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전성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지난해 2분기에 영업손실 21억원을 기록하면서 다시 부진한 실적을 토해냈다. 포화상태에 이른 브랜드숍 간의 치열한 할인경쟁이 실적 악화의 원흉으로 지목됐다. 당기순손실은 2억원으로 집계돼,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 모두 적자로 돌아섰다. 영업이익 기준 적자는 2007년 4분기 이후 5년여 만에 처음이었다. 서 회장이 실적 개선 의지를 불태운 것도 잠시. 올 1분기 역시 39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같은 기간 매출액은 966억원으로 0.4% 감소했고, 당기순손실은 27억원에 달했다. 향후 전망 역시 밝지 않다는 게 업계 중론. ‘서영필표 미샤’는 6년6개월 만에 다시 한번 존폐 기로에 섰다.
‘미샤’를 이끄는 서영필 에이블씨엔씨 회장이 흔들리고 있다. 매출 하락은 물론 경쟁 브랜드와의 각축전에서 밀리며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는 것. 초저가 화장품을 국내시장에 내놓으면서 업계 ‘미다스손’으로 불리며 ‘브랜드숍 신화’를 새로 써온 서 회장의 자존심에도 금이 갔다.
◆ 이랜드그룹에 인수되나
한때 ‘미샤 열풍’은 대단했다. 서 회장은 지난 2000년 처음으로 특정 회사 제품만 판매하는 브랜드숍 매장인 ‘미샤’를 선보였다. 더불어 저가 브랜드시장을 열었다. 화장품이 비싼 것은 마케팅비용과 제품 용기 탓이라며 ‘화장품 한개에 3300원’이란 혁신적인 가격대를 선보였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창업 4년만에 매출 1000억원을 돌파하는 기쁨을 맛봤다. 2011년에는 LG생활건강의 브랜드숍 ‘더페이스샵’을 제치고 7년 만에 업계 1위를 탈환하는 등 성장가도를 달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서 회장은 미샤를 따라 잡으려는 중저가 브랜드들의 과열 마케팅과 출혈 경쟁에 맞서야 했다.
경쟁 브랜드의 공세에 히트상품 등 이렇다 할 반격카드가 없던 미샤는 추락에 추락을 거듭했다. 지난해 ‘더페이스샵’에 밀려 브랜드숍 매출 2위로 뒷걸음질 치더니 지난 1분기에는 아모레퍼시픽의 ‘이니스프리’에 2위 자리까지 내주면서 3위로 밀려났다.
경쟁사인 더페이스샵과 줄곧 양강체제를 이어오던 업계 선두 주자가 3위로 떨어진 것은 지난 2000년 브랜드 론칭 이후 처음 있는 일. 2분기 실적 역시 낙관하기 힘들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아모레퍼시픽의 또 다른 브랜드숍인 ‘에뛰드’ 역시 내실을 기하며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어 미샤를 뛰어 넘을 수 있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영업 악화로 앞날이 불투명해지자 급기야 미샤가 시장에 매물로 나올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미샤의 피인수자로 지목된 곳은 이랜드그룹. IB업계를 통해 전해진 바에 따르면 이랜드가 회계 법인에 에이블씨엔씨 인수를 위한 기업 실사를 요청해 관련 작업이 진행 중이다.
이번 실사는 에이블씨엔씨의 의사와 별개로 검토되는 것으로 양측 모두 ‘인수설’을 부인했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재무적 뒷받침이 아쉬운 미샤와 패션 등에 강력한 유통망을 갖고 있는 이랜드의 특성상 충분히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로 보고 있다.
◆ 업계에 박힌 미운털 한 몫
물론 지금의 미샤를 일군 서 회장이 쉽게 회사를 넘기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우세하다. 그는 평범한 샐러리맨 출신으로 피죤 중앙연구소에 입사해 4년여간 화장품을 연구한 뒤 ‘화장품 인생’을 일군 뷰티업계 스타다.
겉은 화려했지만 그는 업계 내 ‘미운 오리’로 통한다. 업계의 ‘관행’을 자꾸 어겨 지금의 경쟁 위기를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와서다. 서 회장이 처음 도입한 '세일' 트렌드만 놓고 봐도 다른 브랜드숍들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세일행사에 동참하고 있다.
실제 미샤는 연간 ‘빅세일’이 거의 한달 내내 이뤄지는데다 매달 ‘미샤 데이’를 진행해 매일 세일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 회장이 본인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판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때때로 서 회장은 상대를 향한 ‘비방’이나 ‘험담’ 등 기업 최고경영자로서 상도의에 걸맞지 않은 내용들까지 자신의 SNS에 올리며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 미샤가 서울시 지하철 1∼4호선에서 철수키로 했다는 보도에 대해 “악의적 소설”이라고 비판한 것이 대표적인 일화다.
경쟁사에 거침없는 ‘돌직구’를 날리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경쟁사 대표를 부도덕한 인물로 몰아세우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려 파문이 일기도 했고, ‘더이상 수입화장품에 의존하지 않도록’이라는 문구를 내세운 비교 마케팅도 논란거리가 됐다.
서 회장의 이런 행보가 미샤와 업계가 등을 돌리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평도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대부분의 CEO가 괜한 입방아에 오를까봐 SNS를 멀리하는 것과 달리 서 회장은 업계 ‘트러블 메이커’, ‘페이스북 싸움닭’을 자처했다”며 “많은 사람들이 이를 수습하기 위해 애를 먹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차마 남들은 하지 못했던 수위의 비교 마케팅까지 구사하면서 논란과 이슈를 만들어왔던 서 회장. 그는 여전히 ‘파괴적 혁신자’와 ‘상도의를 무시하는 경영자’라는 엇갈린 세간의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영화같은 성공 스토리는 과연 여기에서 마침표를 찍게 되는 것일까. 미샤의 운명에 화장품업계가 예의주시하고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4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