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대 항공사인 대한항공은 오너가(家) 장녀 조현아(40)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논란으로 지난 1969년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역시 편치만은 않다. 지난해 7월 발생한 미국 샌프란시스코공항 불시착 사고로 인한 후폭풍이 올해도 거셌기 때문이다. 대한항공과는 견원지간(犬猿之間)처럼 치고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나마 청마해 하늘길을 활짝 열어젖힌 곳은 저비용항공사(LCC)들이다. 국내 LCC들은 국내·외 승객 점유율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항공 화물사업에 진출해 새로운 먹거리를 확보하며 수익을 늘리는 등 안정적인 한해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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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대한항공 |
◆ ‘땅콩 회항’ 딸 갑질에 오너체제 ‘흔들’
뭐니뭐니 해도 올 한해 항공업계 최대 이슈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이다. 이 때문에 대한항공은 15년 만에 오너체제 위기를 맞고 있다. 대한항공 측은 조양호(65) 회장의 사과와 조 전 부사장의 사퇴·사과로 여론이 가라앉기를 바라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 일각에서는 15년 전 창업주 고 조중훈 회장이 퇴진했던 위기 상황까지 거론된다.
대한항공은 1997년 225명이 숨진 괌 추락사고, 1999년 9명이 숨진 상하이 화물기 추락사고 등을 잇달아 겪었다. 상하이 추락사고 직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대한항공 지배체제를 비판하자 조중훈 회장은 회장직을 사퇴했다. 조양호 당시 사장도 사장직에서 물러나 대외업무만 하는 회장직을 맡았다. 이후 조양호 회장은 조세포탈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창사 이후 최대 위기였지만 이를 계기로 대한항공은 지난 2000년대 들어 안전과 서비스를 강화하며 사업을 확대하는 데 사력을 쏟았다.
이를 통해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오며 1등 항공사의 면모를 과시하던 대한항공이 최근 위기론에 직면한 것은 이번 사태가 우발적인 사고가 아니라 대한항공 오너 일가의 고질적인 전횡과 지배구조 탓이라는 시각이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초고속 승진을 거듭해온 대한항공 3세들의 후계 구도 변화도 불가피하다. 대한항공은 조 전 부사장이 호텔사업을, 둘째인 조원태(39) 대한항공 부사장이 대한항공을, 막내딸인 조현민(31) 대한항공 전무가 진에어 등 저비용 항공사업을 담당하는 구조였다. 그러나 조 전 부사장이 대한항공 주요 보직뿐 아니라 호텔사업본부 총괄부사장 등 모든 보직에서 사퇴함으로써 이러한 후계 구도가 깨져버렸다. 이번 사태로 조 전 부사장은 태어날 때부터 입에 물었던 금수저를 뱉어야 하는 상황. 땅콩으로 자신의 발등을 찍은 조 전 부사장 사례는 자식 교육의 중요성을 세간에 상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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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머니투데이DB |
◆ 대한항공-아시아나 '진흙탕 싸움'
국내 항공업계 1,2위 업체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진흙탕 싸움도 가관이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 발생한 미국 샌프란시스코공항 착륙사고의 행정처분 수위를 놓고 정면충돌했다. 대한항공이 국토교통부에 ‘운항정지’ 등 강력한 제재를 촉구하자 사고를 낸 아시아나항공이 이를 반박하고 나서면서 감정싸움이 빚어졌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샌프란시스코 사고 행정처분 관련 입장’이라는 자료까지 언론에 돌리며 “귀중한 인명이 희생된 항공기사고에 대해 여론몰이식의 책임회피 행태를 우려한다”고 밝혔다.
아시아나는 정부의 노선 배분이 지금까지 원칙에 맞게 적용된 만큼 이번에도 현행 규정을 따라야 한다고 맞섰다. 아시아나 관계자는 "대한항공 괌사고는 사고조사 결과가 발표된 1999년 11월 이후 1년간 제재가 가해졌고 같은 해 12월 런던 화물기사고는 바뀐 규정에 따라 사고 발생 즉시 6개월 운수권 배분을 제한받은 것"이라며 "이번에 아시아나에 제재를 가하라는 대한항공의 주장은 정부에 원칙과 신뢰성을 포기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반박했다.
대한항공이 성명서까지 발표하며 아시아나항공의 ‘엄정한 행정처분’을 촉구하는 것은 지난 1997년 괌 추락 사고 이후 자신들이 받았던 행정처분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잇따른 항공사고로 1999년 말부터 2001년 5월까지 운항정지 처분을 받았다. 국제선 신규노선 배분 등에서도 제재를 받았다.
결국 오래 전부터 양사에 쌓인 감정이 올해 아시아나항공의 행정처분 수위를 놓고 충돌하게 된 것이다. 같은 밥을 나눠먹는 처지인 두 회사의 웃지 못할 싸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씁쓸하게 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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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제주항공 |
◆ 저가항공 '파죽지세'… 대형항공사 앞섰다
이렇듯 국내 대형항공사들이 서로 헐뜯고 자신의 발등을 찍는 사이 저비용항공사들은 국내선은 물론이고 국제선까지 저변을 확대하며 사업확장에 날개를 달았다.
항공업계에 따르면 제주항공의 올 초부터 8월까지 인천-방콕(홍콩)노선 시장점유율(유임승객 기준)은 12.4%로 나타났다. 이는 아시아나항공의 시장점유율 11.2%를 앞선 수치다. 제주항공이 2009년 인천-방콕노선에 취항한 이래 5년 만에 대형항공사를 추격한 것이다. 제주항공은 내년께 대한항공의 시장점유율 20.7%도 넘어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인천-세부(필리핀)노선에서도 역전현상이 나타났다. 올 초부터 11월까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시장점유율은 31.2%로 LCC의 시장점유율 28.6%보다 앞선다. 하지만 항공사별로는 제주항공의 시장점유율이 17%로 대한항공(15%)과 아시아나항공(16.2%)보다 높다.
부산-오사카(일본)노선에서는 에어부산이 43.4%의 시장을 점유하면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대형항공사의 점유율(34.6%)을 앞선 상태다.
영원할 것 같았던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하늘길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6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