는 것으로 조사된 632만가구 중 13%에 해당하며, 연령별로는 40대가 가장 많았다. 에듀푸어인 가구는 월평균 소득이 313만원으로 전체 가구의 평균소득보다 120만원이나 더 적음에도 교육비 지출이 평균보다 더 많았다.
또 중·고등학생 자녀가 있는 가구의 경우 해당 가구 전체의 사교육비 지출규모는 월 48만5000원인 반면 에듀푸어인 가구는 이보다 21만원 더 많은 69만5000원에 달했다. 유치원·초등학생 자녀가 있는 가구에서도 전체 평균 사교육비가 25만6000원인데 비해 에듀푸어인 가구는 50만8000원으로 두배나 많았다.
이들의 소득 대비 교육비 비중은 전체 가구 평균(18.1%)보다 훨씬 많은 28.5%로 나타났는데, 소득 대비 의식주 관련 지출 비중은 전체 가구 평균(32.8%)보다 적은 29.4%로 파악됐다. 이들 가구의 경우 가계수지 적자가 불가피한 셈이다. 이들 가구는 한달 수입보다 많은 381만5000원을 지출해 매월 68만5000원의 적자를 나타냈다.
가계부채도 전체 가구 평균보다 더 많고 대출이자도 더 많이 지불했다. 자녀의 사교육비를 대느라 다른 소비를 줄이는 심리가 강화되는 것은 소득이 증가함에도 소비 감소가 야기되는 또 하나의 원인이 된다.
영국 출신의 방송인 에바도 MBC TV <기분 좋은 날>(11월 29일 방송)에서 "한국 부모들은 아이에게 너무 많은 투자를 한다. 교육비 등 돈을 많이 쓰는 것 같다. 그만큼 부모가 돌려받아야 한다는 말이 지금에서야 이해가 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평균 이상의 교육비 지출로 에듀푸어가 되는 가정이 빚까지 내서 교육비를 조달하는 것이 학력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인지, 무리하는 것인지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과도한 교육비 지출로 생활이 빈곤해진 것에 대한 보상을 나중에 충분히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일률적인 판단은 곤란하다. 스스로 공부하려는 동기가 불투명하고 의지가 약한 아이라면 사교육을 시켰을 때 나타나는 성과도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학원에서 열심히 공부하는지, 아이들과 노닥거리는 재미로 학원에 가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부모도 많다. 때로는 사교육을 안 시키면 불안하기 때문에 학원이라도 보내서 위안 받으려는 부모의 심리가 작용하기도 한다.
공부할 의지만 있다면 비싼 사교육을 받지 않고 참고서, EBS, 인터넷 등을 잘 활용해도 된다. 실제로 그런 아이들이 많다. 각자의 실력과 취향에 맞게 잘 만들어진 참고서들이 많은 만큼 자신에게 맞는 참고서를 골라 보기에 용이하다. 사이버 강의도 일반학원의 강의에 비해 더 훌륭한 강의가 제공되기도 한다.
반면 의지가 약한 아이들은 사교육 의존도가 높아도 잘 집중하지 못해 비용 대비 성과가 낮을 수밖에 없다.
◆에듀푸어 된 보람, 느낄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
잘 산다는 의미에는 돈을 잘 버는 것뿐만 아니라 돈을 잘 쓰는 것도 포함된다. 돈 쓰는 효율이 낮은 것은 돈을 잘못 쓰는 것이다. 어떤 투자든지 투자금액 대비 얻어지는 성과로 투자효율성을 판단해야 하며, 그에 따라 투자여부를 결정하고 투자금액을 조절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자녀교육에 대한 투자도 비효율적일수록 나중에 돌아오는 성과는 미약해진다. 성과에 관계없이 무조건 사교육비를 많이 들이면 그렇게 될 확률이 높다. 일단 최소한의 사교육을 시켜본 후 그 성과가 뚜렷이 나타나면 그에 따라 추가로 사교육비를 늘리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부모가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자신의 미래를 위해 사교육비를 지출하는 것을 아이가 당연하게 여기는지, 고맙다고 느끼는지도 살펴봐야 할 부분이다. 자식이 부모의 희생에 대한 고마움을 안다면 부모가 대주는 사교육비를 헛되게 하지 않으려 노력할 것이다.
또한 고마운 것을 고마운 것으로 느끼는 것은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한 덕목이 되기도 한다. 혼자 잘나서 성공하고 잘 살게 되는게 아니라 성공에 도달하려면 횡적으로나 종적으로나 협동을 필요로 한다. 고마움을 잘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과는 협력을 꺼리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부모의 일방적인 경제적 희생을 바탕으로 대학에 들어가면 대학에서 공부하고 능력을 쌓는 것에 소홀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부모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느끼면 입학한 후 공부를 열심히 해 장학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각 대학마다 성적에 따라 전액장학금부터 부분장학금까지 다양하게 있다. 등록금은 장학금으로 대체하면서 시간을 쪼개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버는 대학생들도 많다. 방학 때는 집중적으로 일해 학비를 버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자식의 입을 벌려 먹을 것을 떠먹여 주려 하기보다는 스스로 먹을 것을 찾을 수 있도록 키우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그런 자세일 때 사교육을 시키면 효과가 많이 나타난다.
부모 자신의 미래를 내다보고 에듀푸어까지 되는 것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 생각해보자. 예전에는 논 팔고 소 팔아서 자식을 공부시키면 그 자식이 부모의 노후를 책임지는 풍토가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그러한 사고방식을 가진 청년들이 상당히 줄어들었다. 올해 5월 말 전국 24~59세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무엇을 기대하고 자녀에게 투자하느냐'는 질문에 '투자를 하지만 대가를 바라지는 않는다'는 응답이 38%로 가장 많았다(신한은행 고객 조사).
그러나 은퇴준비의 장애요인으로는 자녀교육비를 꼽은 사람이 22%로 가장 많았다. 자녀교육비에 자녀결혼자금까지 합하면 36%로, 자식에 대한 후원 때문에 노후준비가 제대로 안 된 사람이 가장 많았다. 자녀에게 바라지 않는 만큼 자신의 노후를 스스로 책임질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모순에 빠지는 것이다.
일반저축과 노후를 위한 연금에 충분히 돈을 넣지 못하면서도 자녀교육에는 무리할 정도로 투자해 에듀푸어 된 보람이 나중에 얻어질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 한다. "형편을 넘어서까지 자녀교육에 투자하는 부모보다는 늙어서 자녀에게 손 벌리지 않는 부모가 훨씬 더 좋은 부모"라는 말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5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