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통의 동국대학교가 시끄럽다. ‘총장 리스크’ 때문이다. 최근 논문표절 의혹을 받은 보광스님(한태식 교수)이 제18대 총장에 선출되자 학내 퇴진움직임이 거세다. 학생과 교수는 물론, 동문과 시민단체까지 퇴진시위에 가담했다. 특히 논문표절보다는 대한불교 종단(조계종)의 외압의혹에 포커스가 맞춰지면서 '동국대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 |
대학원 총학생회장이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동국대 만해광장 조명탑. /사진=머니위크DB |
◆ 삭발, 삼천배, 목숨건 ‘조명탑 농성’…
“표절총장, 외압총장 반대!”
현재 동국대 만해광장 조명탑에는 총장 퇴진을 요구한 최장훈 일반대학원 총학생회장이 목숨을 담보로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다. 지난 3일 기준으로 시위 44일째. 최 회장은 지난 4월21일 총장 재선거와 종단개입 중지를 요구하며 15m 높이의 조명탑에 올라간 후 한차례도 땅을 밟지 않았다. 총장이 퇴진할 때까지 1㎡ 남짓한 곳에서 투쟁을 계속하겠다는 게 최 회장의 의지.
조명탑 아래에선 5월21일부터 동국대 불교학과 졸업생인 김영국씨(81학번)가 단식농성을 벌이며 최 회장에 힘을 보탰다. 김씨는 “종단의 갑질 횡포와 사학재단의 비리로 학생들의 인권이 무시되고 있다”며 “동국대 구성원의 존경을 받는 총장이 새로 선출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앞서 3월11일 ‘동국대학교의 정상화를 위한 범동국인 비상대책위원회’가 발족됐고 5월27일에는 총장 퇴진 요구와 2학기 등록거부 서명운동(현재 1000여명 동참)을 호소하며 김건중 학부 부총학생회장이 삭발을, 최광백 학부 총학생회장은 3000배를 올리며 시위에 불을 지폈다.
교수들의 동참도 이어졌다. 교수협의회 비대위 소속 교수들은 지난 4월21일부터 릴레이 단식농성에 돌입했고 “학생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고 싶다”며 천막교실을 만들어 야외수업을 진행 중이다.
시민단체들도 동국대 사태에 개입했다. 애국국민운동대연합 등 시민단체는 지난 3월13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 정문 앞에서 '조계종 동국대 개입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총장선임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이사장인 일면스님의 퇴진을 요구했다.
한편 취재 직후 최장훈 대학원 총학생 회장과 김영국씨는 6월4일부로 각각 고공농성과 단식농성을 해제했고, 교수협 비대위의 천막교실도 6월8일부로 해제됐다.
◆ 조계종 총무원장 "이번 총장은 보광스님이"
이번 동국대의 내홍은 앞서 언급했듯 총장 선임 과정에서 종단이 외압을 가했다는 논란에서 비롯됐다.
동국대는 지난해 12월4일 총장 선출을 위한 선거를 진행하면서 총장후보자추천위원회를 통해 후보 3명을 추려냈다. 김희옥 전 총장과 조의연 교수, 보광스님이 그들. 그러나 이들 중 보광스님을 제외한 나머지 두 후보자들이 잇따라 사퇴했고 그 배경에 종단의 개입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일명 ‘코리아나 회동’ 사건이다.
총학생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11일 조계종 총무원장인 자승스님은 김 전 총장, 보광스님, 그리고 조계종 고위승려 4인(일면스님 포함), 정련 전 이사장과 함께 코리아나호텔에서 점심회동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그는 “이번에는 보광스님이 총장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입장을 전달했고 나머지 고위 승려들도 이에 동조했다. 이후 김 전 총장은 같은날 오후 총장후보를 사퇴했고 사흘 뒤인 12월14일에는 조의연 후보도 “종단개입으로 얼룩진 총장 선거를 재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사퇴했다. 즉, 종단 측이 보광스님이 총장이 되도록 타 후보에게 사퇴 압력을 가했다는 게 총학생회의 주장이다.
총학생회 관계자는 “종단은 원칙적으로 학교의 운영에 개입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데도 총무원장이 총장할 사람을 낙점하고 다른 후보자의 사퇴를 종용했다”며 “이는 평소에 총무원이 본교 구성원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학교 측은 “(종단 개입문제는) 해석하기 나름"이라며 ”코리아나 회동과 같은 자리가 없었더라도 이사회에서 3명의 최종후보자 중 1명을 선출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해명했다.
◆ 논문 20편 표절 의혹 속 총장 취임
종단 외압과 함께 시위대가 총장 퇴진의 명분으로 삼는 것은 논문표절이다. 동국대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지난 1월 ‘인터넷 포교의 중요성에 관한 연구’ 등 지난 2010년에 나온 보광스님의 논문 2편을 표절로 결론내렸고 2월에는 표절 의혹이 불거진 다른 논문 28편 중 18편을 표절로 인정했다. 이어 4월 윤리위가 보광스님에 대한 징계위회부안건을 이사회에 올렸지만 동국대 이사회는 5월3일 보광스님을 총장으로 선임해 갈등을 부추겼다.
교수 비대위 측은 총장 선임 직후 “보광스님의 논문은 각주까지 베낀 '복사 논문'"이라고 간주하고 "거의 같은 논문을 등재후보지와 일반논문집에 중복해서 실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보광스님은 "논문 표절 조사 과정이 편파적이었다"며 표절 의혹에 대해 부정하고 있는 상황. 학교 측도 “취임식(6월11일)이 지나면 적절한 시기에 포괄적인 입장을 표명할 것"이라며 "논문표절과 관련해서도 재심의 중"이라고 말을 아꼈다.
‘동국대 사태’의 장본인은 보광스님이지만 총장 선임과정에서 이사회를 구성하는 일부 스님(이사)들의 도덕성과 자격 시비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 동국대의 총장 선출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곳은 이사회다. 이사회는 이사장과 이사(8명), 감사(2인) 등 총 11명으로 구성되는데 이 중 재직승려가 7명이다. 학생회와 교수 등은 이들 가운데 심경스님, 일면스님, 삼보스님의 도덕성을 문제삼았다.
이사이자 조계종 총무원 사서실장(비서실장 격)인 심경스님은 지난 1986년 간통죄로 구속된 적이 있었으나 합의를 통해 풀려났고 종단의 징계까지 받았다. 이사장인 일면스님은 과거 주지승으로 있던 사찰의 탱화 2점을 매각해 문화재 도굴 혐의를 받았고, 삼보스님은 강원도 삼척에 단란주점과 모텔을 함께 운영하는 건물 소유자로 밝혀져 논란이 됐다.
총학생회 측은 “비도덕적인 이사들이 선거과정에서 보광스님을 지지했다는 것은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며 “이러한 추문이 사실일 경우 총장 재선출 문제보다는 이사회의 구성원 자격에 대한 재검토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8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