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이 2차 서울시내 면세점사업에 뛰어들었다. 이로써 2차 시내 면세점 경쟁은 두산과 SK, 롯데, 신세계 등 4파전이 예상된다. 판이 커진 면세점 사업권 쟁탈전에서 누가 승기를 잡을지 예측하기 쉽지 않다.

두산이 면세점사업에 뛰어든 것은 사업 다각화를 위한 조치다. 1950년대 초 맥주사업과 무역업으로 성장가도를 달린 두산은 1960~1990년대엔 식음료와 기계, 소재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했다. 이후 창립 100주년을 맞은 1996년을 기점으로 소비재에서 중공업 위주로 사업을 전환했다.


하지만 글로벌 악재와 부동산시장 침체로 두산중공업, 두산인라코어, 두산건설 등 주력 계열사들의 수익성은 지속적으로 내리막을 탔다. 그룹 실적의 척도가 되는 두산중공업도 상황이 녹록지 않다. 두산중공업의 올해 상반기 매출액은 전년 대비 6.10% 감소한 8조2283억원, 영업이익은 무려 21.7% 줄어든 3809억원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당기순손실은 1140억원으로 전년 대비 적자전환했다.

두산그룹은 지주회사인 ㈜두산이 두산중공업, 두산타워 등의 지분을 직접 보유하고 두산중공업을 통해 두산인프라코어, 두산건설, 두산엔진 등의 계열사를 지배하는 구조다. 즉 두산중공업의 재무안정성이 그룹 전체의 신인도를 결정하는 셈.

이런 상황에서 현금창출력을 보여주는 '법인세·이자·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EBITDA)도 급감하고 있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두산그룹의 연결재무제표상 EBITDA는 지난 2010년 2조9000억원 수준에서 지난해 9월 말 현재 1조4000억원으로 반토막났다.


현금부족도 이번 면세점 입찰에 참여한 배경으로 꼽힌다. 두산은 중공업과 건설 등 영업 특성상 영업이익을 바로 현금화하기 힘든 구조다. 두산그룹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현재 영업이익은 4393억원이지만 현금흐름표상 영업현금 창출력은 마이너스(-) 6200억원이다. 물건은 팔았지만 현금 유입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의미다. 결국 면세점을 통한 현금확보로 안정적 재무구조를 만들겠다는 게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의 의지인 것으로 풀이된다.


/사진=뉴시스 배훈식 기자
/사진=뉴시스 배훈식 기자
두산타워. /사진=머니위크 DB
두산타워. /사진=머니위크 DB

◆두산 사업다각화 성공할까
오는 11~12월 만료되는 서울시내 면세점은 롯데면세점 소공동과 롯데월드점, 광장동 워커힐면세점 등 3곳이다. 특허신청은 오는 25일까지다. 관세청은 11월에 특허심사위원회를 열어 사업자를 선정할 예정이다.

두산이 면세점 후보지로 낙점한 곳은 동대문에 위치한 두산타워다. 두타를 비롯한 동대문 쇼핑몰은 연간 700만~800만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방문하는 한류 관광명소다. 두산은 기존 두타 쇼핑몰을 그대로 유지한 채 다른 층에 면세점을 꾸린다는 계획이다. 16년 간 두타 쇼핑몰을 운영하며 유통 노하우를 축적한 것이 장점이다. 최근엔 동대문패션타운 관광특구협의회와 상생협약도 맺었다.

희망적인 것은 아직까지 동대문엔 시내면세점이 없다는 점이다. 동대문은 기업들이 가장 눈독들이는 후보지다. 지난 6월 서울시내 면세점 신규사업자 입찰전에서 8곳이 동대문 면세점 유치계획을 밝혔다. 후보지 가운데 가장 많이 몰린 것. 관광인프라와 주변 환경 요소 측면에서 높은 경쟁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실패했다. 용산(HDC신라면세점)과 여의도(한화갤러리아), 인사동(SM면세점)이 신규 사업지로 뽑혔다.

새로 뛰어든 두산으로선 SK네트웍스와 롯데에 견줘 얼마나 경쟁력을 갖췄는지가 관건이다. 면세점 운영 경험이 없고 중공업 중심의 사업구조를 고수하다 면세점 등 소비재사업에 다시 눈을 돌린 것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물론 정부가 요구한 요건을 갖춘다면 얼마든지 사업다각화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박 회장의 도전적 리더십이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박용만-최태원 회장 '묘한 인연'

최태원 SK그룹 회장. /사진=임성균 머니투데이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 /사진=임성균 머니투데이 기자
이번 면세점 사업권을 두고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관계에 관심이 쏠린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겸임한 박 회장은 불과 수개월 전까지만 해도 당시 구속 수감 중인 최 회장 구명 운동에 적극 나섰다. 특히 올해 1월엔 재계단체장으로선 처음으로 "최태원 회장을 선처해 주면 좋겠다"고 밝히며 기업인 사면 여론에 불을 지폈다.
그런데 8·15 광복절 특별 사면으로 최 회장이 자유의 몸이 된지 한달도 채 안돼 두 사람은 경쟁자로 마주섰다. 최 회장 입장에선 다소 당황스러울 수 있다. 2년7개월 만에 SK그룹 오너로 복귀했는데 한때 자신의 사면여론을 주도한 박 회장에 맞서 칼을 겨눠야 하기 때문. 그렇다고 이번 특허권을 양보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국내 면세점시장 규모는 지난 2013년 6조8000억원에서 지난해 8조3000억원으로 21% 증가했다. 유커의 꾸준한 증가로 2020년까지 두 배 가까운 15조원까지 매출이 늘어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면세점 사업은 최 회장 복귀 이후 첫번째 사업이다. 강력한 오너십으로 면세점 사업권을 보란듯이 유지함으로써 그동안 부진했던 SK의 각종 사업추진에 동력을 불어넣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사업 다각화를 위한 총력전을 펼칠 태세로 면세점 사업에 출사표를 던진 박 회장으로서도 물러설 수 없는 승부다.

재계 관계자는 "최태원 회장과 박용만 회장의 관계가 묘하게 됐다"면서 "불과 한두달 만에 입장이 바뀐 두 사람 중에 누가 최종 승자가 될지 궁금해진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0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